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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③

청교도 신앙공동체 근거지 플리머스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개척한 ‘미국 정신’의 요람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청교도 신앙공동체 근거지 플리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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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청교도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 호에 오른 청교도들. 피난의 길은 험난했지만 신앙과 신념으로 이겨내고 마침내 플리머스에 당도한다. 순수한 종교적 이념공동체를 추구한 이들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미국의 정신으로 추앙받는다. 초기 청교도인의 일상과 민주주의 정신을 담은 메이플라워 서약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청교도 신앙공동체 근거지 플리머스

순례자 청교도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조성한 플리머스 플랜테이션.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이 담배 재배에 성공해 자활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에 자극받아 신대륙에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려는 이주자가 날로 증가하던 1620년, 일단의 영국 청교도들이 일찍이 존 스미스가 뉴잉글랜드라고 명명한 신대륙 북쪽 해안가에 도착했다. 이들은 절대왕정을 꿈꾼 제임스 1세 치하에서 청교도 박해가 심해지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거쳐 라이덴으로 피신한 무리의 일부였다. 이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달픈 유랑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후세의 사가(史家)들에 의해 ‘순례자 조상(Pilgrim Fathers)’이라고 불린 이들은 숱한 난관을 딛고 마침내 자신들이 소망하는 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세웠다.

이들이 건설한 플리머스 식민지는 제임스타운이나 뒤에 세워지는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비해 규모는 작았으나, 신념이 남달리 투철했기에 일찍부터 미국 정신의 요람으로 선양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경제적 부의 추구와는 무관한 순수한 종교적 이념공동체였다. 메이플라워 서약,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 추수감사절 등 이들 순례자에 얽힌 일화가 오늘날 미국의 국민적 신화로 널리 회자되는 것도 이념의 순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건설된 지 70여 년 만인 1691년, 플리머스는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흡수통합되고 만다. 그러나 굳건한 청교도 정신과 법률, 교육, 자유, 도덕의 중요성에 대한 이들의 확고한 믿음은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미국 사회를 계도하는 삶의 원리가 되고 있다.

‘America’s Hometown’

플리머스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은 2004년 8월 초순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열린 소로(Thoreau) 연례학회에 참석한 후 하버드-옌칭연구소에 잠시 머무르던 중 짬을 냈다. 연전에도 플리머스를 찾은 적이 있지만, 일정에 쫓겨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은 터에, 마침 그 무렵 읽고 있던 소로의 ‘케이프캇’(Cape Cod, 1865)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겹쳐지면서 길을 떠나도록 재촉한 것이다. 플리머스를 거쳐 순례자들의 첫 기착지인 케이프캇 해안 일대를 돌아보고, 내친김에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첫 무대인 뉴베드퍼드를 들러 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인근 렌터카 업소에서 차를 빌리고 간단한 행장을 꾸려 아침 일찍 케임브리지를 출발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복잡한 보스턴 시내를 벗어나니 하늘이 한결 더 푸르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고향인 퀸시를 왼편으로 끼고 40여 분 달리니 어느새 플리머스다. 보스턴 남쪽 약 40마일 지점에 위치한 플리머스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미국 청교도 문명의 시발지로서 플리머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시에서 발행한 안내서에는 ‘미국의 본향(America’s Hometown)’으로 적혀 있다. 아담한 시가지의 중심으로 들어서서 해안가 쪽으로 내려가니 곧바로 청남색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서 바닷가 쪽으로 메이플라워 호가 보이고 이어 그리스 신전 모양의 플리머스 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차를 세우고 플리머스 록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플리머스 항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넘실대는 대양을 앞에 두니 여름 햇살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서고, 멀리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 또한 햇빛을 받아 번쩍이니 눈부셔서 잠시 시공을 초월한 듯한 아득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내항 여기저기에 요트들이 떠 있으나,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에서 으레 느껴지는 자연의 원시적 야성을 어쩌지는 못했다.

정신을 압도하는 자연의 야생적 원시성을 고전 미학에서는 숭고미라고 불렀거니와, 나는 이런 숭엄한 기분 속에서 플리머스 식민지를 이끈 불세출의 지도자 윌리엄 브래드퍼드(William Bradford, 1588∼1657)가 남긴 ‘플리머스 식민지 역사(Of Plymouth Plantation)’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목숨을 내건 고난의 항해 끝에 신대륙 해안가에 도착한 안도감도 잠시, 낯선 세계의 황량한 풍경에 압도당한 그의 심경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머리에 남아 있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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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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