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전시작통권 환수 이후의 한반도 전쟁 작계(作計)

‘고강도 열전(熱戰)’ 5027 약화,‘원거리 족집게 타격’ 5026 중심으로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10-13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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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FL훈련에 반영된 ‘작통권 환수 이후 상황’…“만만치 않았다”
    • 해·공군 위주의 5026 먼저 가동, 뒤따르는 지상전 중심의 5027
    • ‘69만’은 오지 않는다…이미 예정된 ‘전시증원병력 축소’
    • 깔끔하게 떨어져 나갈 수 있는 미국, ‘누가 휴전선을 넘을 것인가’
    • NCMA의 전략지침은 ‘적절한 응징’? ‘북한 정권 전복’?
    • “이 기회에 유엔사도 해체하자”…주한미군 태도가 바뀐 까닭은?
    • 한반도 유사시 대비한 주일미군·자위대 공동작계 5055
    전시작통권 환수 이후의 한반도 전쟁 작계(作計)

    2001년 8월 열린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에 참여한 M-48 전차(왼쪽). 지난 4월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연합 전시증원연습(RSOI)에 참여한 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함재기 F/A-18 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오른쪽).

    8월말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을지포커스렌즈(UFL) 훈련의 지휘소가 마련된 서울 인근의 한 지하벙커를 찾았다. 진행 중인 훈련내용과 상황을 브리핑받은 이 관계자는 8월29일 기자들에게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번 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한국군이 단독 행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실시된다”는 것이었다. 작통권 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온 이 발언은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어떤 내용이, 어떻게 반영됐다는 것일까.

    올해의 UFL에서는 그간 진행을 맡아온 한미연합사령부와는 별도로 합동참모본부 차원의 훈련이 함께 진행됐다. 연합사가 진행한 훈련은 예년과 같이 작전계획 5027에 규정된 명령체계와 상황대응 체계를 가동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반면 또 하나의 훈련은, 가정한 상황 자체는 같지만 그 대응 작전지휘를 연합사가 아니라 합참이 주도하는 형태였다. 상황 발생에 대한 전파, 판단, 단계별 대응명령을 모두 합참 지휘소에서 발령하는 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이 같은 개념의 훈련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군은 이미 1996년부터 미군 없이 단독으로 전시 작전지휘를 감당하는 태극(구 압록강) 훈련을 실시해왔다. 다만 이전의 훈련이 말 그대로 도상 훈련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훈련은 실제로 각급 부대에 명령을 하달하고 그 전파 및 대응상황을 점검하는 좀더 구체적인 형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연합사가 하던 이러한 기능을 합참 단독으로 실행해보니 그 진행과정이 ‘꽤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9월8일에는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작통권 환수 전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간 단계별 공동 군사연습을 제의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환수 2년 전에는 군사연습을 양국군이 공동으로 실시하고, 1년 전에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은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작통권을 환수하는 해에는 한국군이 정보 작전 감시 정찰 지휘통제자동화(C4I) 등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연습을 주관하고 미국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관만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기존에 실시하던 UFL이나 전시증원(RSOI) 연습과는 별개로 진행한다는 이 훈련은 한마디로 한국군의 작통권 단독행사 능력을 측정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전력이 참가하는 기동연습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 쉽게 말해 이번 UFL에서 합참이 진행한 훈련을 보다 구체적인 워게임(War Game)의 형태로 강화해, 양국이 함께 실시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7월, 버웰 벨 사령관의 발언

    이렇듯 구체적인 훈련이 진행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작전계획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군사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동원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설정해둬야 훈련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통권을 환수해 지휘체계가 바뀌면 현재의 연합작계를 폐기하고 새로운 작계를 작성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오는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작통권 환수 일정이 결정되면, 양국은 구체적인 지휘체계와 작계를 마련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벨 사령관이 제안한 새로운 공동훈련은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작계를 한국군이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한반도 유사시와 관련해 미군은 모두 다섯 개의 작전계획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계 5026∼30으로 부르는 이들 작계의 ‘50’은 한반도가 미 태평양사령부 관할구역임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정밀타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5026, 북한이 남침해 전면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한 5027은 한미연합사가 작성해 주도하는 작전계획이다. 그간 미국과 연합지휘체계를 유지해온 한국은 이들 작계를 공유해 한국군의 작계로 활용해왔다. 연합사는 2004년부터 북한에서 정변(政變) 등이 발생할 경우를 가정하는 작계 5029 작성을 추진했지만, 한국 정부의 반대로 개념계획 상태로 유지하기로 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작통권 환수 이후를 대비한 새로운 작계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이고, 기존의 연합작계와는 어떻게 달라질까. 단순히 지휘체계 변화에 따른 ‘사령부 이원화’ 수준일까, 아니면 작계가 설정하는 전쟁의 개념이나 진행상황 자체가 달라질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한국군의 최종 작전목표에는 변화가 없을까.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7월13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국회 안보포럼 강연에서 작통권 환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항목들이다. ▲미국의 군사력 지원 규모 ▲지상작전에 대한 미군의 기여 수준 ▲작통권 단독 행사시 한국 정부의 전시 목표 ▲지휘관계 변화와 유엔사의 역할 및 정전협정 상관관계 등이다. 이들 항목은 새로운 작계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논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추려낸 것이다. 비교적 가볍게 보도된 이날의 발언은 각 항목이 정교하게 계산된 것이 분명하다. 사실상 작통권 이후 작계의 핵심적인 사항이 모두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공군 중심 지원’의 의미

