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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청나라 속국…” 중국의 역사공작 ‘신청사(新淸史)’를 고발한다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조선은 청나라 속국…” 중국의 역사공작 ‘신청사(新淸史)’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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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공정으로 고조선-고구려-발해사를 삼키려 했던 중국이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묘사할 가능성이 높은 정사(正史) ‘신청사’를 만들고 있다. 중국은 정사로 인정되지 않은 ‘청사고’에 속국전(屬國傳)을 만들고 조선을 여기에 포함시킨 전력이 있다.
  • 중화민족을 앞세우고 ‘통일된 다민족국’을 만들기 위해 만주족 역사를 정통으로 인정하려는 중국의 역사 공작 전모를 공개한다.
“조선은 청나라 속국…” 중국의 역사공작 ‘신청사(新淸史)’를 고발한다

북경의 자금성. 만주족은 자금성 주변에 강력한 부대인 팔기를 포진시켜 한족 관료들을 감시·통제했다.

‘신동아’는 2003년 9월호에 중국 ‘광명일보(光明日報)’에 실린 ‘고구려사 역사 연구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시론’을 공개해, 중국이 준비해온 동북공정을 알림으로써 반(反)동북공정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신동아’는 중국이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역사 공작의 실체를 고발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청사공정(淸史工程)’이 그것이다. 청사공정은 청나라에 대한 공인된 역사서인 ‘신청사(新淸史)’를 만드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신청사’를 출간할 예정이었으나 내부 사정 때문인지 올해나 내년으로 발간 시기를 미뤘다.

중국이 자기네 역사서를 만들겠다는 데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청사’에 ‘조선은 청의 속국(屬國)이었다’고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 정부가 공인한 정사(正史)에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표기한다면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니 한중 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독도 영유권을 넘보는 일본에 이어 민족자존 문제를 놓고 중국과 날선 대립을 해야 한다.

중국에는 한 나라가 망하면 다음 나라가 앞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통이 있다. 이를 ‘나라(代)가 바뀌면(易) 앞 나라의 역사(史)를 편찬한다(修)’고 하여, ‘역대수사(易代修史)’라고 한다. 역대수사의 전통에 따라 중국은 25종의 정사를 만들어왔다(약칭 25사). 정사가 꼭 시대 순으로 편찬되진 않았다. 한참 후에 들어선 나라가 오래전에 사라진 나라의 정사를 만들기도 했다. 한 나라에 대한 정사가 꼭 하나인 것도 아니다. ‘원사(元史)’ ‘신원사(新元史)’ 식으로 두 가지인 경우도 있다.

한족(漢族)은 자신들이 야만인으로 간주한 몽골족이 원나라를 세워 자신을 지배한 데 대해 강한 적개심을 품었다. 원을 무너뜨린 명(明)은 역대수사 전통에 따라 정사인 ‘원사’를 편찬했지만, 성의 없이 몇 달 만에 제작했다. 이 때문에 내용이 엉성하고 빠진 것이 너무 많아서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반원(反元) 감정 때문인지 미루고 미루다가 중화민국(북양정부) 시절에야 257권의 ‘신원사’를 편찬했다. 이를 1919년 중화민국 5대 총통인 쉬스창(徐世昌)이 공인함으로써 청나라가 펴낸 ‘명사’보다 늦게 나온 ‘신원사’가 25번째 정사가 됐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공인’이다. 중국은 왕이나 황제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지도자가 승인한 것을 ‘공인’으로 본다. 전문 학자들이 검토해 승인하는 게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인정으로 결정되니 정사를 정치적으로 만들 수 있다. 중국이 청사공정으로 만들려고 하는 정사를 ‘신청사’로 한 것은 과거에 제작됐으나 공인받지 못한 청사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의 공인 여부는 정사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중국의 최고지도부는 9명(현재)의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상무위원회다. 청사공정은 2002년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주룽지(朱鎔基), 리란칭(李嵐淸) 4명의 상무위원이 비준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에 따라 2003년 중국 런민(人民)대 국가청사편찬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청사공정’으로 약칭되는 국가청사찬수공정(國家淸史纂修工程) 사업이 시작됐다. 이 사업을 통해 ‘신청사’가 완성되면 다시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들의 비준(공인)을 받아 정사로 인정될 예정이다.

‘신청사’가 조선을 속국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명사(明史)’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할 ‘청사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명사’는 명이 무너진 후 중국을 장악한 청이 역대수사의 전통에 따라 편찬한 명나라 정사다. 중국 정사는 기전체(紀傳體)로 기록한다. ‘기’는 황제의 일대기와 정치활동을 적은 본기(本紀), ‘전’은 황제를 제외한 그 시대의 주요 인물을 기록한 열전(列傳)을 가리킨다. 열전 편에 외국에 대한 기록을 함께 넣었다. 조선에 대한 것은 ‘조선전’, 일본에 대한 것은 ‘일본전’으로 정리하는데, 이를 통칭 ‘외국전’이라고 한다.

우리의 정사인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의 역사만 기록해놓았다. 삼국 이전의 우리나라 기록은 없다. 중국의 네 번째 정사로 꼽히는 ‘삼국지’ 위지의 동이전은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 조상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대의 중국은 우리를 동이(東夷)로 칭했다. 동이전은 극히 중국 중심적으로 기술됐다. 이런 까닭에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동이전을 참고하면서도 매우 불편해하고 있다.

‘조선은 속국 또는 번국’

삼국지를 비롯한 고대 중국 정사에서 우리를 ‘동이’라고 한 것은 속국이라고 일컬은 것과 진배없는 멸시의 표현이다. 중국은 주변국을 동서남북에 있는 오랑캐라며 ‘사이(四夷)’로 부르고, 그에 대한 기록을 ‘사이전(四夷傳)’ 또는 ‘사이록(四夷錄)’으로 통칭해왔다. 사이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가리킨다. 동이전이 바로 사이전 중 하나였다.

송나라는 거란이 세운 요(遼)나라의 공격을 받아 북경을 포함한 16개 주(연운 16주)를 떼어주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이 항복을 ‘전연맹약(淵盟約)’이라고 하는데, 전연맹약 후 중국 정사에서는 주변국에 대한 기록을 외국전으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명사’는 조선전을 만들었으나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표현을 넣었다. ‘조선은 중국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번국(藩國)이다’라고 한 후 ‘조선을 속국으로 일컬으니 (명의) 경계 안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적은 것이다.

‘울타리 번(藩)’자를 쓰는 ‘번국’은 ‘번부(藩部)’와 같은 말로, 중국 외곽에 있는 이민족 자치구역을 가리킨다. 지금 중국은 변방에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시짱(西藏)티베트 자치구,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등을 두고 있는데 이것이 ‘번부’나 ‘번국’이었다. 중국은 외곽의 이민족을 복속시켜 1차로는 중국을 지키게 하는 울타리로 삼고, 2차로는 중국 정치 영역에 붙잡아둠으로써 중국 영토를 넓히는 전략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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