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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아프간 9년 전쟁 수렁에 빠지나

‘제2의 베트남’분수령 될 칸다하르 대공세 앞두고 사면초가

  •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워싱턴, 아프간 9년 전쟁 수렁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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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리 매크리스털 사령관의 ‘설화(舌禍) 사건’으로 촉발한 워싱턴 내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번지고 있다. 9·11테러 직후 알카에다를 소탕하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한 전쟁이 어느새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정가와 언론의 핫이슈로 떠오른 것.
  • 여기에 끊이지 않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 추문과 파키스탄의 모호한 태도는 승부를 가를 칸다하르 대공세를 앞둔 미국의 발목을 붙든다. 매달 70억달러의 전비를 쏟아 붓고도 미국이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아프가니스탄 제2의 도시인 칸다하르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해발 1000m의 고원에 세운 도시다. 칸다하르는 아프간 파슈툰족 말로 ‘알렉산드로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부터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던 파슈툰족이 1748년 두라니라는 독자적인 왕국을 처음으로 세운 곳도 바로 칸다하르였다. 당시 파슈툰족은 부족장 아흐마드 샤를 국왕으로 선출하고 칸다하르를 수도로 정했다. 아흐마드는 25년간 재위하면서 영토 확장에 나서 파키스탄, 인도, 이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칸다하르는 80만여 명이 거주하는 아프간 남부의 중심지로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학생 2만5000여 명이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인 탈레반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고향이자 정신적인 거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라’는 이슬람 학자나 성직자, 또는 지도자에 대한 경칭으로, 칸다하르 출신인 오마르는 소련 점령 기간에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지휘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탈레반은 그를 ‘아미르 알 무미닌(무슬림의 사령관)’이라고 부른다. 오마르는 1996년 칸다하르의 모스크에 보관돼 있던 이슬람 창시자 무하마드의 망토를 꺼내 입었다고 한다. 이 망토를 입는 자는 가장 위대한 사령관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오마르는 현재 아프간과 접경인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 퀘타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퀘타는 칸다하르에서 험준하기로 소문난 차만 고개를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오마르는 이곳에서 탈레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퀘타 슈라’를 만들고 칸다하르를 비롯한 아프간에서의 무장투쟁을 지휘하고 있다. 칸다하르는 또 탈레반의 자금줄인 아편과 헤로인의 집산지다. 탈레반은 양귀비 재배농가와 헤로인 밀매업자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은 자금으로 무기를 사고 조직원 모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아프간은 전세계 아편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칸다하르가 미국이 그동안 벌여온 아프간전쟁의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직후인 10월7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간전쟁을 시작했다. 개전한 지 만 9년이 가까워오는 이 전쟁은 이미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종전의 최장기 전쟁 기록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3개월간 계속된 베트남전이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아프간전쟁을 해왔음에도 아직까지 승기를 잡지 못하자, 국제사회 일각에선 자칫하면 미국이 옛 소련처럼 아프간에서 패배한 채 철군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소련은 1979년 12월24일 당시 친소(親蘇) 공산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소련군은 최대 11만5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아프간에 주둔시켰지만 이슬람 반군인 무자헤딘과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피해가 늘어나면서 1만5000여 명이 전사했다. 소련군은 1989년 2월15일, 침공 9년 50일 만에 아프간에서 철수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련군이 첫 패배자는 아니다. 대영제국은 1838년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2만명을 아프간으로 파견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도스트 무하마드 국왕을 몰아낸 후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식민 지배에 맞선 아프간 군대의 끈질긴 저항에 영국군은 1842년 카불에서 인도로 철수했다. 영국은 철군 도중 험준한 산악에 매복한 아프간 군대의 공격으로 병사 1만3000여 명이 몰살당하고 4000여 명이 얼어 죽었다.

아프간은 이전에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몽골제국, 무굴제국 등 강대국들에 맞서왔지만 단 한 번도 순순히 지배당하지 않았다. 아프간이 ‘제국의 무덤’이라는 말을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도 역대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쏟아져 나오는 ‘제2의 베트남전쟁’에 대한 우려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아프간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칸다하르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지만, 탈레반도 미군에 맞서 대대적인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탈레반이 미군의 대공세를 막아낼 경우 전쟁에 지친 미군의 철수를 유도할 수 있다. ‘칸다하르 대전(大戰)’은 미군이나 탈레반 모두에게 명운이 걸린 승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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