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총력특집 | 미완의 합의, 불안한 미래 |

정신분석학으로 풀이한 김정은 속내

스트레스 못 이기고 압박 못 견뎌 와인·치즈·담배 탐닉도 그 때문

  • 입력2018-06-27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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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오가는 양면 성격

    • 변화 원하면서 변화 두려워해

    • 패배를 승리로 둔갑 시도

    김정일의 전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2012년 7월 김정은에게 와인을 따르고 있다.

    김정일의 전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2012년 7월 김정은에게 와인을 따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과거 잔혹한 독재자 이미지를 가졌고, 지금은 ‘쿨 가이’ 행보를 보인다. 과연 어느 모습이 진정한 김정은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판 없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고사포로 사람을 산산조각내고,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는 행태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정상회담에선 유머를 구사하며 더없이 사람 좋은 인상을 내보인다. 

    북·미 정상회담 행보도 극과 극을 오간다. 핵무기-미사일 실험을 진행하면서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도발했다. 그러다가 돌연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다시 미국에 도발해 회담을 좌초 위기로 몰아갔다. 다시 태도를 바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고, 2인자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미국에 보내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도대체 무엇이 김정은의 진심일까? 무엇이 그의 진면모일까? 정신분석학으로 볼 때 김정은은 상반된 두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충동적이면서 겁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모순되는 신념들

    일치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 한다. 이전부터 갈등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는 많은 이가 언급했다. 종교는 ‘유혹’이라는 말로, 프로이트는 ‘갈등’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심리학에서는 ‘양가감정’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성격학자들은 수동공격성 성격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 태도, 신념 사이에 모순이 되는 점이 있음을 알아챌 때 발생하는 불편한 마음 상태를 인지부조화라 정의하면서 심리학의 한 획을 그었다.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지면 심리적으로 불편하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인지부조화를 없애는 쪽으로 노력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단순화하면서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 태도, 신념을 유지하고자 한다. 



    운동을 하다 보면 반칙이 발생한다. 상대방 팀이 반칙을 저지르면 극악무도한 놈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우리 편이 반칙을 하면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편이 반칙을 해서 상대방 선수가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경우에도 우리 편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상대방 선수가 평소에 한 짓을 생각하면 반칙당할 만했다고 한다. 때로는 어차피 잘하지도 못하는 선수였는데 이참에 선수 생활을 접는 것이 부상당한 선수를 위해서도 낫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참으로 잔인한 말이다. 

    김정은이 극악무도하다고 규정한 사람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웃으면서 농담하는 김정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김정은이 본심을 감추고 연기하고 있고, 현 정부가 그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부조화를 해결한다. 김정은이 대화 가능한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김정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김정은의 과거 공격적인 모습은 서구 언론이 만들어낸 부정적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의 돌발행동은 존 볼턴 미국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국의 극우 세력이 김정은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다 보니 김정은이 어쩔 수 없이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지부조화를 해결한다. 

    하지만 김정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억지로 인지부조화를 없애서는 안 된다. 오히려 김정은의 모순되는 측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공격적인 김정은, 충동적인 김정은, 웃긴 김정은, 변화를 원하는 김정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김정은, 이 모두가 김정은의 모습이다. 

    우선 제일 먼저 충동적인 김정은에 대해 살펴보자. 김정은이 공격적인 내용의 발언을 하거나 고위급 인사를 처형할 때 보면 김정은의 충동성은 만만치 않다. 2015년 확성기 방송을 놓고 남북한 간에 긴장이 고조될 때를 봐도 김정은의 충동성은 강하다. 충동성이 강한 이들은 자극추구도가 높은 성향을 갖고 있다. 김정은은 상당한 비만에 해당한다. 와인과 치즈 때문에 체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보도도 있다. 마시고자 하는 충동, 먹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담배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은의 줄담배 습관 역시 충동성을 일정 부분 반영한다. 

