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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굿바이, 두바이

한 줌의 모래로 돌아갈 것인가

  • 두바이=오응천 │KOTRA 중동·아프리카 지역 본부장│

굿바이,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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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누각(沙上樓閣)의 신화인가,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시련인가. 두바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굿바이, 두바이
두바이는 아라비아반도 끝 부분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토후국(부족의 실력자가 지배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인구 150만명의 두바이를 도시로 볼지, 국가로 볼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부족장이 다스리는 부족국가 정도의 개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UAE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두바이 아부다비 등 7개의 에미리트(아랍어로 왕자, 군사령관을 가리키는 ‘에미르’가 통치하는 지역)가 연합국을 구성했으며, 그중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경제력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아부다비 통치자가 UAE 대통령을, 두바이 통치자가 부통령 겸 총리를 맡아왔다. UAE는 영국군이 이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한 직후인 1971년 국가로서 태동했다.

걸프만의 진주

기발한 아이디어와 리더십을 무기로 두바이와 함께 급부상한 두바이 통치자 쉐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2006년부터 작은 토후국을 다스려온 그는 두바이를 세계의 벤치마크로 만들었다. ‘쉐이크’ 는 ‘지도자’‘부족장’ 의 의미를 가졌는데, 보통의 이슬람 종교지도자도 ‘쉐이크’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름의 끝에 있는 ‘알 막툼’은 쉐이크 모하메드의 가문 이름.

알 막툼 가문이 두바이의 지도자 가문으로 등장한 것은 쉐이크 막툼 빈 부티 알 막툼이 아부다비에서 독립해 800여 명의 부족민을 이끌고 두바이로 이주한 1833년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알 막툼 가문은 지금의 아부다비 남쪽 리와 오아시스 지역을 근거지로 삼은 바니 야스(Bani Yas)족의 알 부 팔라사(Al Bu Falasah)계에서 나왔는데 아부다비의 통치자 가문인 ‘알 나흐얀’과 뿌리가 같다.

두바이는 바다를 끼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도 중계무역항으로 이따금 등장한다. 1930년대 일본이 진주 양식에 성공하기 전까지 두바이에선 진주 채취 산업이 번성했다. 하지만 양식 진주가 시장에 쏟아져 들어온 뒤로는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그러다 1950년대 영국이 두바이를 이 지역의 중심으로 선택하면서 각종 인프라 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두바이는 1966년 유전을 발견했으나 매장량이 아주 적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두바이는 항만 건설에 주력했다. 아라비아 반도 끝에 위치했다는 점을 활용해 중동과 이란, 아프리카, 인도를 연결하는 허브가 되겠다는 구상을 세운 것이다. 그 성과로 1972년 ‘쉐이크 라시드 항구’가 문을 연다. 이후 규모가 더 큰 ‘제벨알리 항구’가 완공되면서 두바이는 중동의 허브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한다.

1985년 두바이는 제벨알리 항구 주변을 무관세 지역(Free Trade Zone)으로 지정해 중동지역으로 가는 상품이 두바이를 거치게끔 유도한다. 제벨알리 항구는 무관세 지역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하늘길이 처음 열린 때는 1961년. 두바이 공항은 현재 이용객 수 기준 세계 7위. 두바이가 중동, 아프리카의 교통 허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상 최고의 도시

굿바이, 두바이

두바이 증권거래소 객장에서 시황을 보고 있는 투자자.

쉐이크 모하메드는 두바이를 ‘지상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최근 수년간 대규모 프로젝트를 벌였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야자나무 모양의 ‘인공섬’‘사막의 인공스키장’, 완공되기 전까지 누구도 실제 높이를 모른다는 세계 초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Burj Dubai)’등 기묘한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전세계는 두바이의 개발 프로젝트를 ‘아라비안 나이트’‘신밧드의 모험’처럼 신기하게 여겼다. 두바이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석유가 부족한 두바이는 과감한 개방 정책을 택했다. 중동 국가 중 가장 개방돼 있다고 보면 된다. 또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뛰어난 마케팅 수완을 보여줬다. 세계 경제 활황과 더불어 투자가 몰려들면서‘두바이 신화’란 말이 회자됐으며 두바이는 ‘중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화의 뒤편엔 그늘이 있었다.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남의 돈을 너무 많이 빌려 쓴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강펀치를 맞은 두바이는 최근 두바이월드가 지급유예를 선언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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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오응천 │KOTRA 중동·아프리카 지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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