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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 당내 정치로 들여다본 ‘2008 美 대선’

‘폭풍’과 ‘이단자’의 맞대결…“당을 넘어야 당이 산다”

  • 김동석 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 소장 dongsukkim58@hotmail.com

민주·공화 당내 정치로 들여다본 ‘2008 美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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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대선이 양당 후보지명을 끝마치고 열전 레이스에 돌입했다.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해 15년간 활동해온 김동석 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이 양당의 전당대회를 비롯, 현장에서 지켜본 대선전 분석 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 당내조직을 ‘외부에서의 돌풍’과 케네디 가문의 지지로 돌파한 버락 오바마 후보, 사회 이슈에서 공화당 변방에 서 있다 네오콘 그룹의 지지로 후보지명을 거머쥔 존 매케인 상원의원. 이들은 과연 워싱턴 내부정치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흐름은 11월 대선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들여다본다.
잠시 옛이야기부터 해보자. 1992년 대선전에서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의심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냉전 해체의 주역이자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그는 분명 영웅이었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빌 클린턴 당시 아칸소 주지사가 도전장을 던질 무렵만 해도 빌 클린턴의 도움 요청을 받은 컨설턴트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을 정도로 판세는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당시 선거의 쟁점이 외교 안보가 아니라 민생문제가 될 것임을 간파하고 남편의 승산을 점쳤다. 클린턴의 정치컨설턴트인 제임스 카빌이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라는 유명한 홍보문구를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힐러리 클린턴의 영민한 판단이 있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냉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구현할 ‘새로운 리더십’이 그의 핵심 주제어였다. 2000년 대선이 이 ‘새로운 리더십’을 화두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양당의 후보인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가 모두 이 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그 가운데서도 앨 고어는 환경에, 조지 W 부시는 도덕적 가치에 중점을 두었다. 새로운 세기를 위한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때의 선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가 왔다. 9·11테러는 워싱턴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나라가 된 미국은 이제 리더십에서도 ‘힘의 논리’를 최우선으로 삼게 됐다. 초강경 패권논리가 지배한 ‘테러와의 전쟁’ 후폭풍은 2004년 부시 대통령을 재선시켜주었지만, 거꾸로 엄청난 반대세력을 양산했다. 형편없는 대통령 지지도가 그 가장 뚜렷한 지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다시 한번 ‘미국의 리더십’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혹은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됐다. 바로 그 열망이 한창 속도를 내고 있는 2008년 미국 대선을 읽는 키워드다.

미국 민주당에 1960년대는 의미심장한 시기였다. 케네디 대통령과 당시 민주당이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하고 소수인종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태도를 확고히 한 이래, 민주당의 당권은 북동부 지역의 케네디계 혹은 케네디 가문이 쥐게 됐다. 잠시 남부 출신의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민주당 내부의 가장 큰 계보는 줄곧 케네디계였다.

케네디계와 클린턴계

그러나 미국 정치의 보수화가 심화돼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재임 12년 동안 공화당 보수세력이 판도를 주도하자, 민주당 내부에서 백악관 티켓을 위해서는 당내 남부세력이 후보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이 당내 남부 출신들을 모아 중도적인 이념을 강조하는 ‘민주주의리더십회의(Democratic Leadership Council)’를 결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당권에 도전했다. 그의 성공은 클린턴계가 민주당 내에서 케네디계에 맞서는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민주당 내부의 두 대표 정치세력은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각각 후보를 냈다. 2000년 클린턴계의 앨 고어, 2004년 케네디계의 존 케리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대선에서 패했고, 2008년 대선을 위한 민주당의 균형추는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 중도파에 기울었다. 누가 봐도 클린턴계가 상황을 리드하는 형국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행보는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졌고 기금모금 행사는 늘 초만원을 이뤘다. 뉴욕과 LA 일대의 한인사회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기금모금 유행이 번졌다. 특히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것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2007년 미 의회의 제110회기 개원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상원 의원회관의 가장 고급스러운 회의장에 자신을 지지하는 뉴욕 주 당원들을 초청했다. 지지자들은 함께 등장한 클린턴 부부를 향해 ‘힐러리 대통령’을 외치기도 했다. 바야흐로 클린턴계의 전성기였다.

한편 2004년 11월 일리노이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의원은 그해 보스턴에서 열린 전당대회 연설로 국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부터 상원 선거를 돕던 전략가들과 함께 은밀히 차기 대권도전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던 그는, 서부의 캘리포니아와 동부의 뉴욕이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이들 두 지역의 민주당 조직은 이미 힐러리 클린턴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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