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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광시 좡족 자치구

해상 실크로드 대박 꿈 중국 · 동남아 혼혈지대

桂 ‘태평천국’ 진원지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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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배를 가르다

사섭이 다스리는 동안 교주 지역은 안정과 번영을 누렸다. 베트남인들은 사섭에게 왕(王)의 칭호를 주고 ‘씨 브엉(士王)’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베트남 역사서 ‘대월사기전서’는 “우리나라가 시서(詩書)가 통하고 예악(禮樂)을 익히며 문헌(文獻)의 나라가 된 것은 사왕(士王)으로부터 시작됐다”고 기록한다.

사섭은 손권의 신하임을 자처하고 조공을 바쳐 교주의 평화를 유지했지만, 손권은 늘 교주의 풍부한 물산을 탐냈다. 사섭이 죽고 손권이 교주를 정벌토록 하자, 명장 여대는 전격전을 감행한다. 주위에서 준비가 불충분하다고 우려하자 여대는 말했다. “신속히 움직이지 않아 사씨 일가가 성을 굳게 지키고 일곱 군의 원주민이 구름처럼 모여 호응하면 누가 감당할 수 있겠소?” 삼국시대 한족의 전투력은 모든 이민족을 압도했지만, 구름처럼 많은 소수민족과 험준한 지형은 여대도 두려워했음을 엿볼 수 있다.

여대의 정벌은 성공했다. 그러나 수탈과 반란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아 조세 수입이 사섭의 조공만도 못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격이었다. 오랜 시일이 흘러서야 광둥 · 광시 · 하이난은 중국에 통합되고 북베트남은 독립한다.

광시가 중국에 통합됐지만, “이곳 땅은 광활하고 인구가 많으며 지세가 험준하고 산림이 좋지 못하므로 이 조건을 이용해 소란을 일으키기는 쉽지만, 이곳 사람들을 다스림에 복종시키기는 어렵습니다”라던 설종의 우려는 청나라 말기에 재현된다.



아편전쟁은 서양의 탐욕과 청의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난징조약에 따라 5개 항구가 개항하자 중국 무역을 독점하던 광저우는 상하이에 무역 중심의 자리를 내주며 침체의 몸살을 앓았다. 인근 광시에서 광저우로 온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했다. 고향에 돌아가도 별수 없었다. 원래 가난하던 광시는 때마침 가뭄까지 겹쳐 기근에 허덕였다. 일부 광부들은 허기를 달래려 석탄을 먹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홍콩에 자리 잡은 영국이 광둥 일대의 해적을 소탕하자, 궁지에 몰린 해적은 강을 거슬러 광시로 도망쳤다. 반청복명(反淸復明)의 비밀결사 천지회도 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광시성에서 암약했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 불량배들까지 설치자 민심이 흉흉해졌다. 지역 토호들은 빈민을 구휼하기보다 자기 이익만 챙겼다.

‘예수의 아우’ 훙시우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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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탈, 기근과 실업, 불안한 치안과 민심,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지배층. 선지자 이사야의 말은 마치 청나라 말기를 보며 한탄하는 듯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 너희 땅은 황폐해졌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눈앞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폐해졌다.”

이때, 자칭 하느님의 아들이며 예수의 아우인 훙시우취안(洪秀全)이 나타났다. 예수가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가난하고 수고로운 이들에게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설파했듯, 훙시우취안은 고향 광둥을 떠나 광시의 척박한 산골마을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것조차 어렵고, 한 달을 살아가기는 더욱 어려운”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광시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운동은 들불처럼 대륙을 휩쓸었다. 광시인들은 용맹한 군인으로서, 충실한 신자로서 태평천국 초기에는 열정과 활기를, 후기엔 신념과 노련함을 불어넣었다.

“누구든 하느님의 자녀이고, 모두가 형제자매”임을 표방한 태평천국은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훙시우취안 일가부터 사치향락에 빠져들어 부패했고, 핵심 인물들은 권력을 둘러싸고 내분을 벌였다. 청의 관군은 무능했지만, 안정을 지키려는 쩡궈판(曾國藩) · 리훙장(李鴻章) 등 신진 군벌이 등장했다. 결정적으로 서양 열강도 이해득실을 따져본 끝에 이단적인 태평천국보다는 고분고분한 청나라가 낫다고 판단해 청나라를 지원했다.

14년에 걸친 태평천국은 20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지옥으로 끝났지만, 꿋꿋이 청 · 지주 · 외세에 맞선 태평천국의 신화는 오랫동안 회자됐다. 태평천국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어린이들은 훗날 신중국을 여는 주역이 됐다. 신중국의 아버지 쑨원(孫文)은 “제2의 훙시우취안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공산당의 전쟁 영웅 주더(朱德)는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머리를 조아려서는 안 된다오”라던 태평천국의 명장 스다카이(石達開)의 무용담을 들으며 불굴의 의지를 키웠다. 실패로 끝난 실험은 중국의 근대를 여는 시작이기도 했다.

뜨거운 역사를 뒤로한 채, 오늘의 광시는 평온하다. 광시의 풍광을 보러 많은 관광객이 각지에서 몰려든다. ‘구이린의 산수는 천하제일이고, 양숴의 산수는 구이린 제일(桂林山水甲天下,陽朔山水甲桂林)’이므로 “구이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신선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願作桂林人,不願作神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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