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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美 국무부 통역 김동현의 정밀분석

6자회담 합의문, 제네바 합의, 조미공동코뮤니케에 숨은 ‘언어의 지뢰밭’

  • 김동현 전 미국 국무부 한국어 수석통역, 고려대 연구교수 tong.kim@prodigy.net

전 美 국무부 통역 김동현의 정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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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부터 27년간 미 국무부에서 통역으로 일하다 지난 7월 은퇴한 김동현(미국명 Tong Kim)씨가, 북한과 미국의 협상과정에서 빚어진 갖가지 언어상의 문제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느낀 소회를 정리해 ‘신동아’에 보내왔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1990년대 이후 북미간의 주요 합의문에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단어를 사용해 ‘각자가 필요한 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한 이른바 ‘외교적 모호성’이 어떤 의도를 담았으며, 그 결과는 무엇인지 꼼꼼히 설명한다. 11월 열리는 5차 6자회담에서는 4차회담에서 도출된 합의문에 담긴 표현의 ‘모호성’을 최대한 정리해야만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다.
분단과전쟁 이후 한미간 혹은 북미간의 모든 대화는 통역을 통하든 아니든 영어를 매개로 이뤄졌다. 그 50여 년 동안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도 변하고, 나라도 변하고, 언어도 변해왔다. 언어는 곧 생각의 표현이다. 언어에 담긴 사고(思考)는 역사, 문화, 전통, 관습, 제도 그리고 가치관을 반영한다. 남북한은 상호 배타적인 체제의 대결로 인해 언어의 표현까지 많이 달라졌다. 상대방에 대한 전문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원활한 대화는 물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정도다.

이는 한국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같이 영어를 한다고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의사소통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단순히 언어나 문화의 차이 때문에 외교협상의 결과가 결정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어의 함축성이나 문화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외교협상의 내용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9월13일 발표된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을 비롯해 지난 10여 년간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서 나타난 언어 해석의 문제와 그 정책적 배경을 검토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는 11월로 예정된 5차 6자회담과 관련해 각국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가늠자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는 9월25일자 ‘워싱턴포스트’ 논평란(Outlook section)에 6자회담 공동성명서에 사용된 어휘들을 분석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앞으로 해석상의 차이로 인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용어들을 예로 들어 ‘언어의 지뢰밭’이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특히 공동성명 문구 중 북한이 약속한 ‘abandoning all nuclear weapons and existing nuclear programs(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는 구절에서 특히 ‘abandoning’이라는 단어와 6자회담의 목표로 채택된 ‘the 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문제와 관련된 논의를 ‘at an appropriate time(적절한 시기에)’ 하기로 합의했다는 문구에도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abandoning’과 ‘dismantlement’

6자회담의 합의문은 초안부터 영어로 작성되어, 영어로 토의하고, 영어로 최종 합의문이 채택된다. 과거 4자회담의 공동성명과 북미 양자간의 합의문 채택과정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내용이 일단 영어로 합의되면 그 합의문은 각국 정부의 허락을 받고 나서 비로소 발표할 수 있게 된다. 참가국 중 어는 한 나라라도 본국으로부터 합의문 초안에 대해 동의를 받지 못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면, 해당 문안이 협상자 회담에 다시 회부되고 조정을 거쳐 최종 합의할 때만 발표가 가능해진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칠 때도 있다.

지난 6자회담의 공동성명 발표 과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필자는 우선 합의문에 쓰인 영어 문구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는 단순한 영어 단어의 분석이 아니다. 그러한 표현 뒤에 숨은 미국의 정책과 북한의 의도를 고려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합의문에 쓰인 ‘abandon(포기한다)’이라는 어휘는 자발적인 포기의 의사를 내포하지만 핵무기나 시설 등을 그냥 내버려둔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시종일관 주장해온 ‘dismantlement(해체 또는 철폐)’라는 표현의 뜻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6자회담 합의문의 ‘abandon’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계획을 포기(give up)는 하되 더 이상 개발, 생산 또는 유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이는 단순한 단어의 분석을 초월해서, 북한이 일단 핵을 포기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자신의 핵계획을 완전히 재기불능의 상태로 철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필자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이미 지적한 문구 외에 ‘all …existing programs(모든 핵계획)’ 같은 표현도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본다. 미국측은 이 표현을 통해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계획까지 합의문에 포함시키고자 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문제 해결의 일차적인 단계로 북한이 자신의 핵무기와 진행 중인 핵계획을 밝힐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북한은 이에 대해 “계획도, 기술도, 관련 인원도 없다”고 맞서왔다.

또한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the 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는 한반도의 북쪽 뿐만 아니라 남쪽도 비핵화해야 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향후 비핵화 대상으로 미국 군사기지뿐 아니라 한국의 핵 연구시설까지 검증할 것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에 대비해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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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전 미국 국무부 한국어 수석통역, 고려대 연구교수 tong.kim@prodig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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