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입헌군주제 vs 공화정’ 갈등이 진짜 이유…아직은 ‘찻잔 속 태풍’

  • 전성옥 연합뉴스 방콕특파원 sungok@yna.co.kr

    입력2008-10-07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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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을 타고 전해오는 태국 정변은 미스터리다. 현직 총리가 대단치도 않은 이유로 국민들로부터 사퇴를 요구 받고, 군부는 총리의 소요진압 요청을 공개적으로 거부한다. 비상사태, 계엄령, 쿠데타 등이 일상처럼 벌어지지만 국가 위상이나 경제사정은 별다른 흔들림이 없는 듯하다. 태국 정국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자가 그 배경과 맥락을 꼼꼼히 풀이했다.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8월26일 태국 방콕 정부청사 인근에 시위군중이 운집해 항의행진을 벌이고 있다. 태국 언론은 이날 군중이 방콕의 관영TV 방송국을 점거해 방송중단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 장면 #1 8월26일 방콕 중심가의 정부청사

    청사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수천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웅성대던 시위대의 소란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순간 시위대 전면에 있던 한 젊은이의 외마디 구호가 터져 나오면서 군중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정부청사 정문으로 향했다. 시위대는 손쉽게 정문과 담장을 넘어 총리실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정부청사 내 총리실 앞의 잘 가꾸어진 꽃밭과 잔디밭은 시위대의 발 아래 짓이겨졌다. 사막 순다라벳 총리와 각료들은 국정 심장부인 정부청사를 시위대에 내준 채 시 외곽 군 최고사령부로 자리를 옮겼다.

    ▼ 장면 #2 8월29일 태국 남부 휴양지 푸껫 공항

    태국의 대표적인 관광휴양지인 푸껫 지방의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이 갑자기 국제공항으로 몰려들더니 주차장과 활주로를 점거했다. 수적인 우세에 눌린 공항경찰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몬루디 켓판드 태국공항공사(AOT) 대변인은 서둘러 기자들에게 “푸껫 공항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점거농성을 풀기 위해 주지사까지 나서 협상을 시도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오히려 공항 점거농성은 인근 주(州)까지 확산돼 핫야이와 크라비 공항이 잇달아 폐쇄됐다.

    진작 결딴났어야 하지만

    푸껫 공항은 사흘 만에 정상화됐지만 수도인 방콕의 정부청사 점거농성은 9월12일 현재까지 18일간 이어지면서 반정부 시위대의 ‘해방구’로 변했다.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들이 정부청사를 에워싼 채 군경과 친정부 시위대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 특히 정문은 PAD의 젊은 시위대들이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로 이중의 벽을 쌓고 소지품을 철저히 검색한 뒤 출입을 허가하고 있다.

    9월2일 새벽 친(親)-반(反)정부 시위대가 충돌해 1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한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체 경계는 더욱 강화됐다. 바리케이드 안쪽 벽에 나무막대와 쇠 파이프, 중고 골프채를 꽂아놓고 보호용 헬멧 100여 개를 걸어놓아 출동 태세를 갖췄다. 삼엄한 분위기다.

    총리실 맞은편 잔디밭에는 시위와 농성을 이끄는 대형 연단이 위치하고, 연단 뒤쪽에는 ‘마지막 전쟁’이라고 쓰인 글귀와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정부청사는 수천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매일 숙식을 하면서 밤샘농성을 할 수 있도록 온통 천막으로 덮여 있다. 청사의 다른 쪽에는 부패 공판에 참석하지 않고 영국으로 도피한 탁신 치나왓(58) 전 총리와 부인 포자만 여사에 대해 법원이 발행한 체포영장을 대형 걸개그림으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국왕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노란 옷과 노란 머리띠 차림의 시위대는 PAD 지도부의 연설에 손바닥 모양의 ‘짝짝이’를 두들기며 환호한다. 머리띠엔 ‘태국을 위하여’ ‘국왕 사랑’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노란색은 태국에서 왕실을 의미한다.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2006년 6월 불교 행사에 참석한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부부.

    정부청사는 2년 전 이맘때 시위대 대신 군이 차지했었다. 손티 분야랏끌린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이끄는 쿠데타군은 청사 주변에 탱크를 배치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뒤 헌법 발효를 중지시켰다. 군부가 내린 계엄령은 순차적으로 풀리다가 1년8개월 만인 올 4월에야 최종 해제가 결정됐다.

    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온 한국 국민에게는 듣기에도 섬뜩한 비상사태, 계엄령, 쿠데타 등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게 태국의 현실이다. 특히 정부청사와 국영방송국, 국제공항이 시위대에 의해 점거될 정도라면 그 나라는 결딴이 나도 진작 났어야 한다. 그럼에도 태국은 동남아국가연합을 선도하는 지역 중심국가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관광대국 지위를 누린다.

    이렇듯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태국의 현 정국을 이해하려면 태국식 입헌군주제하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국왕의 민간 친위대 PAD, 태국 정치사의 풍운아 탁신 등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주역들의 성격과 역할을 파악해야 한다.

    태국 국민은 푸미폰 국왕을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한다. 즉위 62주년이 된 그는 입헌군주제 국왕 가운데 재위 기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다. 법적인 권한은 거의 없지만 국민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유럽 왕실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데 익숙한 외부인에게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즉위 이후 그는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정치, 사회적 격변기마다 위기관리자 역할을 해왔다.

