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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아프간 용병과 순항미사일, 회유와 협박 총동원된 희대의 ‘인간 사냥’

  • 홍순명│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전문위원 sergeyevich@gmail.com

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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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싱턴은 왜 타국에서의 군사작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빈 라덴을 사살했을까. 파키스탄에 대한 협조 요청이나 재판 회부 같은 다른 방식은 과연 불가능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간 국제 테러활동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경험한 일련의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9·11 테러를 계기로 급선회한 미국의 대(對)테러 정책 변화가 그 핵심에 놓여 있다. 전직 미 고위관료들의 회고록을 통해 속속들이 들여다본 미국과 빈 라덴의 20년 전쟁사(史).
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5월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 대통령, 마셜 브래드 웹 합동특수전사령부 준장, 데니스 맥도너 국가안보부보좌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1993년 4월, 리처드 클라크 당시 백악관 대(對)테러담당 특별보좌관은 외신 요약을 훑어보다 쿠웨이트를 방문 중이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를 저지했다는 기사를 발견한다. 중앙정보국(CIA) 등 어떤 기관에서도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던 클라크 보좌관은 의구심을 품고 현지 대사관을 통해 사실 여부를 탐문한다. 결과는 사실. 쿠웨이트 당국이 적발한 음모를 감춰두고 있었던 것이다.

걸프전 직후였던 당시 이라크 정보부는 쿠웨이트 국왕과 부시 대통령의 행렬 주변에서 도요타 승용차에 장착된 폭탄을 원격 폭발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문제의 차량이 사소한 사고를 냈고, 쿠웨이트 경찰에게 폭탄이 발견된 것이었다. 미국은 쿠웨이트 정부를 한참이나 다그친 뒤에야 수사내역을 브리핑 받고 용의자 및 증거물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의 점령에서 쿠웨이트를 구해냈건만 쿠웨이트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백악관은 경악했다.

전직 CIA 요원인 로버트 베어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테러범의 체포와 관련해 미국에 비협조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책 ‘악마와의 동침(Sleeping with the devil)’에는 루이스 프리 당시 FBI 국장이 코바르 소재 미군 막사 폭탄공격에 대해 조사를 시도했던 당시의 모습이 기술돼 있다. 프리 국장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내무장관은 홍해 연안의 자기 요트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고, 대신 내무보안기관에 소속된 하급관리만을 보냈다. 1997년에는 수배 중이던 헤즈볼라 지휘관 이마드 무그니야가 사우디에 입국한다는 첩보가 입수됐지만, 미국의 체포작전이 시작되자 사우디 정부가 아예 그의 비행기를 다른 곳으로 회항시킨 일도 있었다.

카타르 또한 미국을 좌절시켰다. 베어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카타르는 지명 수배 중인 알카에다 테러범 10여 명을 초청했다. 카타르 정부가 알카에다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대장 칼리드 셰이크 무하마드를 숨겨주고 있다는 정보를 확보한 FBI는 카타르에 무하마드의 신병을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무하마드는 카타르 정부의 고용인 신분이었지만, 카타르는 그를 찾을 수 없다고 둘러댄 후 해외로 빼돌렸다. 도하를 찾았던 FBI 요원들은 허탕만 쳤고 시간을 번 무하마드는 훗날 9·11테러를 총지휘하게 된다. 클라크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FBI 체포팀은 카타르 국왕의 은밀한 체포 허가를 받고 작전에 임했지만 정보가 왕궁 어디선가 새나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다. 1990년대 중반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 추방돼 수단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의 체류를 둘러싸고 미국의 외교적 압력이 가해지자 수단은 그를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신병을 인도하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1996년 사우디는 빈 라덴을 넘겨주겠다는 수단의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빈 라덴은 당시 사우디에서 너무 인기가 높았으므로 그를 체포하면 혁명을 자극할 위험이 있어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베어의 관측이다. 이러한 현상은 심지어 9·11테러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됐다. 사우디에서는 이 사건 연루자들에 대해 단 한 건의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고 쓸 만한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중동 국가들의 이중 플레이

최근 파키스탄 영토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과 관련해 다양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타국에서의 특수부대 습격작전은 주권침해가 아닌가, 생포해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사살한 것이 과연 정당한가 등에 대한 논쟁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논객인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이라크 특공대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에 침투해 그를 암살하고 시신을 대서양에 버렸다면 어땠을까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라크 정보부가 실제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알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미국이 빈 라덴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이렇듯 논란의 소지가 큰 방식을 택한 이유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꽤 먼 길을 가야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 테러활동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워싱턴이 겪었던 일련의 경험이 대표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국제법과 국내법을 준수해가며 완벽하게 깔끔한 방식으로 테러 지도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미국이 의구심을 품게 된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빈 라덴에 대한 추적 시도와 실패, 그리고 포위망을 빠져나간 그의 9·11테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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