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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⑤

‘롼링위(阮玲玉)’

낭만의 올드 상하이, 홍콩인에겐 곤혹스러운 추억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롼링위(阮玲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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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하이 와이타을 따라 걸으면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가 대비된다. 초고층 현대식 건물과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풍스러운 서구식 건축물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드라마틱하게 마주해 있다. 치파오가 잘 어울리는 장만위(張曼玉) 주연의 영화 ‘롼링위’는 1930년대 ‘동양의 파리’로 불린 상하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여배우 롼링위의 짧은 생애를 담고 있다. 상하이와 홍콩, 근대 중국이 낳은 두 쌍둥이 도시의 극적인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롼링위(阮玲玉)’

상하이의 화려한 도시 경관은 중국의 무서운 성장 속도를 실감케 한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상하이라면 상하이의 관문은 와이탄(外灘)이다. 그래서 중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상하이에 오면 누구나 먼저 와이탄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상하이를 제대로 느끼는 길이다. 와이탄은 글자 그대로 상하이 동쪽 바깥, 즉 상하이 동쪽을 흐르는 황푸(黃浦) 강둑길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난 길이다.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쑤저우허(蘇州河)와 상하이 동쪽 끝을 흐르는 황푸강이 만나는 곳에 걸려 있는 낡고 멋진 철제 다리인 와이바이두(外白渡)교에서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1.5km 가량 이어진 길이 바로 와이탄이다.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면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 ‘뉴 상하이’와 ‘올드 상하이’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부활하는 ‘뉴 상하이’가 있다. 푸둥(浦東) 신개발 지역으로, 높이 468m짜리 텔레비전 송신탑인 둥팡밍주 타워(東方明珠塔)와 상하이에서 가장 훌륭한 빌딩으로 손꼽히는 88층짜리 진마오 빌딩(金茂大厦)이 차례로 눈길을 끈다.

덩샤오핑이 푸둥 지역 개발을 지시해 상하이 푸둥 신개발지 공사가 시작된 1990년 4월 이전까지 이곳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하이의 미래를 상징하는 곳이 됐다. 2010년에 이곳에서 상하이엑스포가 열리고, 확장공사를 마친 신공항과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항만도 이 푸둥 지역에서 만날 수 있다. 무서운 속도로 비상하는 중국을 한눈에 보는 듯하다.

화려한 신식 건물이 늘어선 푸둥 뉴 상하이의 맞은편, 그러니까 와이탄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에 올드 상하이가 있다. 1872년에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세워진 옛날 영국 총영사관(현 상하이시 제2청사) 건물을 시작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멋진 서구식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1937년에 지어진 중국은행, 1929년에 세워진 허핑호텔(和平飯店), 1927년에 세워진 상하이 세관, 1923년에 건축된 홍콩상하이은행(HSBC) 상하이 지점 건물 등 18개 건물이 경쟁하듯 줄지어 서 있다.

‘억만불짜리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이 서양식 옛 건축물의 행렬은 1920∼30년대 상하이의 전성시대, 올드 상하이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와이탄의 절정은 야경이다. 저녁이 되면 이들 건물에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는데 오색의 조명을 받은 고색창연한 석조건물이 장관을 이룬다.

와이탄은 북쪽 영국 영사관 건물에서부터 시작해 남쪽 끝 옛 프랑스 영사관 건물까지 이어진다. 영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차지했던 조계지에서 시작해 프랑스 조계지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근대 초기에 탄생해 상하이의 상징이 된 ‘억만불짜리 스카이라인’의 화려함은 중국을 침략한 뒤 이 지역을 차지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그들은 1840년에 시작된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1845년부터 영국, 미국, 프랑스 순서로 상하이에 조계지를 설정, 치외법권 지역을 선포하고 상하이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 조계지역에 독자적인 행정 기관을 설립하고, 자신들의 법률에 따라 그 지역을 관할했다.

‘억만불짜리 스카이라인’

처음 조계가 성립되던 때 중국인은 조계 지역에 출입할 수도 없었다. 1868년 영국 영사관 앞에 생긴 공원(지금의 황푸 공원) 입구에 ‘중국인과 개는 들어갈 수 없다(華人與狗不准入內)’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출입금지는 1928년까지 계속됐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설 때까지 100여 년 동안 중국은 서구와 일본의 침략에 패배하면서 치욕과 굴욕의 시기를 보냈다. 와이탄을 걷다 보면 중국인들이 그 치욕과 굴욕의 역사를 딛고서 이제 다시금 비상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비상하는 중국의 선두에 상하이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엔 올드 상하이 열풍이 일고 있다. 당시를 재현한 거리와 식당, 재즈 바, 커피숍, 댄스홀이 대유행이다. 1920∼30년대 상하이를 소재로 한 사진, 책, 영화, 드라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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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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