    벨 사령관 발언의 핵심은 ‘작통권 환수 이후 한반도 전쟁개념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남침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과연 이 전쟁의 최종목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단순히 북한의 공격으로 초기에 상실한 지역을 회복하는 것인가, 아니면 평양 이북까지 진격해 정권을 붕괴시킬 것인가. 후자일 경우 과연 미군 지상군이 북한 지역으로 진격해 점령지역에 대한 군정(軍政)에 참여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방침이 먼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해보자.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한 작계는 5027이지만, 실제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는 2003년 확립된 5026이 먼저 가동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북한의 전면 기습남침의 가능성이 사실상 높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지상군 전선전이 핵심이 되는 5027보다는 압도적인 공군력과 정밀유도무기를 이용해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족집게 타격하는 5026 상황이 시간적으로 앞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남침을 위해 휴전선 일대의 장사정포와 방사포, 스커드 미사일 발사 등의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확실해졌다고 가정해보자. 5026은 이에 대응해 장사정포를 타격함으로써 수도권 및 아군 시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북한군 수뇌부의 지휘능력을 조기에 무력화하며, 핵 및 생화학무기, 미사일 기지, 공군기지, 지휘소 및 통신시설 등을 정밀공격해 전쟁능력을 조기에 마비시킨다(‘신동아’ 2004년 7월호 ‘자주국방 예산, 왜 제각각인가’ 참조).

    2004년 10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미군은 작계 5026에서 합동직격탄(JDAM)을 이용해 파괴할 북한 내 주요 목표물을 열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F-15E, F-117, B-1B, B-2, B-52H 등 폭격기들이 공격할 700여 개의 목표지점을 사전 설정해놓았다.

    그러나 작계 5026의 가동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전쟁수행 의지가 꺾이지 않아 지상군 남침을 감행한다면, 상황은 5027로 넘어간다. 5027은 북한의 대규모 기계화부대가 휴전선 3대 축선을 통해 남하하는 경우 7시간 이내에 예비사단을 전선에 투입하고 72시간 이내에 서부전선 군단의 사단 편성을 두 배로 늘려 응전하는 시나리오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증강된 지상군이 휴전선 20~30km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면 그 사이 미국의 전시증원군이 도착해 북한군 격퇴에 동참한다는 것. 이와 함께 각종 기동타격 전력이 공중강습과 동·서해상으로 적진을 돌파 내지 우회하여 북한 내륙지역에 침투하고 동시다발로 평양을 포위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전시작통권 환수 이후의 한반도 전쟁 작계(作計)
    그러나 작통권 환수 이후의 상황과 관련해 한미 군사 당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지상군은 한국군이 중심이 되고 미군은 해·공군 중심으로 지원한다”는 개념을 밝힌 바 있다. 그간 한국군과 미군의 사령부가 이원화할 경우 그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미군과 병렬형 공동방위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작전구역을 나눠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전수방위’의 제한을 받는 자위대는 원칙적으로 국외활동이 불가능하므로 작전구역이 나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의 경우 북한지역 진입 문제가 있어 이러한 구분이 마땅치 않았고, 대신 나온 개념이 ‘지상군은 숫자가 많은 한국군, 해·공군은 전력이 압도적인 미군 중심’이라는 대략적인 개념이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상군의 양적 규모를 줄이고 대신 경량화·신속화로 전력을 강화하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연합작계도 지난 수년간 미군 지상병력의 전선 참여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일렬로 마주서서 밀고당기는 6·25전쟁식의 전선전은 폐기된 지 오래다. 2004년 이후에는 5027도 이러한 전선방어는 한국군이 주로 담당하고, 미군 지상군은 공중강습과 해상침투를 통한 수뇌부 공격에 주로 투입되는 것으로 설정됐다.