    충동적인 사람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못한다. 김정은은 현장순시를 할 때 꼭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지루함을 참지 못한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김정은은 1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연설할 때 몸을 계속 움직였다. 마치 시계추가 움직이듯이 몸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향했다 한다. 가만히 있으려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기에 역대 북한 지도자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현지시찰을 하고 있다. 지금처럼 비대한 몸이 아니었을 때는 농구를 즐겨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철과 김정은이 서로 팀을 짜서 대결하기도 했다.

    로드맨과 리설주

    데니스 로드맨에 대한 김정은의 호감도 충동성에서 기인한다. 집권 초기 김정은은 로드맨을 북한으로 초청해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로드맨은 NBA 선수 중에서 소문난 악동이다. 물론 김정은이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를 초청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왔을 리 없다. 

    하지만 김정은이 좋아하지도 않는 선수를 억지로 초청했을 리는 없다. 로드맨은 헤어스타일부터 남다르다. 온몸에 문신투성이여서 ‘벌레’라는 별명이 있다. 거칠기로 소문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과 맞는 운동선수를 선호한다. 김정은의 자극추구도와 로드맨의 자극추구도가 잘 맞는 것이다. 김정은이 가수 출신인 리설주와 결혼한 것도 자극 추구적인 면이 서로 통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향의 사람은 뭔가 계속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에게 현재의 북한은 너무 지겨울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뭔가 계속 건설해야 한다. 고층 빌딩도 짓고 마식령스키장도 건설한다. 지난 수년간의 핵 개발도 김정은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경제가 발전해 북한이 계속 달라진다면 그것은 지루함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 김정은의 충동성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면 핵무기 개발 같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충동성이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면 대외 개방과 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의 또 다른 성격은 겁이 많다는 것이다. 겁이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공격적인 행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겁이 많은 기질은 일정 부분 타고난다. 불우한 어린 시절도 겁이 많은 성격에 일조한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고영희로도 알려짐)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은 성혜림으로 김정일보다 5살 연상이었다. 전남편과 이혼하고 김정일과 동거해 1971년 장남인 김정남을 낳았다. 하지만 김일성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김정일의 두 번째 여자인 김영숙은 김일성의 허락을 받고 결혼도 했지만 딸만 둘을 낳으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세 번째 여자인 고용희는 북한 주민에게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김일성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불안정한 유년기…스트레스에 취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10월 29일 평안남도 평성에서 담배를 든 채 대룩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을 지켜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동아D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10월 29일 평안남도 평성에서 담배를 든 채 대룩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을 지켜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동아DB]

    따라서 김정은의 어린 시절 역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은 8세 때부터 18세 때까지 긴 시간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외국 유학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정치 암투가 벌어지는 평양에서 떨어져 있으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김정남이라는 장남이 있어서 김정은의 입지가 불확실했다. 김정은이 정권을 잡으면서 김정남이 암살됐다. 만약 김정남이 정권을 잡았다면 김정은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말도 안 통하는 스위스에서 지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김정은은 존재감이 크지 않은 학생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던 겁쟁이였다. 

    그렇다 보니 김정은이 스트레스를 이기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많이 먹고 많이 마신다. 그로 인해서 체중이 계속 늘어난다. 담배도 피운다. 만약 다이어트에 성공한다면, 금연한다면, 그것은 그가 스트레스를 잘 견디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체중이 더 늘어난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있다. 유리한 점은 의외로 김정은은 압박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 강력한 행위를 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도자가 된 후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장성택을 처형하고 절대권력을 쥔 다음엔 북한 내에서 그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최고 존엄이다. 그렇기에 그는 북한 장성이나 관료를 대할 때 두려움 없는 모습을 보인다. 두려워할 존재가 아닌 이들에겐 상당히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김정은이 대중을 대할 때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모습이 언론에 노출된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김정은은 항상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두려운 대상, 어려운 대상을 대할 때는 김정은의 또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 당 관료를 대할 때는 자신만만하고 소리지르지만 시진핑 앞에선 겁에 질려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보인 김정은의 유머도 결국은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너무 긴장될 때마다 유머로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는 의외로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이다. 

