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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꺼풀 벗겨본 미국 3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깎고 다듬고 짜깁고 ‘리얼(real)’ 없는 리얼리티 쇼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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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훔쳐보기는 재밌다. 훔쳐본 일상이 의외라면 더 그렇다. 시청자는 마냥 새침할 것 같은 미녀 배우가 드르렁 코를 골고, 얼굴만 봐도 우스운 개그맨이 근엄하게 자녀를 호통 치는 리얼리티 쇼를 보며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안도와 짜릿함을 동시에 느낀다. 한데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비분강개하다 보면 이런 의문도 든다. 같은 세상을 사는데 내 일상은 왜 평화롭다 못해 단조로울까? 당연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편집된, ‘허구의 리얼(real)’이니까.
현실보다  재미있는 TV속 현실?

심플 라이프.(좌) 오스본 가족.(우)

요즘 가상의 연예인 커플이 ‘모의 결혼생활’을 하는 리얼리티 쇼가 한국에서 인기라고 한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남녀 연예인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부부처럼 지내면서 빚어내는 에피소드가 색다른 재미를 주는 듯하다. 설정만 주어질 뿐 내용을 채우는 건 출연자들의 실제 모습이라고 하니 리얼리티 쇼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이라기엔 그들의 말과 몸짓은 어딘가 어린 시절의 소꿉장난과 닮아 있다.

TV 프로그램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 온 가족이 즐기는 퀴즈쇼가 인기를 끌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토크쇼가 붐을 이뤘다. 요즘 대세는 리얼리티 쇼다.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 ‘리얼 휴먼 버라이어티’ 등 웬만한 프로그램 앞에는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대사는 물론 농담까지 대본 그대로 말하던 시절에 비하면 즉석 대사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요즘의 오락 프로그램은 말처럼 ‘리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사실 작가의 요구에 따른 캐릭터 설정임을 각종 연예정보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현실’일까.

‘빅 브라더’의 짜릿함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보는 것은 ‘가상현실’이다. 이는 현실과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리얼리티 쇼는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가상현실은 유쾌하다. 현실 속의 초라한 부분은 편집돼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현실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 여기에 리얼리티 쇼의 인기 비결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의 포맷은 1999년 네덜란드에서 방영된 ‘빅 브라더 (Big Brother)’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 출연자를 한 장소에 두고 약 3개월간 그들의 일상을 24시간 감시한다. 매회 출연자들은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정한다.

카메라에는 시기, 질투 등 공적인 상황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들이 가감 없이 포착됐다. 훔쳐보기의 짜릿함은 단숨에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탄, 3탄 시리즈가 제작됐고 수십 개국에 프로그램 포맷이 수출됐다.

본격적인 리얼리티 쇼의 전성시대는 미국 CBS가 2000년 미국판 ‘빅 브라더’를 제작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서바이버(Survivor)’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배철러(The Bachelor)’ 등 셀 수 없이 많은 리얼리티 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소재도 다양해서 짝짓기, 가수 오디션, 슈퍼모델 선발, 취업, 다이어트, 의상 디자인, 공포체험, 심지어 아내 바꾸기에 이르기까지 안 다뤄본 것이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제작된 리얼리티 쇼가 200여 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에서 리얼리티 쇼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에 따르면 2004년 리얼리티 쇼의 방영시간이 시트콤을 능가했다. 리얼리티 쇼가 미국에 도입된 지 불과 4년 만의 일이다. 코미디, 드라마, TV용 영화 방영 시간은 크게 줄었다.

미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리얼리티 쇼의 최대 제작국이자 수출국이다. 국내에도 웬만한 미국 리얼리티 쇼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소재는 다양해도 이들의 공통분모는 ‘스타 만들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타가 되고자 하는 일반인의 욕망이다. 리얼리티 쇼의 최종 승자에게는 엄청난 상금과 함께 스타의 길이 보장된다. 현대판 신데렐라의 탄생이다.

‘평등지향’ 한국식 리얼리티 쇼

한국식 리얼리티 쇼는 미국 스타일과는 다르다. ‘리얼’을 표방한다지만, 드라마보다 조금 덜 연출된 상황일 뿐 계산된 설정 속에 연예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기존의 오락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다. 신데렐라도 없다. 한국의 리얼리티 쇼는 오히려 스타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소탈하고 소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매주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거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코를 골거나 잠에서 막 깬 얼굴을 공개하는 식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연예인들의 인간적 면모에서 시청자는 재미를 찾는다. ‘리얼’이라는 동일한 모토를 표방하지만 표출되는 양상은 미국과 상반된다. 왜일까.

한국인의 평등의식이 유난히 강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바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저서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내면화된 한국인의 평등주의를 지적했다. 이는 한국 리얼리티 쇼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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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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