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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21세기 중국 문화 7 - 음식

高성장 바람 타고 화려해진 식탁, 그 아래엔 상실과 박탈의 그림자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高성장 바람 타고 화려해진 식탁, 그 아래엔 상실과 박탈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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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넓은 영토, 강력한 황제 권력, 국제상업도시의 성황으로 중국은 일찍부터 다양한 음식문화를 일구었다. 게다가 지난 20여 년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다원(多元)과 전통에 ‘퓨전’을 결합, 새로운 음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여전히 화려한 식탁 앞에 앉지 못하는 대다수 인민의 박탈감과 400여 소수민족의 전통음식문화 소멸이라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高성장 바람 타고 화려해진 식탁, 그 아래엔 상실과 박탈의 그림자
2006년 5월 초순 노동절이 막 끝난 늦봄에 나는 베이징에 갔다. 간 김에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이던 사오셴수(邵獻書) 선생을 오랜만에 만났다. 상하이 사람 특유의 사투리를 쓰면서 반갑게 나를 맞은 그는 이제 74세의 노인이 됐다. 그러나 1998년 새로 장만한 그의 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잔다. 중국에선 식사하자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이 밥을 사게 마련이다. 요즘 중국인들의 형편이 제법 넉넉해지긴 했다지만, 비교적 값이 싼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겠구나 생각했다.

저녁이 되어 아들이 귀가하자 선생 부부와 아들, 그리고 나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선생의 발걸음이 학교를 향하지 않는다. 내가 어느 식당으로 가느냐고 묻자 이 근처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는데 맛이 아주 좋단다.

내심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들을 따랐다. 식당 내부는 제법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손님도 제법 많았다. 1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무려 12개, 그리고 룸도 여러 칸 있으니 상당히 큰 식당이었다.

자장·#47760;의 부활

테이블에 앉은 후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한 가지씩 주문하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니 중국인의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음식 값이 꽤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 선생은 가격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듯하다. 전채(前菜)부터 시작해 일곱 가지 음식을 시켰다. 손님이 많아서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못한 이야기와 내가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문한 음식이 모두 나오자 마지막에 면(麵)을 먹자고 선생이 제안했다.

선생이 시킨 면은 ‘자장·#47760;(炸醬麵)’이다. 내가 베이징에 살던 1994년부터 1998년까지만 해도 자장·#47760;을 시내 식당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상하이 사람이면서 입맛이 까다로운 선생이 어떻게 자장·#47760;을 먹겠다고 하는가. 나는 대뜸 그 까닭을 물었다. 선생 대답이 재미있다. 문화대혁명 때 여름이면 먹던 베이징 음식이 요사이 부활해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맛도 괜찮아서 좋단다. 선생의 아들은 자장·#47760;을 왜 먹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생 부부를 바라본다.

사실 1992년에야 중국대륙과 수교를 했지만 우리에게 중국은 그다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역사책에서도, 역사소설에서도, 심지어 사상과 종교에서도 중국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특히 1880년대 화교들이 한반도에 처음 중국식당을 연 이래 10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들어와서 대부분 한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오늘날 중국식당은 한국인이 사는 동네의 골목골목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집’으로 통하는 이들 식당으로 인해 한국인에게 ‘북경요리(北京料理)’나 ‘산동요리(山東料理)’나 ‘사천요리(四川料理)’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했다. 그래서 수교하자마자 베이징에 간 한국 사람들은 중국음식을 남의 나라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하게 비유하면 동네 중국집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여기며 먹겠다고 덤벼든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무작정 식당에 가서 ‘탕수육’ ‘류산슬’ ‘양장피’ ‘짜장면’을 외치는 한국 관광객도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음식 이름이 중국어인줄 알았는데 그들이 알아듣질 못하자 “도대체 우리나라 중국집 음식과 베이징의 중국음식이 왜 이렇게 다르냐”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음식에 고명으로 올라오는 ‘샹차이(香菜· 고수)’ 때문에 중국음식이 싫다는 한국인도 생겼다. 또 간이 너무 짜서 도저히 못 먹겠다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수교 이후 만난 중국의 베이징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동네 중국집의 ‘북경요리’는 없었다. 한국에서 중국음식의 대명사가 바로 ‘자장면’인데, 그것도 없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자장면타령’을 읊조리던 사람도 있었다. 결국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요사이 이 이야기는 당연지사가 됐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매년 10월 ‘자장면축제’를 개최하면서 더욱 우쭐해진다. 심지어 자장면의 원조가 바로 인천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자장면을 선생은 자연스럽게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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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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