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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광시 좡족 자치구

해상 실크로드 대박 꿈 중국 · 동남아 혼혈지대

桂 ‘태평천국’ 진원지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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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위’ 많은 동네

구이린의 산수를 보면 지형의 변천사를 상상해볼 수 있다. 태곳적 이곳은 바다였다. 조개와 산호의 사체가 쌓여 석회암이 만들어졌다. 세월이 흘러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하는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해저 석회암이 땅 위로 솟아올랐다. 석회암은 탄산이 섞인 물에 약하다. 남부는 아열대 · 열대성 기후로 비가 많이 오고 식물이 잘 자란다. 빗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머금고, 지하수는 식물의 뿌리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다. 탄산수가 끊임없이 석회암을 녹여내면서 계곡과 동굴이 만들어지고, 비교적 산성에 강한 석회암 부위는 독특한 모양의 산으로 남았다.

그 결과 오늘날 광시는 430km의 리장강과 3만6000개의 봉우리가 어우러지는 절경을 자랑한다. 또한 여건이 비슷한 중국 남부와 동남아 일대에 유사한 카르스트 지형이 조성됐다. 윈난성, 구이저우성, 베트남의 하롱베이, 라오스의 방비엥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명소는 언제나 많은 인파로 붐빈다. 천하명승지인 구이린도 예외가 아니라, ‘론리 플래닛’은 특유의 독설을 날린다. “구이린은 관광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이는 잘 관리되고 있고 깨끗하지만, 떼거지 군중과 부대껴야 하며 대부분의 명소에서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 헨리 키신저는 노적암(芦笛岩)을 시적인 곳이라 평했는데, 아마 이때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의 크고 아름다운 아우성이 없었나보다.”

양숴는 작은 마을이라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밤이 되자 쿵짝쿵짝 클럽 음악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더니 새벽 2시가 돼서야 그쳤다. 양숴가 왜 ‘중국에서 가장 서양 사위가 많은 마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는지 짐작이 갔다. 젊은 서양 배낭여행자들이 낮에는 풍경에 취하고, 밤에는 술과 음악에 취해 놀다가 혈기를 못 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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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양숴 외곽으로 옮긴 후에야 비로소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숙소 매니저 잭은 무척 유머러스한 쓰촨인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일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KFC도 없는 곳에선 일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는데, 양숴에도 KFC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일하게 됐단다.

“광시는 좡족자치구라고 해서 뭔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네?” 잭은 나의 질문에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했다. “중국엔 56개 민족이 있고, 좡족은 그중 하나일 뿐이야.” 소수민족을 대단찮게 여기는 한족의 시각이 엿보였다.

좡족은 중국 내 최대 인구(1618만 명)의 소수민족으로, 그중 87%(1420만 명)가 광시에 산다. ‘소수’라고는 하지만 네덜란드, 과테말라, 에콰도르 등 웬만한 나라의 인구와 맞먹는다. 그러나 큰 것을 숭상하는 중국인에게 소수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다. 4000만 광시인 중 62%는 한족이고, 좡족은 32%에 그치며 3위인 야오족은 3%에 불과하다.

야오족의 서사시는 모세의 출애굽기를 방불케 한다. 야오족의 경사스러운 혼인잔칫날 “글자로 춤을 추고 먹을 가지고 놀 줄 아는” 한족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족과 야오족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한족에 맞서는 것은 고사하고 안전하게 달아날 길조차 막막했다. 현명한 야오족 노인은 북 위에 기장을 뿌려서 새들이 모이를 쪼느라고 북을 둥둥 울리게 했다. 한족들이 북소리를 경계하는 동안 야오족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머리카락 전설

그러나 이들이 밀려난 땅은 척박했다. 산 전체를 통째로 논으로 만든 룽성(龍勝)은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다. 흰 바지야오족(白袴瑤族)이 사는 난단(南丹)현은 고산 협곡 사이에 위치한 땅으로 ‘7층의 돌에 1촌(寸)의 흙’이라 지력이 약하다. 2~3년 농사짓고 7~8년 휴경하기 일쑤다. 큰 강은 아예 없고 작은 강도 드물지만,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다. 큰비가 얕은 흙을 쓸어가버려 농사를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오족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풍습이 있다. 머리카락을 잘랐더니 영혼을 잃어 죽었다거나, 힘을 잃어 전쟁에서 졌다는 등 여러 전설이 있다. 그런데 다양한 전설 속에서 공통된 점은, 지나가던 상인에게 머리카락을 팔았더니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상상해보자. 한족 상인이 화려한 도자기, 예쁜 빗과 노리개, 맛있는 향신료 등을 잔뜩 가져왔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라 급기야는 머리카락까지 내놓는다. 가난한 상태에서 과소비를 하게 되니 더욱 가난해지고, 한족에게 경제적으로 얽매인다. 경제적 예속은 정치 · 사회적 지배로 확대되고, 문화적으로도 한족에 동화해 종족의 정체성까지 잃을 위험에 처한다. 전설 속의 패배는 문화의 패배를, 전설 속의 죽음은 종족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한족의 지배를 받는 탐욕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이다. 자신의 긍지와 문화, 종족을 지켜가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전통이란 결국 내용은 잊히고 형식만 남기 마련이다. 이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을 뿐,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잊어버렸다. 룽성 장발촌의 야오족은 머리를 푸는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 한다. 돈 대신 자존심을 택하며 생긴 장발의 풍습이 오늘날 돈 버는 수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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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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