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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섬뜩한 비바람 굉음 속, 귀마개 나눠주며 “죽어도 같이, 살아도 같이…”

  • 한은정 미국 사우스앨라배마주립대 석사과정·커뮤니케이션

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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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지 두 달이 가까워오도록 사망자수를 가늠할 수 없는 죽음의 도시, 뉴올리언스. 그곳에서 차로 1시간여 떨어진 앨라배마에도 ‘카트리나’는 공포의 식인상어처럼 주민들을 덮쳤다. 겨우 몸을 추스린 주민들은 요란한 바람소리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고, 며칠째 출입이 통제된 대피소에 갇힌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굶기를 밥먹듯했다. 가공할 재난의 한복판에서 한국 여학생이 써내려간 생생한 체험일기.
▼ 8월27일 토요일

오랜만에 월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과 친구 캐서린을 만났다.

“은정! 너도 허리케인 때문에 비상물품 사러 왔구나? 그나저나 넌 어디로 대피할거야?”

“뭐? 허리케인! 허리케인이 또 온대?”

“몰랐어? 내일모레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이 여길 지나간다는데….”

“허리케인이 와도 난 그냥 우리 아파트에 있을 거야. 귀찮아. 대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안 해.”

“혹시라도 사태가 심각해지면 바로 학교로 대피해. 알았지? 절대로 혼자 있지 마. 학교 대피소 어딘지 알지? 모르면 나한테 전화해. 알려줄게.”

“고마워. 너도 몸조심해.”

초강력 태풍? 까짓 거…

어쩐지 오늘따라 사람이 유난히 많다 했더니 다들 허리케인에 대비해 물, 음료수, 양초, 플래시, 건전지 같은 비상물품을 사러 왔나 보다. 한국만 사재기가 심한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보니 미국 사람이 더 심한 것 같다. 뉴스에서 태풍 얘기만 나왔다 하면 하룻밤 사이에 월마트에 있는 모든 비상물품이 바닥난다. 지난해 허리케인 ‘아이반’이 왔을 때 뒤늦게 월마트에 갔다가 양초나 물은커녕, 창문에 붙일 청테이프 하나 못 사고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단 한번도 자연재해를 당해본 적이 없던 나는 ‘초강력 태풍’이라는 게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이곳에 온 지 1년 반 만에 벌써 몇 번씩이나 허리케인을 만나고 보니(지난해 9월 ‘아이반’을 시작으로 ‘데니스’, 그리고 몇 개의 소규모 허리케인이 여길 지나갔다) 이젠 대피하는 것도 귀찮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정말 한국의 초가을 날씨 그 자체다. 하늘도 아름답고, 바람도 매우 상쾌했다) 도저히 허리케인 상륙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여하튼 난 허리케인 소식에 전혀 개의치 않고, 내 쇼핑 리스트에 있는 물건만 사갖고 왔다.

집에 오니 일본인 룸메이트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언니는 허리케인 오면 대피할 건가요, 아니면 그냥 아파트에 있을 건가요?”

“난 여기 있을 거야. 넌 너 가고 싶은 데로 가.”

“아녜요. 저도 언니랑 같이 여기 있을래요. 이번 허리케인도 별 피해 없이 그냥 지나갈 것 같은데요, 뭐.”

▼ 8월28일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는데 한 친구가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다음주 화요일까지 학교 휴교다. 신난다!”

“진짜?”

학생들 모두 우르르 몰려가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정말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교령엔 “일단 현재로선 화요일(8월30일)까지만 휴교이고, 또 기숙사도 일부만 강제 대피령을 내린다. 내일 오후 3시에 다시 속보로 알려줄 테니 수시로 변동사항을 체크하라”고 돼 있었다. 지난해에도 느낀 거지만 학교 홈페이지는 비상시에 맹활약을 한다. 교직원이 잠도 안 자는지 매 시간 속보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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