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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꺼풀 벗겨본 미국 2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빈곤할수록 살찌는 미국 식탁 아이러니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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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둑한 뱃살이 부(富)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근육이 적당하게 붙은 마른 몸매가 가진 자의 기준이 됐다. 값싼 음식은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낮은 반면 정성스레 가꾼 재료로 만든 고급 음식은 건강식이 된다. 식탁 간 빈부격차가 분명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소수인종의 비만도가 훨씬 높다. 음식 선택권과 건강조차 돈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미국으로 유학 오기 전 마냥 설레기만 했던 건 아니다. 30년 가까이 한국에서만 생활한 데다 늘 가족과 함께 산 까닭에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았다. 우선 언어가 가장 큰 걱정이었고, 말로만 들던 소수인종에 대한 미묘한 차별도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미국 생활의 불편함은 좀 더 사소한 곳에서부터 찾아왔다. 바로 먹을거리였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혼자 사는 유학생인 내게 미국 먹을거리의 포장단위는 너무 컸다.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았다. 게다가 대부분 묶음 판매를 하는 통에 먹을 만큼만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유학 초기, 아침에 먹을 식빵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였다. 서른 쪽가량의 식빵 두 봉지를 한 봉지 가격에 팔고 있었다. 일주일 남짓한 유통기한 안에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분량이어서 한 봉지만 들고 계산대에 섰다. 어차피 버려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아해하는 점원에게 서툰 영어로 짧게 설명했지만, 공짜를 마다하는 것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기한 내에 음식을 처분하기 위해 과식하는 날이 늘어갔다. 오랜만에 냉장고 청소라도 하는 날이면, 언제 사뒀는지도 가물가물한 쓰고 남은 식재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약중독보다 무서운 음식중독

물론 적은 단위로 포장된 물건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주로 계산대 옆에 소량 비치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별도의 공간에 진열돼 있다. 또한 낱개로 물건을 구매할 경우 단가가 현격히 비싸지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묶음으로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도 다량을 구매하면 덤을 끼워주는 판매방식이 있으니 별로 놀라울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장을 보면서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미국에서는 많이 사면 보너스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적게 사면 페널티를 무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제품이 다량 포장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과자나 음료처럼 유통기한이 긴 제품은 오래 두고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열면 멈출 수 없다(Once you pop, you can´t stop)’는 미국 유명 과자 회사의 광고문구처럼, 일단 제품 포장을 뜯으면 빠른 시간 안에 소비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감자칩과 같은 고열량 식품의 경우 대부분 1봉지에 2000kcal가 넘는다. 성인 1일 열량 권장량이 남성의 경우 3000kcal, 여성의 경우 2200kcal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제과업체들이 최근 100kcal 단위로 포장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20개들이로 묶어 판매한다.

문제는, 식욕이 인간의 가장 큰 욕구인 만큼 억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 TV채널에서 방영한 비만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꽤 충격적이다. 체중이 200~300kg에 달하는 초고도 비만 환자들의 일상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한 남성은 하루 3만kcal 이상의 열량을 섭취했다. 그는 내장지방이 폐를 압박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했지만 일반인의 10배가 넘는 양의 음식섭취를 멈출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음식중독자(food addict)라고 부른다. 약물중독이나 알코올중독처럼, 단순히 개인의 의지로 고열량 음식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0년대 들어 각종 패스트푸드 업체에 책임을 묻는 ‘비만소송’이 줄을 이었고, 비만을 과연 중독으로 볼 수 있는지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2003년 프린스턴 대학의 한 연구팀은 쥐실험을 통해 패스트푸드나 과자처럼 설탕과 지방이 다량 함유된 식품이 마약만큼이나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송을 제기한 비만환자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아직까지 승소한 사례는 없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담배소송’으로 재미를 본 변호사 집단이 패스트푸드 업체를 다음 먹잇감으로 택해 소송을 조장하고 있다는 냉소적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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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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