    ‘립서비스’와 ‘데이터’

    이렇게 보면 5026과 5027로 시계열화(時系列化)해 특히 5027에 무게중심이 있는 현재의 한반도 전쟁계획은, 향후 5026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군사력 지원규모’와 ‘지상작전에 대한 미군의 기여 수준’에 관한 벨 사령관의 언급은 바로 이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다. 작통권 환수 이후에는 미군 지상군의 전쟁참여 수준을 현재의 작계보다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대신 막강한 해·공군력을 중심으로 지원폭격과 정밀타격 등을 가해 한국군이 중심이 되는 지상전을 지원하는 임무에 무게를 싣는다는 것. 미군이 향후 5027보다는 5026을 한반도 전쟁계획의 중심으로 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다.

    전시작통권 환수 이후의 한반도 전쟁 작계(作計)

    7월13일 국회안보포럼 초청 강연에 참석해 ‘북한 군사력의 실체와 한미관계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문제의 핵심은 과연 이러한 역할분리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느냐다. 육·해·공 입체전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대전의 특징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9월7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환수 이후 양국군의 협조체계를 공개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연합사가 해체된 후에는 한국군의 육·해·공군 및 특수전 작전사령부에 주한미군의 해당 사령부 ‘작전협조반’이 파견된다. 한국군 합참과 주한미군사령부 사이에는 가칭 ‘군사협조본부’가 설치되어 원활한 협조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작전계획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유사시 미군의 전시증원규모 문제로 연결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작통권 환수나 작계의 변화 자체가 전시증원규모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의 작계는 한반도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미군이 데프콘 Ⅲ 상태에서부터 크게 3단계로 나뉘는 증원작전을 펼치도록 돼 있다. 해·공군의 감시전력이 한반도로 이동해오는 신속억제방안(FDO·Flexible Deterrence Option), 7함대와 3함대의 다섯 개 항모전투단과 공군전투사령부 산하 10여 개 비행단이 배치되는 전투력 증강(FMP·Force Module Package) 조치, 끝으로 모든 증원전력을 실어 보내는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TPFDD·Time Phased Forces Deployment Data)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로 전개해오는 증원병력은 총 69만명, 항공기 1600대,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이 160대에 이른다는 것이 그간 한미 양국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69만이라는 숫자는 누적인원 개념이지 ‘동시에 69만명의 병사가 한반도에 투입된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TPFDD는 한반도 전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감당해야 하는 전쟁이 해외에서 발발할 경우 동원 가능한 모든 군사자산을 열거한 ‘데이터’다. 따라서 ‘온다’보다는 ‘올 수 있다’에 가깝다.

    군사변환에 따라 미 지상군이 ‘양보다는 질’로 변화함에 따라 ‘병력’의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수년 전부터 69만이라는 숫자는 립서비스에 가까울 뿐 미군의 실제 전시증원병력은 10만∼20만 규모일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물론 숫자의 감소가 ‘전투력’의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군사변환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SBCT) 1개 여단의 전투력은 기존 1개 사단의 그것과 맞먹는다는 평가다. 미국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 경북 왜관 등에 배치된 전쟁예비물자(WRSA)의 규모를 줄여나가고 있다. 이 또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미군기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휴전선 돌파 이후

    이렇게 놓고 보면 작통권 환수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전쟁시 한국군이 주역할을 담당하고 미군이 해·공군력을 중심으로 지원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그간 진행돼온 미국의 군사변환 흐름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미국이 지상군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배경에 전장에서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해 자국 의회와 여론의 전쟁반대 분위기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작통권 환수를 계기로 미군 지상군 참전을 줄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에 전개되는 전쟁에서 미군의 지상군이 줄어들면 전쟁의 ‘최종목표’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초기 군사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해 반격의 기회가 왔을 때, 한미 양국의 대통령은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를 통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전략지침’을 내려야 한다. 쉽게 말해 북한에 군사적 응징을 가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낼지, 아니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전역을 점령할 것인지의 선택이다.