    심리학에는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라는 용어가 있다. 접근동기는 긍정적 결과를 경험하고자 하는 동기다. 회피동기는 부정적 결과를 경험하지 않고자 하는 동기다. 프로야구 2군에서 매번 삼진을 잡던 투수가 1군에 오면 포볼을 남발하다가 홈런을 맞는다. 2군에서 만만한 상대를 대할 때는 접근동기가 회피동기를 압도했다. 하지만 1군에 와서는 어려운 상대를 대하고 불안이 커지면서 회피동기가 접근동기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냉면을 들고 있다. [동아DB]

    김정은 위원장이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냉면을 들고 있다. [동아DB]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영역에서 잘나갈 때는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2015년 목탄지뢰와 확성기 방송으로 인해 남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압박을 이기지 못하다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도 미국의 대북 압박이 최강도에 달하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통해 대화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반대다. 도발에 대해 본인이 예상한 것보다 심한 압박을 받게 되면 급속히 무너지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대화하게 되는 것일 수 있다. 

    김정일이 핵무장에 성공하면 그것은 김일성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김일성보다 더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핵무장은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에게 그것은 아버지가 하던 일을 물려받는 것뿐이다. 임기 초반 김정은에게 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김정은은 핵보다 로드맨을 더 좋아했다. 그런 김정은이 나중에 핵 개발에 다시 몰두하게 된 데는 심리적 이유와 실질적 이유가 존재한다. 

    김정은은 자극추구도가 높다. 뭔가 몰두할 일이 필요하다. 핵은 김정은이 몰두할 만한 일이었다.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핵실험에 성공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할 때마다 김정은은 자신이 더욱 강해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핵에 대한 김정일의 심리적 중요도에 비하면 핵에 대한 김정은의 심리적 중요도는 약하다. 만약에 핵을 대신해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만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공포의 사슬

    김정은이 필요에 의해서 핵을 개발한 것도 사실이다. 핵을 개발함으로써 김정은은 군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자극추구도가 높은 김정은은 나이가 들대로 든 고위 장성을 지겨워한다. 지겹다 보니까 화가 난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고령의 장군을 처형한다. 나이 든 이들을 제거해야 자신이 뽑은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스탈린 때부터 이루어졌다. 스탈린은 정권을 잡은 후에 혁명전쟁을 수행한 장군 대부분을 처형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신을 숭배하는 젊은이들에게 나눠줬다. 

    이러한 시도는 군의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핵무기는 그러한 군의 반감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 핵무기와 ICBM 개발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북한이 재래식 무기로 남한과 군비 경쟁을 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핵이라도 개발해야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핵을 개발해야 정권의 명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과 ICBM 개발은 주민들의 애국심을 유지하기 위한 심리적 도구로도 작용한다. 군사대국이라는 환상을 주민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종전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김일성도 못 해냈고, 김정일도 못 해낸 일을 해내는 것이다. 실제로는 대북압박 때문에 굴복한 것이지만 미국이 북한 핵을 두려워한 나머지 대화를 제의한 것이라고 북한 주민들이 믿는다면 김정은에게 핵 포기는 해볼 만한 거래다. 

    김정은의 두려움이 나쁜 쪽으로 작용하면 오히려 공격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권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심한 공포감이 공격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김정은이 보여주는 모습에 따라 결정된다. 독재정권은 독재자가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무너진다. 동구권에서 끝까지 정권을 유지한 차우셰스쿠의 경우 마지막까지 국민은 그를 두려워했다. 공포가 정권을 유지시켰다. 

