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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⑤

마녀사냥의 진원지 매사추세츠 세일럼

종교적 결벽, 정치적 갈등이 빚은 역사의 오욕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마녀사냥의 진원지 매사추세츠 세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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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기잡는 곳’이라 불리던 작은 항구도시 세일럼. 바다와 햇살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마녀사냥이라는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세일럼이 낳은 대 문호 호손은 선조의 만행에 대한 원죄의식을 ‘일곱 박공의 집’ ‘주홍글자’ 등의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쏟아냈다. 세일럼 기행은 집단 히스테리에 희생된 원혼의 흔적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마녀사냥의 진원지  매사추세츠 세일럼

세일럼 마녀박물관.

뉴잉글랜드의 7월 햇살은 화사하기만 했다. 그러나 세일럼(Salem)을 찾아 나선 나에게 성하의 짙푸른 노변 정경은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옛 로마인들은 어느 장소든 그곳을 지켜주는 ‘장소의 정령(Genius loci)’이 있다고 믿었다. 근본적으로 직선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땅에서 이 장소의 정령이 나그네에게 말을 걸어옴직한 만곡부가 있다면 세일럼이 바로 그런 곳이리라.

세일럼은 원래 히브리어로 평화(shalom)를 의미한다. 그러나 세일럼은 명칭과는 달리 수십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악명 높은 마녀재판, 그 어두운 역사의 상흔이 밴 곳이다. 게다가 이 오욕의 역사는 기억의 저편에서 잠들기를 거부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령처럼 출몰해 미국사회를 뒤흔들었으니, 1950년대의 매카시즘 선풍은 그중 가장 두드러진 사례다. 억울하게 죽은 세일럼의 희생자들은 반복되는 이 집단적 히스테리에 필시 편히 잠들 수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3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떠도는 원혼이 있다면 나 같은 이방의 길손에게라도 어찌 하소연하고 싶지 않겠는가.

세일럼은 또한 미국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녀사냥의 가해자 편에 선 재판관을 조상으로 둔 호손은 이 역사의 굴곡을 자신의 문학세계로 삼아 조상이 지은 죄업을 속죄라도 하듯이 박해받아온 약자의 삶을 조명하는 소설을 씀으로써 미국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가 ‘옛이야기’를 비롯한 초기의 단편들과 ‘주홍글자’를 쓴 곳이 이곳 세일럼이요, 유명한 ‘일곱 박공의 집’의 무대 또한 세일럼이다.

세일럼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구당 유길준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1883년 민영익을 단장으로 한 친선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유길준은 귀국을 미루고 혼자 남아 세일럼 인근에 있는 바이필드의 덤머 아카데미에서 신학문을 익혔다. 이런 연유로 그가 남긴 편지를 비롯한 유품들이 이곳 세일럼의 피바디 엑세스 박물관에 수장돼 있다.

세일럼, 보스턴, 로드아일랜드

보스턴 교외를 벗어나 지방도로 107번을 타고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차창을 스치는 바람이 거세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닷바람이다. 해안이 가까워지면서 노변의 나무들도 키 작은 관목으로 바뀐다. 이곳 해안가는 일찍부터 어자원(魚資源)이 풍부한 것으로 영국에 알려졌고, 그 결과 1623년에 일단의 영국인들이 어업 목적으로 캐이프앤에 이주해와 작은 정착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들 중 한 사람인 로저 코낸트(Roger Conant)가 1626년 약 50명의 식민자를 거느리고 이곳 아늑한 항만에 이주하면서 세일럼의 역사는 시작된다.

세일럼의 원래 명칭은 ‘나움케악(Naumkeag)’. 원주민 인디언 말로 ‘고기 잡는 곳(fishing place)’이라는 뜻이다. 이어 1628년 존 엔디콧(John Endecott)이 이끄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선발대가 도착했다. 엔디콧은 식민지 본진이 정착할 터를 닦으면서 이곳이 평화의 땅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명을 세일럼으로 바꿨다.

1630년 6월12일, 존 윈스롭이 주축이 된 식민지 본진이 당도했으나 인근을 둘러본 윈스롭은 땅이 척박하고 식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세일럼에 정착하길 포기했다. 남쪽 해안을 계속 답사해 내려간 윈스롭 일행은 찰스 강어귀를 주목하다가 그곳 또한 식수가 충분치 못함을 알고서 최종적으로 강 건너 반도 쪽을 정주지로 정하고, 링컨셔에 있는 그들의 고향 도시 이름을 따서 보스턴이라 명명했다. 이후 세일럼은 어업과 무역에서 보스턴과 경쟁을 벌이면서 항구도시로 발전해 나갔다.

세일럼이 뉴잉글랜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635년 세일럼 교회의 목사 로저 윌리엄스에 의해서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재사(才士)로 신앙적 열정을 겸비한 젊은 성직자 윌리엄스는 1631년 보스턴 교회의 담임 목사로 초빙됐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보스턴 교회가 타락한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못했다는 이유로 목사직 취임을 거부하고 대신 분리주의자들이 세운 플리머스 식민지 교회의 시무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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