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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 되새길 때

‘한여름 밤의 악몽’ 대만 大정전이 주는 교훈

  • 최창근|대만 전문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 되새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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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직전 원전도 폐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 되새길 때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 현장.[뉴시스]

민진당 정부의 탈핵 정책 중 논란의 중심에는 수도 타이베이시 외곽의 신베이시 궁랴오(貢寮)구에 건설 중이던 제4기 원전 룽먼(龍門)이 있다. 1999년 3월 공식 기공 후, 2014년 98% 공정률로 완공·시험운용을 앞둔 원전은 잠정 폐쇄 상태다. 부지 매입 작업부터 헤아리면 20년 넘는 공기(工期)에 공사비용만 3300억 신(新)타이완달러(11조3000억 원)가 소요된 제4기 원전의 운명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국민투표’가 운명을 가를 예정이다. 화력발전소 전환도 검토 중이라지만, 현재로선 흉물로 방치돼 있다.
제4기 룽먼 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길고 복잡하다. ‘대표적 위험·혐오시설’인 원전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1980년대 시작됐다. ‘수출 대만’ 시대, ‘메이드인 타이완(Made in Taiwan)’ 제품 경쟁력과 직결된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값싼 에너지’의 대명사인 원자력을 대안으로 택했다.

1980년 행정원 원자능위원회는 제1·2·3기 원전에 이어 제4기 원전 건설계획안을 입안했다. 건설 부지로 신베이시 궁랴오구를 택했다. 건설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비밀리에 추진되던 제4기 원전은 사업 계획 누설 후,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그 과정에서 1991년 분신(焚身)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대만 정부는 공사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넘게 공사 중단과 재개-재중단의 혼란을 겪던 제4기 원전의 운명은 입법원으로 넘어갔다. 1996년 5월, 원전 반대론자인 민진당 입법위원 장쥔슝(張俊宏)은 ‘원자력발전소건설계획폐지안(廢止所有核能電廠興建計畫案)’을 발의했다. 폐지안은 입법원 1독회(讀會·법안 및 결의안 심사 첫 과정)를 통과했고 집권 국민당은 이에 반발했다. 원전건설폐지안은 재의결에 부쳐졌으나, 2년여 여야 간 공방전 끝에 부결됐다. 1999년 3월 17일, 제4기 원전은 공식적으로 첫 삽을 떴다.

이듬해 3월, 국민당의 분열 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이 당선돼 입법원 내 공수 교대가 이뤄졌다. 집권 민진당과 야당이 된 국민당, 친민당(親民黨·국민당에서 분당한 보수정당)이 입법원에서 본격적으로 격돌한 첫 안건은 제4기 원전이었다. 천수이볜은 주무부처인 행정원 경제부의 보고서를 근거로 ‘원전 중단 지시’를 내렸다. 공군 총사령(참모총장)·국방부장을 역임한 국민당적의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 탕페이(唐飛)는 총통의 일방 지시에 반발해 취임 5개월 만에 행정원장직을 사임했다. 그는 국민당 정부의 원전 건설 정책을 계승·추진하고자 했으나 반대에 부딪히자 행동으로 옮겼다.

국가원수 총통과 정부수반 행정원장 간 갈등은 입법원으로 파급됐다.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원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 범람(泛藍·pan-blue)연합의 국민당·친민당·신당(新黨) 등은 정부의 원전 건설 중단 방침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급기야 야당 연합은 총통·부총통 파면안을 상정했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행정부 일방 독주에 제동을 건 사법원의 판결 끝에 2001년 1월, ‘원전 건설 재개 결의안’은 135대 70으로 입법원을 통과했다. 다음 달, 행정원장과 입법원장 간 합의로 제4기 원전 건설은 재개됐다. 이후 2008년 3월, 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정부 집권기 동안 제4기 원전은 건설에 속도를 내 2011년 공정률 90%를 달성했다.





범람(泛藍) vs 범록(泛綠)

‘완공’을 향해 나아가던 제4기 원전 건설이 다시금 벽에 부딪힌 것은 2011년 3월이다. 3월 11일 동(東)일본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여파는 대만으로도 밀려들었다. 안전제일·세계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던 일본 원전 신화(神話)는 자연의 힘 앞에 무너졌고 파장은 대만으로까지 전해졌다. 태풍·지진 다발지역이라는 일본과 유사한 자연조건을 가진 대만이기에 이웃나라 사건의 파장은 더 컸다. 대만 국민은 방송으로 전해지는 후쿠시마의 참상을 보면서 불안에 떨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민진당을 위시한 재야 세력은 반핵(反核)·탈원전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국민당 정부는 지지율 하락, 마잉주 총통의 도청 스캔들 등으로 국정 운영 동력을 잃었고, 2016년 대선·총선에서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화됐다. 2015년 7월, 대만 정부는 제4기 원전 ‘봉인’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6년 대선·총선에서 압승하며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는 지난 선거의 핵심 공약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8년 후 완전 탈핵을 입법화했다.

8월 대정전 사태의 여진이 여전히 대만 섬을 흔들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리스광(李世光) 경제부장이 사임했다. 9월 4일 린취안(林全) 행정원장도 취임 1년 4개월여 만에 사실상 경질됐다. 대만전력공사는 최종 집계한 정전 피해 592만 가구의 하루치 전기요금 3억6000만 신타이완달러(135억 원) 감면을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총통도 유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정전 사건은 추락을 거듭하는 그의 지지율 하락세에 일조했다. 입법원에서는 사건 책임을 두고 연일 여야 간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불똥, 한국으로 튀다  

불똥은 한국으로도 튀었다. 한국에서도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로 꼽히는 대만의 대정전 사태가 논란에 기름을 부은 양상이다.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대만의 판박이기 때문이다. 2025년 에너지믹스를 화력 80%(천연가스 50%, 석탄 30%), 신재생에너지 20%로 재편하겠다고 밝힌 대만의 에너지 포트폴리오 로드맵과 구성비까지 똑같다. 정부·여당은 ‘탈원전 모범국가’로 대만 사례를 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중 뜨거운 감자는 신고리 5·6호기다. 2016년 6월 현재 공정률 28.8%에서 공사는 잠정 중단 상태다.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5693억 원,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비용 9912억 원, 공사 중단 기간 유지비용 865억 원 등이 함몰비용으로 예상된다. 갈등으로 인한 기회비용까지 더한다면 함몰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7월 24일 출범한 공론화위원회가 3개월 활동 후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이 갈릴 예정이다.

공론화위원회 자체도 문제다. 출범 초부터 인적 구성·권한 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활동 개시 후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초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미래를 맡긴다고 발표했으나 위원회의 법적 성격과 이에 따른 정책 결정의 법적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입장을 번복했다. 중대 정책 결정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위원회에 부담을 떠넘기고 위원회는 다시 정부에 되받아넘기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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