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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⑪

영어보다 괴로운 영국의 겨울

비바람 몰아치는 ‘어둠의 터널’ 5개월

  • 전원경│작가,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박사과정 winniejeon@hotmail.com│

영어보다 괴로운 영국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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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자연재해도 없는데 왜 날씨가 문제라는 걸까. 결정적인 문제는 영국이 1년 365일 중 평균 190일 이상 비가 오는 ‘비의 나라’라는 점이다. 비가 올 때는 비만 오는 게 아니라 꼭 바람이 같이 분다. 통계적으로 일주일에 4일쯤은 비가 온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영국의 여름이 아무리 짧다고 해도 여름인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두 달 정도는 비가 잘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나머지 기간, 특히 겨울인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사흘 중 이틀은 반드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비가 안 오는 날이 드물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영국은 서머타임제를 실시해 10월부터 3월까지는 안 그래도 짧은 낮이 더 짧아진다. 11월이 되면 오후 3시부터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 무렵까지 열대여섯 시간 동안 먹물처럼 깜깜한 어둠이 지속된다. 지난해 11월말, 교수님과 2시30분부터 튜토리얼을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좀 길어져서 4시가 다 돼서야 연구실을 나온 적이 있다. 1시간 반에 걸친 긴 시간 동안 두 교수님께 이리저리 지적당하고 깨지느라 나는 완전 ‘그로기’ 상태였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학과 건물을 나섰는데, 어느새 진한 어둠이 깔리고 교정의 오렌지빛 가로등들이 일제히 켜져 있었다. 그리고 예외없이 북해의 차디찬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아, 그 순간의 막막한 심정이라니. 내가 어쩌자고 이 멀고 먼 나라까지 와서 뭔 공부를 한답시고 찬바람 맞으며 헤매고 있나…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목까지 차 올라와 숨이 막혔다.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데 바람은 불지, 비는 세차게 내리지, 날은 한밤중처럼 어둡지, 정말이지 그 자리에 턱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엔 왜 영국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좀처럼 쓰지 않는지 참 신기했다. 비 오는 날에도 영국의 거리에서는 우산을 쓴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우산을 잘 팔지도 않고 그나마 우산 값이 무척 비싸다. 이 사람들이 우산이 비싸서 안 쓰는 건가? 영국 사람들은 대부분 후드가 달린 방수 점퍼를 입고 다니다가 비가 오면 후드를 뒤집어쓴다. 그마저 귀찮은지 아예 모자 없이 비를 맞으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도 많다.

영국인들이 우산을 안 쓰는 까닭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이렇게 비를 맞고 다니고 젖은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도 않아서인지, 영국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머릿니가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80년대에 이미 머릿니가 자취를 감춘 우리 기준으로 보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전에 런던에 있는 한인 미용실에 갔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인 손님들의 머리를 만지다 보면 머릿니가 슬슬 기어 다니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거다. 그런 손님들을 기분 상하지 않게 돌려보내는 게 미용실 처지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학교에서 매달 오는 뉴스레터에 아이들의 머리를 정기적으로 검사해 달라는 당부가 써 있을 정도로 머릿니 문제는 제법 심각하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인데 분명 사실이다.

아무튼 왜 영국인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안 쓰는 걸까. 이곳에서 몇 달만 살아보면 이 의문은 금방 풀린다. 비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서 우산을 써봤자 머리와 얼굴만 빼고 온몸이 흠뻑 젖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찬 바람에 우산이 홀랑 뒤집히기도 하고 우산에 질질 끌려가기도 한다. 요컨대 비가 올 때 우산을 써본들 큰 소용도 없고 우산 때문에 걷기만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영국에서는, 특히 겨울의 영국에서는 좋은 옷 입고 좋은 신발 신을 이유가 전혀 없다. 어차피 금방 젖고 금방 망가지기 때문이다. 대신 방수 점퍼와 장화 없이는 살아가기가 무지 어렵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해는 겨우 몇 시간밖에 뜨지 않고, 그나마 구름과 비 때문에 햇빛을 아예 볼 수 없는 날이 며칠이고 지속되는 게 영국의 겨울이다. 그리 춥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어둡고 엄청나게 우울하다. 그래서인지 영국에는 10월부터 12월 사이에 국민적 명절이 많다. 10월 마지막 날인 핼러윈은 원래 미국의 명절이지만 영국에서도 국민적 축제일로 사랑받고 있다. 모든 학교에서 핼러윈 파티가 열리고 아이들은 귀신이나 마녀, 해적 등으로 분장하고 핼러윈 파티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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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박사과정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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