    김정은에게 공포는 국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평양의 파워 엘리트들이 김정은을 두려워하고 중간의 거대한 관료 계층이 그러한 파워 엘리트를 두려워한다. 마지막으로 일반 주민들이 관료 계층을 두려워한다. 공포의 사슬이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언뜻 보면 강력한 군이 북한을 지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병들이 장교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국가는 끝이다. 독재국가가 끝장나는 과정에는 공통된 장면이 등장한다. 우선 내부에 반대 세력이 등장한다. 반대 세력에 총을 쏘라고 독재자가 지시했는데 머뭇거린다. 그 틈에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뚫고 군인들과 뒤섞인다. 그렇게 독재 정권은 무너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도 그랬고, 루마니아의 독재가 차우셰스쿠가 무너지던 날도 그랬다.

    두려움 없어지는 게 두렵다?

    그렇기 때문에 장성택이 처형된 것이다. 장성택은 개국공신이었다. 김정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장성택은 김정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김정은에게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위협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포의 제국에 바늘구멍이 생긴 것이다. 이 구멍이 점점 커지면 공포의 댐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김정은은 장성택을 죽였을 것이다. 김정남을 죽인 것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남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동시에 김정남이 죽여야만 했을 정도로 두려웠던 것이다. 

    김정은이 북·미회담이 중단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경 발언을 한 이유도 결국 공포의 제국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 위험을 두려워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김정은은 북·미회담을 국민에게 이용할 모양새를 이미 만들어놨다. “내가 핵을 개발했고, 미국은 핵을 두려워해서 항복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났다. 핵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고 주장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김정은은 패배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 패배를 승리로 포장해서 계속 정권을 장악해야 한다.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볼턴이 미국 TV에 나가서 미국이 북한을 완전히 이겼다는 것을 너무 강조했다. 김정은도 자신이 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이 방송을 통해 노출되고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어선 안 된다. 김정은은 평양의 엘리트에게 자신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막상 저지르고 나니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더 이상 일이 커지지 않게끔 빨리 수습한 것이다. 

    김정은은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지금의 북한에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스위스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것보다는 김정은은 현 상태에 대한 지겨움 때문에 북한을 바꾸고 싶어 할지 모른다. 

    재벌 2세 중에서 아버지 회사를 급격히 바꾸려다 곤란을 겪은 이들이 있다. 속옷을 팔아 재벌 반열에 올랐는데 앞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속옷이 사양산업이라 생각하고 스키 리조트 사업에 뛰어들어 망한 재벌 2세가 있다. 어떤 재벌은 아버지대에 소주를 팔아 상당한 돈을 모았다. 그런데 아들이 유통업에 뛰어들어 망했다. 

    이들은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가 물려준 구태의연한 사업이 싫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사업을 접기 위한 심리적 도구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것이다.

    지루해하는 ‘최고 존엄’

    이 맥락에서 김정은도 지금의 북한이 지루한 것 같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결국 자신의 권력을 나눠주게 된다. 만약에 북한이 마오쩌둥 사후의 중국이나 호찌민 사후의 베트남처럼 권력이 분점돼 있다면 북한의 개방은 쉬울 것이다. 국가의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파워 엘리트들은 더 많은 이익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럴 수 없다. 기업이 커져도 끝까지 상장을 하지 않는 이들이 종종 있다. 기업을 상장하면 소유권이 희석되고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김정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핵과 미사일을 포기한 후 개방하면 김정은 일가의 절대적 재산은 늘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 권력은 조금씩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고립된 상태로 언제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김정은은 알고 있다. 그는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계몽군주의 고민을 21세기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김정은의 모습은 모두 사실이다. 분노하는 모습도, 유쾌한 모습도, 겁에 질린 모습도 모두 그의 모습이다. 그것이 갈등을 일으킨다. 김정은이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일정 부분 한국에 유리하다. 김정은을 움직이는 데는 압박이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북한을 만들고 싶어 하는 김정은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새로운 북한이 자신의 절대 존엄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공포와 충동이 만나면 극단적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은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인물이고 이런 그는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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