    문제는 한국군 지상군이 초기 전선에서 큰 타격을 입고 미군이 해·공군 위주로 지원할 경우 북한지역을 점령해 올라갈 지상전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작계 5027이 설정하고 있는 전쟁목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7월 발언에서 벨 사령관이 ‘작통권 단독행사시 한국 정부의 전시목표’가 무엇인지 결정돼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의 작계 변화의 흐름으로 볼 때 미 지상군은 휴전선 이북에 대한 점령 문제에는 깊숙이 참여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라크전에서 후세인 정권 붕괴라는 목표는 조기에 달성했지만 계속되는 무장세력의 저항에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있는 미국은, ‘민사작전’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도 정권이 붕괴된 후 전역에 미군이 진주할 경우 감당해야 할 저항과 손실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미군이 압록강 인근까지 진출하는 상황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좌시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중국이 참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중 간의 직접적인 군사대결을 각오하면서까지 미국이 북한지역 점령에 동참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 역시 미국이 북한지역 점령에 참여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 지역은 헌법상 한국의 ‘미(未)수복 지역’이므로 이 지역에 대한 개입 및 군정은 한국의 ‘주권사항’이라는 논리다. 북한에 대한 민사작전을 미군이 주도할 경우 향후 북한의 정치적 변동에 대해 미국이 주도권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염려도 깔려 있는 듯하다. 중국을 자극해 한반도에서 세계대전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데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 전쟁상황을 가정한 미군의 작계 5027은 휴전선 돌파 이후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 수립될 한국군의 작계는 물론 민사작전 임무에 대해 규정하겠지만,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하고 안정을 유지할 만한 군사자산이 확보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러한 양국군의 작계를 통합하는 공동작계는 휴전선 돌파 이후의 지상작전을 한국군에 맡기는 형태로 작성될 공산이 커 보인다.

    ‘협조’와 ‘연합’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러한 전쟁개념의 변화는 부시 행정부 이후 꾸준히 유지되어온 추세다. 미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작통권 환수 이후에도 한반도 전쟁억지나 증원전력의 파견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증원전력의 성격은 지금까지 꾸준히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할 경우, 청와대의 설명대로 양국군의 협조체계가 긴밀하게 작동한다고 해도 휴전선 돌파를 둘러싼 전쟁목표에 관해서는 논란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한반도의 총체적인 현상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걸프전에서처럼 북한에 적절한 군사적 응징을 가하고 개성 등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으로 전쟁을 종료하기를 원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6·25전쟁 당시의 강력한 휴전반대 여론에서 알 수 있듯 한국민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뒤집어 말하면 작통권 환수와 연합지휘체계의 해체는 미국이 ‘북한 점령 임무’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사령관이 미군 대장인 연합사 체계에서는 기술적으로 미국은 뒤에서 멈추고 한국군만 휴전선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한국군 역시 연합사령관의 휘하에 있으므로 형식상 미군도 개입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작통권 환수 이후 사령부가 분리되면 미국의 이러한 고민은 말끔히 사라진다. 군사적으로 ‘협조’와 ‘연합’은 의미가 다르다. 목표가 일치하는 동안에는 한몸처럼 움직인다 쳐도, 뜻이 다를 때는 깔끔하게 떨어져 나올 수 있다.

