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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⑪

영어보다 괴로운 영국의 겨울

비바람 몰아치는 ‘어둠의 터널’ 5개월

  • 전원경│작가,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박사과정 winniejeon@hotmail.com│

영어보다 괴로운 영국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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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씨 궂은 영국에서도 북쪽인 스코틀랜드의 겨울은 아무리 짧아도 5개월 동안 지속된다. 거센 비바람과 칠흑처럼 짙은 어둠, 음산한 대기.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왜 이곳을 배경으로 삼았는지
  • 실감이 난다. 사람들은 겨우내 이어지는 명절과 축제를 즐기면서 찐득찐득 들러붙는 우울함을 떨쳐내고 봄을 기다린다.
영어보다 괴로운 영국의 겨울

구름과 비 때문에 햇빛을 아예 볼 수 없는 날이 지속되는 영국의 겨울철에는 큰 명절이 많다. 10월 마지막 날인 핼러윈은 원래 미국의 명절이지만 영국에서도 국민적 축제일로 사랑받는다. 영국인들의 핼러윈 축제.

영국 생활에 어지간히 익숙해진 지금도 외국살이가 주는 어려움은 도처에 존재한다. 이 어려움들은 평소에는 잘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두더지 잡기 놀이처럼 여기저기에서 불쑥 머리를 내민다. 그 어려움은 여전히 잘 통하지 않는 영어이기도 하고, 저녁 하늘을 볼 때 문득 숨 막히게 차오르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영국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실제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나는 ‘날씨, 외로움, 영어, 물가’이 네 가지라고 대답하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게 날씨다. 그리고 다음은 외로움, 영어, 물가의 순일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답하면 독자들은 ‘영어가 첫 번째,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어려움이라니 영어에는 웬만큼 친숙해졌나 보네’ 하고 생각하실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글래스고에서 산 지 이제 2년이 되어가는 지금, 굳이 내 상황을 설명하자면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자체는 확실히 줄었다. 이젠 낯선 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도 별로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답하고, 연구실 동료들과 수다 떠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영어 실력이 영국 학생 수준으로 올라갔는가 하면 그건 결단코 아니다. 내 영어는 ‘영국 대학에서 외국 학생들이 하는 영어’ 딱 그 수준일 뿐, 절대 그 이상은 아니다(아니, 그 이하일지도 모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은 영어 실력을 더 늘려보려는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아서 그만큼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을 뿐이다.

희찬이와 희원이는 나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영어에 익숙해져서 이 녀석들은 이제 자기들끼리는 영어로 농담도 곧잘 한다. 며칠 전 학기마다 정기적으로 있는 초등학교 교사 면담에 갔더니 희원이의 담임교사인 미스 맥그리거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제게 자꾸 물어요. 왜 희원이보고 외국에서 온 친구라고 하느냐고요. 애들 듣기에는 희원이의 영어가 자기들이 하는 영어랑 똑같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들이 보기에는 희원이도 자기들처럼 스코티시(Scottish)인데, 선생님은 희원이는 외국 학생이라고 하니까 그게 이치에 안 맞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거죠. 하하하.”

조만간 나는 여섯 살짜리 딸내미에게 영어 코치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어를 그럭저럭 하게 된 탓인지 아니면 영어 배우기를 아예 체념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요즘 일상에서 영어 때문에 그리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어느덧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박사과정 학생이라 영어로 페이퍼를 쓰는 일이 여전히 큰 어려움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많이 뻔뻔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지도교수께 e메일로 필드워크 리포트를 보내면서 ‘교수님, 사실 이 리포트는 영어 튜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냥 저 혼자 썼습니다. 그러니까 문법상의 실수가 속출하더라도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필립 교수님은 내 e메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그저 ‘리포트 잘 받았다. 질리언(나의 두 번째 지도교수)과 의논해서 튜토리얼 날짜를 잡아 알려주겠다’고만 답장하셨다. 속으로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배짱만 두둑한 아줌마라고 혀를 끌끌 차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서론이 참 길었는데, 결론적으로 이곳 글래스고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영어도 물가도 아닌 날씨다. 곧 겨울이 다가올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절로 으스스 떨려온다. 그렇게나 겨울이 추운가 하면 사실 꼭 그런 건 아니다. 영국은 한국에 비하면 그리 춥거나 덥지 않다. 아무리 더워도 한여름 기온은 25~26℃이고,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은 거의 없다. 글래스고의 1월 평균 기온은 3℃, 7월 평균 기온은 17℃쯤 된다.

북해의 차디찬 비바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1년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큰 문제가 없는 날씨다. 사시사철 긴팔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다니다가 겨울에는 외투 하나 걸치면 되니 말이다. 북위 65도쯤에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여름에도 짧은 소매를 입기에는 좀 서늘하다. 이처럼 1년 내내 기온이 크게 오르내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지진이나 태풍, 홍수 등도 거의 없다. 날씨로 인한 자연재해는 한국에 비하면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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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박사과정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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