    푸미폰 국왕은 1927년 12월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부친인 마히돌 왕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마히돌 왕자는 당시 하버드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유아일 때 부친을 잃은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조국 시암 왕국이 입헌군주국 타이로 변해가는 소용돌이를 지켜봐야 했다. 1946년 국왕으로 즉위한 형이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하자 왕으로 선포된 그는, 4년 후인 1950년 공식 즉위하면서 제9대 라마라는 왕명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땅의 힘 - 비할 바 없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태국에서는 택시와 사무실, 상점 등 어디서든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영화관에서도 관객은 화면에 비친 국왕 모습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립한다. TV와 라디오에서 하루 2차례씩 국가가 연주되면 시민들은 가던 길과 하던 일을 멈춘다.

    푸미폰 국왕의 재위 기간에 총리는 20여 명이나 바뀌고 헌법이 15차례 개정됐으며 19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국왕의 지위는 엄격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의 개입은 위기 때마다 극적인 효과를 발휘해왔다. 태국 출라롱콘 대학의 티티난퐁 수드히라크 정치학 교수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은 국왕이 탈출로를 찾아내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태국 정부청사를 점거해 무정부 상태의 상황을 연출하며 향후 정국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 가는 ‘태풍의 눈’ PAD는 2005년 결성됐다. 현재는 언론인, 관리, 노조 대표, 교수 등 출신 배경이 다양한 인물 다섯 명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중 PAD의 최근 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는 양대 지도자는 손티 림통쿨과 잠롱 스리무앙. 위성TV와 라디오 방송국 등 다수의 언론기관을 소유하고 있는 손티는 탁신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탁신이 2001년 총리직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사이가 벌어져 반(反)탁신 세력의 중심인물로 변신했다. 한국에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잠롱도 한때 탁신의 멘토 역할을 했다가 등을 돌린 인물이다.

    PAD가 탁신과 사막을 비롯한 탁신의 추종세력에게 강한 적의(敵意)를 드러내는 이유는 뭘까. PAD는 탁신 등이 인기를 바탕으로 입헌군주제를 공화정으로 바꾸려는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이를테면 PAD가 푸미폰 국왕과 입헌군주제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PAD는 특히 1인1표제의 서구식 민주주의가 자국에 걸맞지 않다고 여긴다. 1인1표제로 유권자 매수 행위와 함께 포퓰리즘이 성행해 오히려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PAD는 하원의원 480석 가운데 70%는 직능대표인 임명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30%만 선출직으로 남겨두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태국 사회는 친-반 탁신 세력으로 양분돼 있다. 탁신은 도시 노동자와 농민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으며 지역으로는 고향인 치앙마이 등 북동부와 북부지방이다. 반 탁신 세력은 수도 방콕의 중산층과 왕정주의자, 국왕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보이는 군부 등에 기반을 두고 지역으로는 중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풍운아 탁신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된 탁신 전 총리가 8월11일 영국으로 영구 망명을 선언했다. 그의 망명은 생애 두 번째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기업가 출신으로 뛰어난 사업수완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한때 태국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독선적인 스타일로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다.

    1949년 치앙마이에서 비단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탁신은 경찰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경찰간부 재직 중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그는 1980년대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으며 경찰 인맥을 기반으로 회사를 ‘친(Shin) 그룹’으로 키웠다. 이후 친 그룹은 이동통신, 컴퓨터 등 태국 내 최대 정보통신기업으로 급성장했다. 1998년 타이락타이(TRT)란 정당을 세워 2001년 총리직에 오른 그는 의료비 감면과 부채 탕감 정책 등으로 농촌 지역과 도시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그가 집권한 후 태국 경제는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고속 성장하는 기틀을 다졌다. 그의 최고경영자(CEO)식 국정운영 스타일과 경제를 우선하는 ‘탁시노믹스’ 정책도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탁신은 이를 바탕으로 2005년 2월 총선에서 하원 의석 500석 중 377석을 휩쓸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는 없었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자신의 회사였다. 2006년 1월 그의 일가가 회사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에 19억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국민적 분노를 산 그는 사임 위기에 내몰렸다. 이에 맞서 탁신은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지만, 이미 돌아선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PAD가 이끄는 ‘피플 파워’에 굴복, 그해 4월 사임을 발표했다. 탁신은 한 달 반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으나 결국 그해 9월 군부 쿠데타로 총리직에서 다시 축출됐다.

    ‘국왕의 군대’ 태국군

    태국 정국을 읽는 데 간과해선 안 될 또 하나의 주역이 군부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국민의 군대’이지만 태국군은 ‘국왕의 군대’다. 국왕자문기관인 추밀원의 프렘 틴술라논다 원장은 2006년 쿠데타 발생 직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국왕과 군, 정부를 규정하는 유명한 말을 했다. “기수(정부)는 왔다 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말(군)은 항상 주인인 국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군 고위직 출신으로 총리를 역임한 프렘은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

    군은 쿠데타 당시 탱크의 포신과 총부리에 노란색 리본을 달았다. 국왕의 충성스러운 군대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쿠데타군을 환영하고 음식을 대접하며 탱크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국방장관을 겸하는 사막 총리가 9월2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대를 강제 해산할 것을 지시했으나 아누퐁 파오친다 육참총장이 공개적으로 총리의 지시를 거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태국 주재 외교관들은 요즘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기 전에 이곳 임기를 마쳐야 할 텐데…”라며 푸념한다. 태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바로 국왕의 서거다. 국왕 서거는 불경스러운 말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말조차 꺼내지 않고 사후 대책 논의도 금기시될 정도다.

    푸미폰 국왕을 통해 사회적 갈등 해소의 돌파구를 마련했던 태국이 국왕 서거로 구심점을 잃게 되면 내부 권력투쟁 등 극단적인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심할 경우 입헌군주제가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최근 정국은 그저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역시 외부인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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