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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광시 좡족 자치구

해상 실크로드 대박 꿈 중국 · 동남아 혼혈지대

桂 ‘태평천국’ 진원지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해상 실크로드 대박 꿈 중국 · 동남아 혼혈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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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시(廣西)성은 베트남과 800km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인종·문화적 측면에서 중국보다 동남아에 가까웠고, 오랜 세월 이방인으로 핍박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기지로 부상했다. 광시성에서 발원해 실패로 끝난 ‘태평천국’이 21세기에 실현될 수 있을까.
해상 실크로드 대박 꿈 중국 · 동남아 혼혈지대
영화 ‘이별계약(分手合約)’에서 주인공 커플은 이별 후 오랜만에 재회한다. 여자가 “좋아하는 향이 뭔가요?”라고 묻자 남자가 “계수나무향”이라고 답한다. 여자가 외친다. “그래, 맞아, 계수나무향! 10월 이른 가을 무렵 비를 머금은 잎의 향!”

여자는 계수나무향을 좋아했고, 남자는 그걸 잊지 않았다. 계수나무향은 서로를 잊지 않았음을 확인해준 사랑의 향이다. 중국에서 계수나무향을 맡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약칭으로 ‘계수나무 계(桂)’를 쓰는 광시 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가 아닐까.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서도 야망이 식지 않았다. 당시 중국의 영역이 아니던 남방을 정복해 진나라에 편입시켰다. 광시 일대는 계림군(桂林郡)이 됐다. 2000년 전에도 이 땅은 계수나무 숲이었다는 말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들짐승’

해상 실크로드 대박 꿈 중국 · 동남아 혼혈지대
진시황이 죽고 중원이 전란에 휩싸이자 장군 조타는 남월(南越)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황제가 됐다. 남월은 광저우를 중심으로 광둥 · 광시 · 북베트남을 석권한 남방의 강자. 한(漢)이 천하를 재통일하고 국력을 축적한 뒤 한 무제는 남월을 정복했다.

그러나 이때의 정복이란, 한의 지배를 인정하고 세금을 바치는 수준이었다. 문화적 통합은 요원했다. 당시 양광(兩廣 · 광둥과 광시) 지역은 인종 · 문화적으로 중국보다는 베트남 홍강삼각주 주민과 더 비슷했다. 원주민은 원주민대로 중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중국인들도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여겼다.

후한말의 대학자 설종은 중원의 전란을 피해 어린 나이에 교주(交州)로 왔다. 당시 교주는 광시 · 광둥 · 하이난 · 북베트남을 포괄했다. 교주에서 자란 설종은 이곳 지역 문화를 잘 알았지만 존중하지는 않았다. 교주 백성은 남녀가 거리낌 없이 몸을 허락해 부부가 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으며, 알몸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며 “들짐승으로 오직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경멸하는 사람을 착취하기란 쉬운 일이다. 후한 조정에서 임명한 교주 관리가 이민족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자주 벌어졌는데, 정황상 소수민족이 가혹한 수탈에 항거하다가 관리를 죽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교주 지역을 평안하게 할 수 있을까. 중국 사정에 정통한 동시에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사섭(士燮)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사섭의 선조는 노나라 사람으로 산둥인이지만, 전란을 피해 광시성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사씨 일가는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 6대손인 사섭의 아버지는 일남 태수를 지냈다.

광시성 정착 7세대인 사섭은 현지의 공기를 마시고 자랐다. 동시에 수도 낙양에서 유학하며 학문으로 명성을 떨칠 만큼 중국 문물과 사정에도 밝았다. 숱한 군웅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스러지는 난세에 사섭은 중원의 조조, 형주의 유표, 동오의 손권 등과 시기적절하게 동맹을 맺기도, 대립하기도 했다. 덕분에 중원이 전란에 휩싸인 시기에 교주는 오히려 평안했다. 원휘는 순욱에게 사섭을 극찬했다. “사섭은 학문과 정치에 모두 뛰어나 혼란 속에서도 한 군을 보전했으며, 20여 년 동안 그의 영내에는 일이 없고 백성은 가업을 잃지 않았으니 타향을 떠도는 사람은 모두 그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섭은 중국 유교문화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인도-동남아-중국을 잇는 해외무역을 통해 풍요를 누렸고, 동남아 · 인도 문화를 융통성 있게 수용했다. 사섭이 외출할 때마다 “오랑캐 수십 명이 길 양쪽에서 향을 태웠다”는 기록에서 보듯 인도 불교문화도 일찍이 받아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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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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