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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경제대국’ 일본의 추락 날개가 없다

  • 장제국│동서대 총장·국제정치학 jchang@dongseo.ac.kr

‘경제대국’ 일본의 추락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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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발 뉴스는 거의 부정적이다. 일본의 국가 부도 가능성이 말레이시아보다 높을 수 있다는, 일본으로선 치욕적인 분석이 외신을 장식하기도 한다. 경제 관련 지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 ‘세계 2위 경제대국’이던 일본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경제대국’ 일본의 추락 날개가 없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오른쪽) 등 일본 각료들이 지난 2월 3일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195%를 기록했다. 올해는 233%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누계 재정적자는 이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2010년 GDP가 중국에 밀려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줬다.

일본의 GDP는 1990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GDP의 14.3%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했다. 2008년 8.9%로 곤두박질했다. 1인당 GNP 순위도 2000년 세계 3위에서 2008년에는 23위로 주저앉았다. 스위스 IMD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1990년 1위였으나 2010년 27위로 내려갔다.

노동시장지표는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한다. 현재 일본 사람 세 명 중 한 명이 퇴직자다. 2030년엔 두 명 중 한 명이 퇴직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2055년이 되면 퇴직자 1명당 노동인구는 1.5명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우울한 미래…국민적 사기 저하

이러한 우울한 경제지표와 미래 예측은 일본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 필자가 만나는 일본 사람들은 “일본엔 이제 미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침체된 사회 분위기가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도쿄의 서점 신간 코너엔 ‘일본 2012년 파산’ 등 일본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즐비하다.

정치권의 리더십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난세를 구해줄 위인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에 대한 비판은 거의 매일같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일본 국민은 2009년 자민당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그러나 이때의 국민적 흥분은 하토야마 정권의 턱없이 비현실적 정치지론으로 인해 대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러고선 총리가 세 번이나 교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이라는 악몽 같은 국난이 찾아왔다. 국민을 안심시키기는커녕 허둥대던 정치권의 행태에 국민은 아연실색했다. 무능한 대응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간 나오토 정권이 몰락하고 노다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에도 정치권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소비세율 인상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심각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도 관심사가 된다. 최근 세계 가전 시장에서 소니나 파나소닉을 꺾고 삼성과 LG가 선두로 올라섰다는 소식이 일본 주요 신문에 실렸다. 그러자 한국 언론도 이를 일제히 받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일본이 스스로 인정했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서울 주재 한 일본신문 특파원이 “일본 언론 보도가 한국 국민의 만족감을 한껏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은 천재지변임에도 불구하고 곪아왔던 일본 시스템을 일거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진도 9라는 초유의 강진과 해일, 방사능 유출 앞에서도 일본 국민은 특유의 침착함, 인내심, 질서를 잃지 않았다. 한국인의 온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치권과 관료조직의 무능과 불투명성은 큰 실망을 안겨줬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손님

‘일본주식회사’의 ‘충직한 사원’인 국민은 ‘믿었던 간부’에 실망했다. 국가의 모든 것을 위임받은 ‘정-관-업’ 삼두마차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생긴 사실이 드러났다. 완벽하다는 매뉴얼은 실은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뽑아놓은 국가지도자들은 ‘무능거사’였다. 더 심각한 것은, 인내 훈련만 받은 일본 국민이 무력자로 전락해 있는 점이었다.

일본은 1960~70년대 고도성장을 국가적 목표로 삼았고 1980년대 들어 이 목표를 이뤘다.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는 1979년 ‘최고로서의 일본 (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책에서 일본의 눈부신 성장을 알렸다. 이 책은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인이 긍지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일본은 G7 정상회담의 주최국이었다.

일본 모델은 한국,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등 신흥 아시아 국가의 귀감이 됐다. 이들 국가도 일본식 정부 주도 산업정책을 도입해 성과를 냈다. 어떻게 보면 일본은 정부 주도 산업정책의 원조 국가다. 최우수 인재로 구성된 관료조직이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정치권과 협의를 거쳐 예산과 법률을 지원받은 뒤 산업계를 지도해 성장에 매진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부와 권력은 관료 정치인 기업인이 쥐고 있지만 대다수 일반 국민을 중산층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국가 시스템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 경제발전 모델도 이러한 일본 모델과 한국 모델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모델은 새로운 국가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일본 모델은 고도성장 단계에선 유효했지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뒤론 철 지난 낡은 방식이 돼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 모델을 계속 고수했고 위기는 심화됐다.

1980년 버블경제 붕괴 후 일본에서 선진국체제로의 전환 시도는 두 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우정민영화 개혁, 도로공단 개혁, 노동시장 유동화, 비정규직 고용 확대 등이다. 이는 일본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보자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정-관-업 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절반만 성공했다.

고이즈미는 대외적으로도 대미 일변도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시도했다. 그는 북한을 두 번 방문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회담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수동적 외교에서 탈피해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일 수교 등 현안을 독자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한 새로운 시도였다. 일본 내 극우세력과는 일정 정도 선을 긋는 외교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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