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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에코도시 ②

스위스 취리히

실개천 되살리고 세계적인 친환경도시로 변신하다

  • 한상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

스위스 취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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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 더미 밑으로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시절이 세계적인 친환경도시인 스위스 취리히에도 있었다. 개발과 성장의 이름 아래 환경파괴를 참고 견뎌야 했던 어두운 과거는 먼 옛날이 아닌 불과 20여 년 전까지 지속됐다. 이제 달라진 취리히에는 맑디맑은 실개천이 도심 곳곳을 흐른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개천에선 벌거벗은 아이들이 첨벙거린다. 시정부는 50년이 걸리는 에너지 절약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 중이다. 생태도시 취리히에서 자연이 가져다준 건강한 삶을 생각했다.
스위스 취리히
7월3일,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취리히는 무척 더웠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햇볕이 따가웠다. 다행히 습도는 높지 않아 그늘에 서 있으면 시원함이 느껴졌다. 취리히 중앙역 주변은 여느 기차역과 다를 바 없었다. 바쁘게 오가는 도심열차(트램), 버스, 자동차로 북적거렸고 사람들도 걸음을 바삐 옮겼다. 트램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선이 거미줄처럼 머리 위에 널려 있었다. “뭐가 친환경이고 생태도시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취리히 중앙역을 나와 트램이 오고가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 불리는 반호프 거리였다. 수백년은 됐을 법한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 건물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갖춘 명품가게들이 볼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저기 세일을 알리는 간판이 즐비했다. 서울 청담동 같기도 하고 명동 같기도 했다. 그렇게 5분가량 걸어가자 취리히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취리히호수를 보고 나서야 이 도시를 왜 친환경 생태도시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한 호숫물에 시선이 고정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코발트빛이구나’ 싶었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물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호수 주변에선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람선 선착장에는 관광객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서 평균 1시간에 한 대씩 떠나는 유람선을 기다렸다.

호수 곳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도 많았다. 선착장 옆에도 있었고 다리 밑에도 있었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발가벗고 물장구를 쳤다. 아기가 물을 먹거나 말거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그냥 구경만 했다. 물이 깨끗해서 그런가 싶었다. 백조 몇 마리가 아기 옆을 유유히 지나갔다. 아기는 놀라지 않았다. 호수 한복판에는 큰 돛을 단 요트 몇 대가 바람을 가르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공업도시 & 생태도시

취리히는 총길이 40㎞에 달하는 취리히호수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취리히호수로 이어지는 리마트강과 칠강 연안에 만들어진 호반도시. 인구는 35만에 불과하다. 사실 취리히는 오래전부터 ‘돈’의 도시로,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부터 북이탈리아·프랑스·독일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유명했고 유럽을 대표하는 견직물 생산지이자 유통지였다. 17세기에는 면공업과 염색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스위스 공업의 중심지로 등장했다.

스위스 취리히

아파트 단지 곳곳에 흐르는 실개천에서 아기와 엄마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친환경도시 취리히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지만 당시 취리히호수는 직물공업이 전파·보급되는 교통로로 사랑받았다. 대신 호숫물은 오염으로 얼룩졌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라인강의 수력발전을 이용한 중화학공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취리히는 또다시 그 중심에 섰다. 세계적인 기계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20세기 초에는 도시 전체가 중화학 공장지대로 변모했다. 금융도시로의 변신도 이때부터 시작됐지만 그렇다고 공업중심지로서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런 역사를 보면 공업도시 취리히가 걸어온 과정은 세계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정리하면 이런 식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돈이 모이면서 도시가 커졌고 산과 들은 깎여나갔다. 그 자리엔 공장과 주택이 들어섰다. 사람의 손을 탄 하천과 호수는 더러워졌고 또 메워졌으며 콘크리트로 덮였다. 하천 위로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섰다.

1850년경 만들어진 통계에 따르면, 당시 취리히시에는 총연장 160㎞가량의 크고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130년 후인 1980년에는 80㎞가량만 남게 됐다. 수백년간 내려온 아름다운 하천의 이름은 4차선, 8차선 도로 이름으로 둔갑했다. 콘크리트에 갇힌, 빛을 잃은 하천은 더러운 하수를 처리하는 쓰레기장일 뿐이었다. 공업화 과정에서 온 도시를 거미줄처럼 친친 감아 돌던 맑디맑은 하천은 썩어갔고 사라졌다. 환경은 염두에 없었고 오직 개발의 숨가쁨만이 도시를 감쌌다.

그렇게 썩어버린 도시가 친환경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부터다. 1985년 취리히 도심 한복판의 알투스케크라인천을 덮고 있는 복개 콘크리트 150m가 뜯겨나간 것을 시작으로 환경복원, 특히 하천을 되살리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취리히호수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취리히시 관광국 책임자인 바흐톨드씨의 설명이다.

“1970년대까지도 환경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학자, 시민단체 회원,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하천 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자는 캠페인이 시작됐습니다. 취리히호수, 리마트강, 칠강을 포함한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복개하거나 없앤 소하천들을 되살리는 것, 대기오염의 주범이던 중화학공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1987년 취리히 주정부는 토목기술자와 생물학자, 조경설계자로 구성된 15개 도시리모델링 그룹을 만들었다. 하천 활성화, 생태보전학적 관점과 경관을 고려한 주거환경 개선, 하천의 범람 방지를 위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628개 하천이 연구대상 하천으로 선정됐다. 하천의 총연장은 자그마치 563㎞에 달했다.

공사는 하천을 덮은 도로를 걷어내고 원래의 하천을 되살리는 작업으로 시작됐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던 하천 바닥과 경사면의 콘크리트도 모두 제거됐다. 대신 그 자리에는 흙과 자갈이 깔렸다. 사라졌던 동식물이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복원작업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르자 복구된 개천에 물고기가 돌아왔다. 수초에는 잠자리 등 곤충들이 알을 낳았고 서식처로 삼았다. 자연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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