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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광둥성

가장 먼저 열려 가장 많이 아픈 땅

粤 -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 글·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가장 먼저 열려 가장 많이 아픈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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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에는 ‘선전속도’라는 말이 있다. 광둥(廣東)성의 경제특구 선전(深?)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 강도와 속도를 감내하기에 생겨난 말이다. 덕분에 광둥성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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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압! 합!”

꼬마들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유치원에서 무술수업이 한창이었다. 전설의 무술가 황비홍과 엽문의 고향, 광둥성다운 광경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공원에는 말 타며 활 쏘는 조각상이 놓여 있다. 중국 남방의 거친 야성과 상무 정신이 오롯하게 전해졌다.

광둥성의 약칭은 ‘땅이름 월’이다. 옛 중국인들은 장강 남쪽에 살던 이들을 월족(越族)이라고 불렀다. ‘월’은 ‘월(越)’과 발음과 뜻이 같은 이체자(異體字)다. 광둥성은 남월의 땅이었다. 남월은 월남(越南), 즉 베트남을 가리킨다. 이름 자체가 개척지란 뜻을 가졌을 정도로 광둥성은 이질적인 곳이었다. 삼국시대 동오(東吳)의 손권은 광둥성과 광시성을 개척하며 ‘새롭게 넓혀진 땅’이라는 의미에서 ‘넓을 광(廣)’ 자를 붙였다.

광둥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리적 특성을 살펴봐야 한다. 광둥성은 중원과 매우 먼 데다 다섯 개의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척박한 땅은 아니다. 중국에서 세 번째로 긴 주강(珠江)이 풍요로운 삼각주를 만들며 바다로 이어진다. 농사와 무역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이다. 험한 산이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고 토양이 비옥하니 독자적인 나라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사마천은 ‘사기’에 “반우는 큰 도시로서 진주, 코뿔소, 바다거북, 온갖 과일과 삼베가 모이는 곳”이라고 기록했다. 반우는 광저우(廣州)의 옛 이름으로 가깝게는 동남아, 멀게는 로마까지 상인들이 오가던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오랑캐가 부처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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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꼬마들의 무술수업.

진시황은 반우를 정벌해 역사상 최초로 광둥성을 중국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고 항우, 유방 등 군웅이 할거하는 난세가 되자 진의 장군 조타는 반우를 근거지로 남월국을 세웠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열었지만, 아직 내부 정비를 마치지 못해 남월까지 정벌할 수는 없었다. 한 황제가 남월의 왕을 임명하는 형식적인 조공관계를 유지하는 선에 그쳤다.

조타의 남월은 위만조선과 닮았다. 조타는 한족이지만 베트남식으로 상투를 틀고 남중국과 북베트남을 아우르며 두 문화를 조화시켰다. 그는 유방의 외교관 육가에게 “내가 중원에 있었다면 어찌 한나라 황제만 못했겠는가”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베트남은 조타를 중국의 침략에 대항한 황제 찌에우 다로 숭상한다. 베트남 역사가 레 반 흐우는 ‘대월사기(大越史記)’에 “진정한 베트남의 역사는 찌에우 다의 남월로부터 출발한다”고 썼다.

훗날 한무제는 남월을 멸망시키고 군을 설치했다. 그러나 중앙의 감독이 제대로 미치지 않고 지방 관리들이 착취를 일삼아 반란이 잦았다. 후한 광무제 때에는 북베트남 지역에서 쯩 자매의 난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복파장군 마원의 진압으로 끝났지만, 베트남은 오늘도 쯩 자매의 난을 중국의 폭압에 맞선 항쟁으로 기리고 있다.

남월의 광둥성 지역과 북베트남 지역은 점차 다른 길을 걸었다. 광둥성은 중국에 동화해갔고, 북베트남은 남부를 정벌해 오늘날의 베트남이 됐다. 고구려가 만주 일대를 잃고 남하해 신라와 백제를 정복한 격이다.

광둥성이 중원과 동화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중원인들에게 광둥인은 오랑캐에 불과했다. 당나라 때 광둥성의 한 소년이 불법(佛法)을 닦으러 중원의 홍인대사를 찾아가자 홍인은 소년에게 면박을 준다. “남쪽의 오랑캐가 어찌 감히 부처가 되겠다고 하느냐?” 이에 소년은 당차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어도, 불성(佛性)에는 남과 북이 없습니다. 불성은 개미에게도 가득하거늘, 어찌 오랑캐에게만 불성이 없겠습니까. 오랑캐의 몸이 스님과 같지 않다 하더라도 불성에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

귀족과 천민이 엄격하게 나뉘던 시대였다. 중원인과 오랑캐가 섞일 수 없는 때였다. 그러나 소년은 불법을 제대로 닦기 전부터 이미 깨우침을 보여줬다. 구분과 차별이란 애초부터 무의미하고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소년의 말은 혁명적 선언이었다.

이 소년이 바로 불세출의 선승 혜능대사다. 홍인은 다른 제자들의 반발이 두려워 혜능에게 밤에 몰래 의발을 물려주며 “도망쳐 숨어 살다가 때를 보아 불법을 전하라”고 했다. 혜능은 야반도주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광저우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불법을 닦고 인격을 수양하는 승려들조차 이토록 광둥인을 차별했으니, 일반 대중의 차별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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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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