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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④

빛바랜 ‘사대천왕’의 꿈 … 두 남자는 그래도 칼을 간다

리위안차오 공산당 중앙조직부장 | 보시라이 충칭시 당 서기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빛바랜 ‘사대천왕’의 꿈 … 두 남자는 그래도 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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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전 차세대 ‘빅4’의 일원으로 꼽히던 리위안차오와 보시라이.
  • 신진기예 리커창과 시진핑에 밀려 나란히 물을 먹긴 했지만, 가슴속 뜨거운 야망은 식지 않았다. 부민강성(富民强省)의 인간 본위 경제성장으로 후진타오의 눈도장을 받은 리위안차오는 640만 공산당 간부의 인사권을 틀어쥐었고, ‘범죄와의 전쟁’과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건 보시라이는 ‘대륙의 포청천’으로 불리며 인민의 지지를 끌어 모으고 있다. 과연 두 사내는 여봐란듯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올 것인가.
빛바랜 ‘사대천왕’의 꿈 … 두 남자는 그래도 칼을 간다

리위안차오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와 보시라이(薄熙來). 이들은 2007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열리기 직전만 해도 시진핑(習近平), 리커창(李克强)과 함께 차세대 지도부를 구성할 사대천왕(四大天王)으로 불렸다. 사천왕은 불교 용어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왕천(四王天)의 주신인 4명의 외호신(外護神·불국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을 가리킨다. 그러니 이들 4명이 2012년 가을 이후 10년간 중국의 핵심지도부를 구성할 인물이라는 의미였다.

제17차 당 대회 직전 시진핑은 상하이(上海) 당 서기였고, 리커창은 랴오닝(遼寧)성 서기, 리위안차오는 장쑤(江蘇)성 서기, 보시라이는 상무부장으로 막상막하의 지위에 있었다. 이들이 2012년 이후 중국 권력서열 ‘빅4’인 당 총서기 및 국가주석(1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2위), 국무원 총리(3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전국 정협 주석·4위)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었다.

리커창·시진핑에 밀려나

하지만 제17차 당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2007년 10월22일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드러난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 구성은 이 같은 사천왕 구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2002년 이후 태자당(太子黨·중국 당, 정, 군, 재계 고위층 자녀)의 선두주자로 불려온 보시라이는 급부상한 다크호스 시진핑에 크게 뒤졌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한직을 떠돌다 장쑤성 서기까지 어렵게 올라온 리위안차오 역시 퇀파이(團派·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선두주자이자 후배인 리커창을 따라잡지 못했다. 두 사람은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9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포함된 시진핑과 리커창에 밀려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올라가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제17차 당 대회 이후 단행된 인사에서 가장 불만이 큰 사람은 보시라이였다. 제16차 당 대회가 열린 2002년 한때 제4세대 지도부 구성을 앞두고 원자바오(溫家寶) 현 총리를 제치고 총리에 임명되리라는 소문까지 나돌던 보시라이였지만, 5년 뒤인 제17차 당 대회 이후엔 차세대 총리는 물론 부총리로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당 대회 직후 주어진 자리는 충칭(重慶)시 서기. 이는 6년 연하의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가 이미 맡았던 자리다. 그만큼 차세대 지도부 경쟁의 선두대열에서 크게 멀어진 것. 사천왕 중 한 사람이라는 말도 더는 나오지 않는다. 되레 여섯 살 연하인 왕양이 사천왕으로 거론되고 있다.

보시라이는 인사에 불만이 많았는지 충칭시 당 서기로 안배를 받은 뒤에도 한참동안 상무부장으로 대외활동을 계속하며 충칭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제17차 당 대회 직후 중국 공산당의 새 지도부가 공표된 뒤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조직부장이 된 시진핑과 리커창, 리위안차오가 베이징에 도착해 신고하고 위정성(兪正聲) 후베이(湖北)성 서기가 상하이 서기로 가는 등 임무 교대가 속속 이뤄졌지만, 보시라이는 11월 말까지 베이징에 눌러앉았다.

이에 따라 광둥성 당 서기에 임명된 왕양과 부총리로 올라와야 할 왕치산(王岐山) 광둥성 서기 역시 자리를 옮길 수 없었다. 홍콩 언론은 그해 11월13일 열린 충칭시 위원회 제3기 제2차 전체회의에서 왕양과 보시라이가 각각 이·취임식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보시라이는 이 회의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중앙조직부장 리위안차오가 보시라이와 함께 충칭에 도착한 것은 한참 뒤인 11월29일.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이틀 뒤인 12월1일에야 “며칠 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왕양과 보시라이를 각각 광둥 및 충칭 서기에 임명하고 (국무원 부총리에 임명될) 왕치산은 더 이상 광둥성 서기를 맡지 않도록 했다”고 보도해 인사이동이 완료됐음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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