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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수니파 무장단체의 이슬람 국가 건설 보복 부른 시아파 정권의 무능과 부패

이라크 내전

  • 김영미 | 분쟁지역 전문 PD

수니파 무장단체의 이슬람 국가 건설 보복 부른 시아파 정권의 무능과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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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담 후세인이 죽고 미군도 떠났지만, 이라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천년이 넘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라크는 사실상 두 개로 쪼개졌다. 시아파 정부에 맞선 수니파 무장단체는 이라크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이슬람 국가’ 건설을 선언했다. 스스로 칼리프가 된 반군 지도자 알 바그다디의 학살과 테러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부패한 시아파 정권은 수도 바그다드를 지키는 데만 혈안이다.
6월부터 전 세계인의 시선이 이라크로 향한다.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라는 수니파 무장단체가 이라크에서 급부상하며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장악한 것을 시작으로 서부 안바르 주, 북부 디얄라 주는 물론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그리트와 사마라, 정유시설이 있는 북부 바이지까지 전 국토의 30%가 넘는 영토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ISIL은 현재 파죽지세로 남하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지역까지 접근한 상태다. 바그다드에 사는 34세의 식당 종업원 야시르 씨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지금 이라크 사람들은 2003년 미군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와 똑같은 고통에 빠져 있다. 날마다 들리는 폭탄 터지는 소리와 총소리에 떤다. 어제는 우리 앞집에 사는 이웃이 총에 맞아 죽고 오늘 아침에는 시장 갔던 우리 뒷집 아주머니가 폭탄에 사망했다.”

세계인은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며 끝난 줄 알았던 이라크 전쟁이 다시 시작된 것에 혼란스러워한다. 내전의 여파가 아랍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큰 걱정거리다. 대체 이라크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2006년, 미국은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수니파인 그를 제거한 미국은 새롭게 들어선 시아파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시아파는 이라크 국민의 60%에 달한다. 수니파는 20%에 불과하다. 미군이 밀어준 시아파 정권은 수니파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수니파 인사들을 정권에서 몰아내고 불법으로 체포, 구금했다. 시아파가 이렇게 수니파에 적대적인 것은 과거 사담 후세인의 정책에 대한 일종의 보복 차원이었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의 시작은 1980년대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었다. 후세인은 자국 내에 있는 시아파가 이란 편에 서서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사담은 시아파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반정부 발언을 하는 시아파 인사를 가차 없이 투옥, 고문, 처형했다.

필자는 2002년 이라크를 취재할 당시 시아파 모스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이라크 정부의 정보국 직원 감시하에 필자의 취재가 허용됐다. 시아파 모스크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이 어두웠다. 화장실에 가다 마주친 어느 시아파 노부인은 화장실 문을 잠근 채 필자에게 몰래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 7명 중 6명을 사담 후세인이 죽였다”고 숨죽여 말했다. 노부인은 “나 같은 사람이 시아파 가정에 넘쳐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불행은 후세인이 사라진 다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미국 덕에 정권을 잡은 시아파는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을 쫓아내는 데 혈안이 되었다. 정권만 바뀌었을 뿐 같은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떠나자마자 시아파는 수니파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미군이 완전 철수한 바로 다음 날인 2011년 12월 19일 수니파 정치 지도자인 타리크 알 하시미 부통령에 대해 시아파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터키로 도망간 알 하사미 부통령이 궐석한 재판에서 어이없게도 사형선고를 내렸다. 부통령뿐 아니라 많은 수니파 정치인이 불법으로 체포되고 구금됐다. 후세인 정권 시절 정적을 잡아 가두는 데 쓰였던 악명 높은 ‘아부 바카르’는 시아파 정권이 수니파 정치인들을 탄압해 투옥하는 감옥으로 바뀌었다.

시아파 정권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은 누리 알 말리키 총리였다. 한 수니파 국회의원은 “종파와 사람만 다르지 알 말리키는 사담 후세인과 똑같은 공포 정치를 한다. 미군이 떠난 바로 다음 날 그가 죽인 수니파 정치인만 수십 명이다”라고 말했다. 2006년 미군정의 적극적인 지지로 총리에 오른 알 말리키는 전쟁 이후 분열된 이라크의 사회 통합과 경기 부양보다 자신의 정권 유지와 연장에 더 집중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시아파와 수니파 간 종파 전쟁이 심해졌다. 폭탄 테러를 주거니받거니 했고, 상대파의 모스크를 폭파했다는 뉴스가 매일 보도됐다. 2007∼08년 종파 간 학살 이후에도 알 말리키 총리는 수천 명의 수니파 인사를 잡아들이고 내각에서도 철저히 배척했다.

그렇다면 이슬람교 내에서 시아파와 수니파는 왜 갈라진 걸까. 또 어떤 점이 다를까. 이를 이해하려면 천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아파 알 말리키 총리의 보복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사망한다. 그가 죽자 후계 자리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당시 수니파는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회의를 통해 선출된 4명의 칼리프(종교 지도자)를 합법적인 후계자로 인정했다. 그러자 무함마드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중심으로 한 무리가 생겨났다. 그들이 바로 시아파다. 수니파는 자격을 갖춘 이들 중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핏줄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리하면 후계자 결정 과정에서 시아파는 핏줄, 수니파는 회의를 주장했다. 현재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85%는 수니파다.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 예멘, 레바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이 수니파에 속한다. 반면 10%가량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이란과 이라크 등에서만 다수 종파를 형성하고 있으며 레바논과 아제르바이잔, 시리아 등에 분포해 있다. 시아파 나라들은 서로 인접해 있어 스스로를 ‘시아파 벨트’라 부르기도 한다.

원래 이라크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시아파나 수니파 간 갈등이 없었다. 시아파 부인과 수니파 남편, 혹은 그 반대인 결혼도 흔했다. 천년 이상 시아파와 수니파가 섞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래도 종교적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다. 바그다드에 사는 샤이드(47) 씨는 “종파 간의 갈등은 권력과 정권을 쥐고자 하는 사람들의 명분일 뿐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종파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걸로 죽고 죽인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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