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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하이난

욕심의 그늘 드리운 사랑과 휴양의 섬

琼 ‘하늘의 끝’을 더 넓혀라!

  • 글·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욕심의 그늘 드리운 사랑과 휴양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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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드문 물건’

하이난의 약칭 ‘경(·#29756;)’은 ‘옥 경(瓊)’ 자다. 옥 같은 바다와 빼어난 풍경으로 하이난은 옥[瓊]이나 진주[珠]로 즐겨 묘사됐다. 그러나 동시에 벼랑[崖], 끝[涯], 모서리[角] 등의 글자도 함께 딸려왔다. 한나라가 하이난에 설치한 군의 이름이 바로 주애(珠崖)다. 중심을 숭상하는 중국인에게 하이난은 세상의 끝이었다. 한족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아 유배지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곳이었다.

유쾌한 천재 소동파는 평생 유머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소동파조차 예순 나이에 하이난 유형(流刑)을 받자 “하이난에 도착하는 대로 관을 만들겠다”고 유언에 가까운 글을 남겼다. 하이난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탄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고기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병이 들어도 쓸 약이 없다. 안심하고 살 만한 집도 없고, 밖에 나가봐야 친구도 없다. 겨울이면 목탄도 때지 못한 채 자고, 여름에는 시원한 샘물조차 구할 길이 없다.”

결국엔 하이난에 적응한 소동파는 “하늘의 끝이라 한들 향기로운 꽃이 피지 않는 곳이 어디에 있으리오(天涯何處無芳草)”라고 노래한다. 하이난을 찬미하는 듯하지만, 뒤집어보면 하이난이 아름다워봤자 하늘의 끝인 궁벽한 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리적으로는 중원과 멀고, 문명의 혜택을 못 받았기에 하이난은 중국인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중국의 가치관은 바뀌어갔다. 개혁개방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G2로 거듭난 중국의 발전은 분명 경이롭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성장통이 있다. 공장, 자동차, 가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먼지가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게 한다.

대기상태지수가 150이 넘으면 보통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중국에선 300~400은 예사다. 미국이나 한국의 경우 대기상태지수 표에서 500 이상의 구간은 아예 없지만, 중국에선 999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래서 짧게는 ‘폐 청소’ 여행을, 길게는 ‘공기 이민’을 떠나는 게 트렌드가 됐다. 가장 각광받는 곳이 하이난이다.

‘쉬즈더원’에서 남자주인공이 하이난에 사는 친구에게 근황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아주 좋아. 깨끗하고 오염도 없어. 사람답게 살아야지.”

‘인구적 물갈이’

“한국에서 왔어요? 나 이민호 좋아해요!”

하이난 아가씨에게 길을 물었더니 길은 안 가르쳐주고 한국에 대해 크나큰 관심을 보였다. 요즘 정말 배우 이민호의 인기가 중국 대륙 전체에서 하늘을 찌른다. 하이난에서도 이민호를 필두로 한류는 인기 최고였다. 김연아(金姸兒)를 ‘김옌얼(金硏)’로 쓴다거나, ‘오서오세요’라고 오자를 쓰기도 했다. 이 어설픈 흉내조차 한류에 대한 선망이리라.

하이난은 중국 본토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을 욕망한다. 중국 본토와 문화 및 취향의 통일을 이룬 것이다. 본토가 하이난을 포섭하는 데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다.

중국 본토가 하이난에 손을 뻗친 역사는 대단히 길다. 서기전 110년 한무제는 남월을 정벌하고 하이난에 주애(珠崖)·담이(?耳)라는 2개의 군을 설치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행정기구와 인력을 모두 철수했다. 사리사욕에 눈먼 관리들이 원주민의 극렬한 저항을 산 탓이다. 탐관오리들은 원주민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송나라 때는 행정과 교통이 발달해 중국 대륙 전체가 하나의 경제·문화권으로 묶였다. 하지만 하이난을 완전히 복속시키기엔 모자랐다. 하이난에 사는 소수의 한족(漢族)들은 본토와 가까운 북쪽 하이커우(海口) 주변에 흩어져 살았다. 원주민은 대부분 여족(黎族)이었다.

하이난의 역사는 본토 한족과 원주민 간 대립으로 점철된다. 한족 상인은 원주민을 등쳐 먹기 일쑤였고, 한족 관리는 팔이 안으로 굽듯 한족 상인을 감싸는 불공정 판결을 내렸다. 원주민들은 이에 대항해 무력시위와 게릴라전을 펼쳤다. 소동파의 아들 소과(蘇過)는 ‘한족이 공정해져야 원주민을 포섭할 수 있다’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초기 중국의 하이난 지배는 이처럼 식민통치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런데 이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지배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인구가 많지 않아 식민지 지배 계급의 일부만을 자국민으로 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한족은 인구가 엄청 많다. 식민지 인구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욕심의 그늘 드리운 사랑과 휴양의 섬

“널 평생 사랑해”. 사랑의 섬다운 백사장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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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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