    ‘북한 지역에 대한 직접관리’를 꺼리는 미군의 속내는 최근 확인된 유엔사령부 관련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16개 참전국이 공동으로 만든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공식적으로는 정전체제 관리임무를 띠고 있지만, 1978년 연합사 창설과 함께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작통권 환수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2003년 이후 주한미군사령부는 유엔사를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시해 그 의도가 무엇인지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국제법적으로 볼 때 한국군의 작통권은 한국 정부가 유엔사에 위임하고 유엔사가 다시 연합사에 위임한 구조.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이 형식적으로는 작통권을 돌려주면서도 실제로 전시상황이 발생하면 강화된 유엔사를 이용해 작통권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엔사 문제에 대한 미국측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다. 작통권 문제를 협상해온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 중 미국측이 “작통권과 관련한 유엔사의 권한은 1978년에 이미 소멸한 것으로 보며, 향후 지휘체계 문제가 마무리되는 대로 유엔사를 해체하고 한국군이 정전체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식견해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벨 사령관이 7월 발언에서 ‘지휘관계 변화와 유엔사의 역할 및 정전협정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까닭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하는 유엔사의 ‘정전체제 관리역할’은 유사시 미군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고리 가운데 하나였다. 작통권 환수와 함께 유엔사의 정전체제 임무를 해제하거나 유엔사를 해체한다면, 미국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무에서 한 단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가 있다. 유엔사 문제에 대한 최근 주한미군의 태도 변화는 작통권 환수에 대한 방침이 ‘형식상 환수’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증대를 위한 활용’으로 180도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그간 펜타곤이 주도하는 ‘변화의 흐름’에 비판적이던 주한미군이 확실히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청와대의 반대로 작계화 작업이 중단된 5029는 현재 개념계획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상황설정과 대응방법은 적시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군사자산을 언제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현재의 개념계획 5029는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연합작계가 모두 폐기된 후에도 새로운 ‘공동개념계획5029’가 작성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5029는 앞서도 말했듯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등으로 북한 내부에서 정변이 발생했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량 탈북사태가 벌어지거나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가 통제불능 상황에 빠지면, 한미 양국군이 데프콘Ⅲ를 발령해 난민을 소개하고 WMD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마디로 북한의 급변사태도 ‘전시’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에 대해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정변 등의 상황에 미국이 개입할 경우 북한의 급변을 증폭시키거나 유도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군의 대응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북한 내부의 상황이 악화되거나 북한과의 충돌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한국의 ‘미수복 지역’인 북한의 급변사태에 미국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굳이 데프콘Ⅲ를 발령해 전시상황을 만들 필요 없이 한국군만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5029 문제를 ‘주권’의 문제로 인식했던 청와대의 판단을 감안하면, 향후 새로운 작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5029를 살려둘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미국이 과연 이에 동의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한국이 끝내 공동계획 수립을 거절할 경우에는 미군 단독의 작전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5029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초에 제기된 바 있다. 주한미군과는 별도로 미 태평양사령부가 작계로 만들어 급변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통권 환수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별도의 사령부로 이원화하면, 주한미군이 5029에 준하는 새로운 단독작계를 만든다고 해도 이를 제어할 ‘군사적 시스템’은 사라진다. 이후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주도권 문제는 군사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적 결정사안’이 되는 것이다.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0월 SCM을 통해 작통권 환수 일정이 결정되면 양국은 공동작계 작성 등 구체적인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주한미군 작전참모부와 합참 작전본부가 기존의 작계 5026과 5027을 근간으로 공동작계의 얼개를 만든 뒤, 여기서 각국 군의 임무를 나누고 이에 따라 각각의 작계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공동작계를 작성하는 프로세스를 보면 분명해진다. 1997년 개정된 미일 신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서 설정한 ‘일본 내 유사시 상황’별로 양국은 공동작전계획을 작성해놓았다. 이들 공동작계는 자위대 통합막료회의 사무국장과 주일미군 부사령관이 참가하는 공동계획검토위원회(BPC)에 의해 작성됐다. 공동계획의 명칭은 한미 연합작계와 마찬가지로 미 태평양사령부 관할구역임을 의미하는 ‘50’으로 시작한다(한반도 전쟁시 주일미군과 자위대가 수행할 지원작전계획은 5055다). 공동계획에 규정된 각각의 임무에 따라 주일미군사령부와 통합막료회의는 각각의 작계를 작성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상군의 임무축소, 전쟁개념의 변화, 전쟁목표의 변경 등을 상정하고 있는 미국은 작계 작성과정에서 한국과 적지 않은 이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작통권 환수시점까지, 혹은 이후에도 작계의 개념과 내용은 꾸준히 변화할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현 연합작계의 상황설정과 대응방안이 대부분 원용되겠지만, 양국군의 관계변화와 미군의 성격변화에 따라 군사적 대응방안도 서서히 달라질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미국이 휴전선 돌파 이후 상황에 대한 공동작계 작성을 거절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상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벨 사령관의 7월 국회 발언은 이러한 상황을 계산한 ‘기선 제압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작통권 환수 문제의 정치화’

    작통권 환수가 ‘주권’의 문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는 한반도 전쟁이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북한 지역에 대한 진입은 한국군이 맡는 것이 옳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되도록 지상군 투입을 최소화하길 원하는 미국의 속내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한국 내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악관과 펜타곤, 청와대와 한국 국방부가 작통권 환수를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전쟁개념 변화가 한반도 유사시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검토한 것일까. 앞으로의 작계수립 과정에서 예상되는 쟁점을 어떻게 하면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지 고려했을까. 최악의 경우 한국은 전쟁 이후에도 ‘적절한 수준’의 응징만을 가하고 북한 정권은 계속 존속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반대의 질문도 있다. 작통권 환수에 얽힌 미국의 군사변환과 전쟁개념 변화를 감안하면, 이를 한국이 반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었을까. 과연 미국은 노무현 정부가 작통권 환수를 원치 않았다면 이러한 변화를 추진하지 않았을까.

    정밀하게 따져보고 결정해야 할 쟁점은 많지만, 이미 논쟁은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유사시 미국의 역할과 한국의 전쟁목표 등 검토해야 할 주요 논제들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윤색되고 비틀리는 형국이다. 향후 한반도에서 벌어질 전쟁을 다루는 새로운 작계 문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이 ‘작통권 환수 문제의 정치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논의해야 할 필수 쟁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고 있는 사람은 벨 사령관 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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