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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일본 ‘잃어버린 시대’의 서막 ‘플라자 합의’

  • 조인직 | 대우증권 동경지점장 injik.cho@dwsec.com

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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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美 군정, 日 경제지원 위해 ‘1달러=360엔’ 결정
  • ● 전 세계 필독서 된 ‘Japan as number one’
  • ●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200엔대 붕괴
  • ● 돈 풍년에 ‘흥청망청’…“개도 1만 엔 물고 다녀”
美 레이거노믹스 역풍에 日 ‘거품’ 부글부글
일본 경제는 언제쯤 정상 궤도에 올라설까. ‘잃어버린 10년’에 이은 ‘잃어버린 20년’, 이젠 ‘잃어버린 30년’까지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에 4조8500억 달러이던 국내총생산(GDP)이 20년 뒤인 2014년엔 4조7700억 달러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일본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미국은 7조3000억 달러에서 17조4200억 달러까지 2.4배, 한국은 4600억 달러에서 1조4500억 달러로 3.2배 성장했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 대한 일본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하던 20여 년 전만 해도 ‘무관심’이었다면, 2000년대 초중반은 월드컵과 초기 한류(韓流) 덕분에 ‘선의의 관심’으로 변했다. 그 이후 한일관계 악화와 일부 산업에서 한국의 경쟁우위가 맞물려 ‘비호감’으로 틀어졌다가 최근엔 질시와 초조함으로 뒤바뀌는 듯하다.

일례로, 2월 2일 한국은행에서 지난해 경상수지가 894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할 때, 방점은 ‘불황형 흑자’에 맞춰졌다. 이 소식을 전하는 일본 언론들은 2013년에 역대 처음으로 한일 간 경상수지가 역전된 데 이어, 2014년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의 영업이익 추이는 늘 일본 주요 일간지의 머리기사로 다뤄진다. 세월호 참사, ‘땅콩회항’ 사건 같은 사회 기사들은 은근슬쩍 한국을 비하하고픈 ‘다른 의도’까지 겹쳐져 자국의 주요 뉴스보다 더 순발력 있게 실시간 속보로 인터넷과 신문지상을 덮는다.

장기간 지속되는 일본의 저성장은 거품이 생겼다가 급격히 꺼진 데 따른 후유증이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거품의 원인은 무엇일까.

1985년 플라자호텔의 악몽

일본에서는 30년 전인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당시 G5 정상들이 만나 ‘엔화 절상’에 합의한, 이른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지목하는 이가 많다. 이후 엔화 가치는 2년여 만에 두 배 이상 올랐고, 이 때문에 일본 제품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급감했다. 일본 정부가 내수 부양과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자 부동산 투자로 이어지면서 거품 경제가 양산됐고, 그 거품이 사라지면서 결국 부동산 가격 급락, 기업과 은행의 무더기 도산으로 이어졌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플라자 합의에 이은 엔화 절상에 힘입어 수출가격 경쟁력을 얻었다.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인 1986년에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경상수지 흑자(45억 달러)를 기록했다. 저달러·저금리·저유가를 의미하는 ‘3저 호황’의 수혜 중에서도 ‘엔고(高)’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는 ‘저달러’의 공적이 지대했던 덕분이다.

일본 처지에서는 30년 전 엉겁결에 당한 ‘플라자호텔의 악몽’이 떠올라 지금의 아베노믹스, 즉 무제한 금융완화를 통한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러를 무제한 찍어내 자력으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노릇을 할 수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나라는 자국의 환율 상승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핸디캡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사도 거슬러 올라가자면 ‘플라자 학습효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겉으로 드러나는 치적을 위해 원화 절상 정책을 쓴 김영삼 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편입이라는 흑(黑)역사를 겪어야 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낸 회고록에서 원화 절하를 유도한 고환율 정책을 통해 리먼 사태 당시의 유동성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주장했다. 이론(異論)의 여지는 있지만 환율 정책이 그만큼 국가 전체 명운을 가르는 절박한 조치라는 걸 알 수 있다.

‘넘버원 재팬’ 신드롬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에즈라 보겔 교수가 ‘Japan as number one’(세계 최고 일본)이라는 책을 쓴 것은 1979년이다. 이 책의 내용처럼 1980년대가 지나면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역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던 시기였다. 이 책은 199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그즈음 세계 곳곳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일본의 혁신사례를 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6·25전쟁을 통해 중공업 분야에서 가일층 탄력을 받은 일본 경제는 1차 오일쇼크 후 1974년 -0.5%로 주춤하던 시점까지, 다시 말해 1955년부터 1973년까지 평균 9.1%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을 지속했다. 잠재성장률이 조금 떨어진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을 즈음인 1970년대 중반부터는 기술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산업 트렌드를 선도했다. 특히 1차 오일쇼크에 맞춰 주력 업종을 기존의 철강·조선·석유화학 분야에서 발 빠르게 가전·자동차·반도체 분야로 옮겨간 게 주효했다. 그중에서도 ‘어코드’ ‘시빅’과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자동차, 전자산업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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