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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군부-개혁파 파워게임으로 본 ‘남북정상회담 이후’

‘돈줄’ 확보한 개혁파, ‘핵으로 국방력 완성’ 명분으로 군축 나설 듯

  • 이영화 일본 간사이(關西)대 교수·경제학

北 군부-개혁파 파워게임으로 본 ‘남북정상회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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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다양한 경제협력을 약속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평양은 과연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나서겠다는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일까.북한의 향후 국가전략을 전망하는 글을 소개한다. 선군정치가 공식화한 이래 수년 동안 북한 정책결정 그룹 내부에서 국방력 강화를 주장하는 세력과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세력 간의 대립이 이어져왔다는 흥미로운 시각이다. 특히 지난해 핵실험을 통해 ‘국방력 강화’가 완성됐으므로 앞으로는 군수공업에 투입하던 막대한 예산을 감축해 생활경제 분야에 투입할 것이라는 소식은 주목할 만하다. 필자인 이영화 교수는 재일교포 3세로 조총련에서 오래 활동하다 1991년 평양 유학중 북한의 실상에 충격을 받고 전향, 시민단체 ‘RENK(북한민중구출긴급행동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후 이 교수는 RENK 활동을 통해 확보한 북한 자료를 바탕으로 평양 내부상황 변동을 꾸준히 추적해왔다.
 


北 군부-개혁파 파워게임으로 본 ‘남북정상회담 이후’

함경북도 청진에 소재한 북한 최대의 제철소 김책연합기업소.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직후인 8월6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제철소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단히 감사하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그가 수행한 공적이 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도, 조총련 간부의 발언도 아니다. 모(某) 국가의 정보기관 관계자가 이번 정상회담에 관해서 토로한 솔직한 소회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여러 경로로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관련국들을 대표해 7년 만에 평양을 ‘문진(問診) 방문’한 것에 감사한다는 뜻이었다.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는 TV 생중계 영상을 통해 세계에 타전됐고, 각국 정보기관은 이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주변국들이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당연한 일이다. 북한은 지금 김정일 체제의 생존을 건 경제재건과 전방위 외교의 추진, ‘선군(先軍)정치’에서 ‘선경(先經)정치’로의 전환이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바꿔 말하면 나비가 번데기에서 탈피하는 순간처럼 유약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제의 핵심인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나 판단력에 물음표가 붙는다면 관계국 당국자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북한 문제의 전체적인 연착륙’이라는 시나리오는 순식간에 백지로 돌아갈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이라는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표현상의 문제일 뿐, 이를 근거로 북한이 경제재건을 포기했다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중국을 흉내 내어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부르건 혹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건, 장기적으로 북한이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과제로 설정하지 않는 한 체제의 생존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이 글에서 설명할 내용은, 김정일 위원장이 그간의 우유부단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본격적인 경제개혁에 키를 맞추기로 결심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7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 것은 그 징표 가운데 하나다. 이는 북한의 향후 행보를 가늠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마중 나간 김 위원장의 기울어진 자세가 상징하는 것처럼, 개혁개방을 향한 북한의 발걸음 역시 아직 불안정하기만 하다.

‘선군정치’는 절대적인가

잘 알려진 것처럼 ‘선군정치’는 전 분야에서 군을 최우선시하는 특이한 통치형태다. 공식적인 시작은 1999년 6월로, 이는 대포동 미사일 발사시험의 다음해이자 미증유의 대기근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형식적으로 선군정치는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선군정치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0년 2월경부터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른바 ‘선군파’와 ‘개혁파’의 마찰이 싹트게 됐다고 판단한다.

1인 독재체제 국가에서 심각한 노선투쟁이나 파벌대립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들 모두가 김정일 체제를 수호한다는 목표에 대해서는 굳건히 단결하고 있고, 자주국방이라는 국시(國是)에 이론(異論)을 제기하는 세력은 없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대전제로 하고 나서, 그 실제적인 경제운영에 관해서는 김정일 체제하에서도 논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선군파와 개혁파, 두 세력은 경제 운영방식을 쟁점으로 대립했다. 대립의 국면은 국제정치적인 외부요인 때문에 잦은 공수 교대가 계속돼왔고, 김 위원장은 두 파벌의 격돌 때문에 권력 중추에 균열이 생기는 상황을 피하려고 조정하는 일에 부심해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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