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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권교체기의 북핵 외교게임

플랜 A·B 동시에 노린 평양 vs ‘2009년 청문회’ 걱정한 워싱턴

  •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happynation@inss.re.kr

美 정권교체기의 북핵 외교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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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는 공개되지 않은 북미 간 구두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평양에서 북미 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힐 차관보가 방북 기간 왜 북한군의 리찬복 상장을 만났는지, 왜 브리핑 과정에서 한미 정상 간 협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위 ‘중대 제안’은 없었으며 핵 검증 문제가 포커스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북한을 대변하는 매체들은 연일 북한의 “획기적이고 대범한 해결책”이 제시됐을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의문을 푸는 단서 가운데 하나는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을 북미 상호 합의하에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그동안 취해온 입장에 비춰볼 때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은 핵 폐기 단계에서 북미 군사회담을 통해 합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월12일 “무력화 단계에 부합하는” 검증이라는 표현을 통해 완전한 검증은 3단계 협상 과정에서 다뤄야 한다는 평양의 입장을 확인해 주고 있다.

다가오는 2012년

이제 북한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상대로 문자 그대로 ‘빅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에 검증 문제를 타결한 것 역시 3단계 협상에서 빅딜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포석인 셈이다. 이러한 북측의 속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로 인해 생전에 치적을 달성하고 북한 체제를 안정화해 후대에 물려주려는 평양의 조바심은 한층 고조됐다. 김일성 주석도 사망 직전에 대미, 대남 관계에 유난히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강성대국 원년이자 주체 연호 사용 100주년인 2012년이 그리 멀지 않았다. 김정일 정권으로서도 ‘업적’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는 북미 수교라는 외교적 치적과 에너지 문제 해결이라는 경제적 치적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다 영변 핵시설이 갈수록 노화되면서 핵 능력 증대라는 절대적인 카드가 소진돼가는 것도 평양이 협상을 서두를 수밖에 없게 만든 이유로 분석된다.



이러한 북한 처지에서 판단할 때 최악의 상황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아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경우다. 2·13 합의는 미국 측에서 보자면 대단히 잘된 합의다. 불능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영변 핵시설은 노후화돼 고철덩어리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지난 8월 북한이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영변 핵시설의 원상복구를 추진한 데는 이러한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변 시설의 원상복구에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고 보면,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카드’를 사전에 비축한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정책 결정에 있어 평양은 플랜 A와 플랜 B를 하나의 문건에 담는 독특한 담론구조를 갖고 있다. 만약 부시 행정부가 불완전 검증안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받지 않았다면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밝힌 대로 기어이 영변 시설을 원상 복구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당시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일시적으로 지지율 역전에 성공한 시기였다. 거꾸로 협상 타결 즈음은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진 시점이다. 북한으로서는 차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말하면 누가 백악관을 차지하든 2009년에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거나 검증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평양이 또다시 상황악화 조치를 취할 개연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당장은 불능화 차원에서 인출한 폐연료봉이 이때는 핵 능력을 증대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내년에 북핵 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낙관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평양은 분명 큰 판을 벌일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지 여부다. 결국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어떤 대북정책을 취하는지가 최대 변수인 셈이다.

1기 부시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미국의 북핵 협상가들이 몰두해 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북한과는 둘만의 협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협상 자리에서 늘 위협 카드를 사용하므로 미국은 늘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었다. 오죽하면 북한과 ‘대화(talk)’할 수는 있어도 ‘협상(negotiation)’할 수는 없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미국이 협상을 피하면 북한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등 예고한 대로 행동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북한과의 협상을 회피하면 상황은 도리어 악화된다는 일종의 ‘1기 부시 학습효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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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happynation@in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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