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글로벌현장

실리콘밸리 혁신의 공간을 가다

구글, 애플, HP를 낳은 캘리포니아의 차고(車庫)

  •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실리콘밸리 혁신의 공간을 가다

  • ● 구글 본사 ‘더 거라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시도
    ● 구글이 독려하는 80/20의 법칙
    ● 코딩앱 ‘그래스호퍼’ 낳은 구글 창업 프로그램 ‘에이리어 120’
    ● 실리콘밸리를 낳은 HP의 창고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찰스턴 로드 1565번지 구글빌딩 46호(BLDG46)에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찰스턴 로드 1565번지 구글빌딩 46호(BLDG46)에 있는 '더 거라지(The Garage)'. 전력 케이블을 모두 천장에 설치하고 물건엔 각각 바퀴를 달아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황장석]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찰스턴 로드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구글의 수많은 건물 중 하나인 구글 빌딩 46호(BLDG46). 이곳에 구글 차고, ‘더 거라지(The Garage)’가 있다. 자동차나 정비용품을 두는 진정한 의미의 차고(車庫)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름이 그렇다. 구글 직원이면 누구나 더 거라지를 놀이터 겸 작업장으로 쓰면서 자유롭게 뭐든 만들어볼 수 있다. 얼마 전 구글이 연례 개발자 회의인 ‘구글 I/O(Input-Output)’를 개최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혁신과 창의성에 대해 설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5월 25일 낮 12시, 더 거라지 안에선 직원으로 보이는 5명이 키가 높은 테이블에 노트북 컴퓨터와 메모장을 펴놓고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모여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는 듯 보였다. 바로 이곳에서 ‘구글 글래스’를 비롯해 재미난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제품들이 만들어졌다(구글 글래스는 결과적으로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말이다). 

전자기기를 연결하는 전력 케이블이 모두 천장에서 내려오고, 모든 물건은 아래에 바퀴가 달려 있어 공간을 재배치하고 싶으면 언제든 옮길 수 있게 돼 있는 곳. 3D프린터, 각종 전기용품, 컴퓨터, 공구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프로젝트든 심심풀이 장난감이든 만들어볼 수 있는 이곳은 구글 사내에 있는 많은 실험실 중 가장 널리 개방된 곳이다. 특정 분야의 초보자든 전문가든 누구든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강의를 요청해 수강할 수도 있다. 2008년 구글 사무실 한편의 조그만 공간으로 출발했는데, 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지면서 2012년 비교적 널찍한 현재 사무실로 옮겼다.


구글과 차고의 인연

구글과 차고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탠퍼드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이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두 사람은 구글이라는 회사를 공식 설립했다.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들은 학교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한 개인주택에 세를 들었다. 방 4개, 욕실 3개에 차고 하나가 딸린 집이었다. 둘은 방 2개(아마 욕실도 2개)와 차고 하나를 빌렸다. 

“세르게이, 래리, 두 사람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다 조용한 이웃이었어요. 늘 차고 문을 열어놓고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있었죠. 밖에서 쳐다보건 말건 신경 안 쓰고 일하더군요.” 

구글의 첫 사무실이었던 주택 바로 옆집 주인 소캠 씨의 회상이다. 두 집은 진입로를 공유한다. 도로에서 진입로를 통해 들어가면 오른쪽에 구글 차고가 있는 집이 있고, 조금 안쪽에 소캠 씨 집이 있다. 얼핏 보면 같은 주소에 집 두 채가 있는 걸로 착각할 정도로 붙어 있다. 

주소가 멘로파크 샌타마가리타 애비뉴(Santa Magarita Avenue) 232번지인 ‘원조 구글 차고’를 찾은 건 6월 1일 낮 12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거실에 불이 켜져 있어 초인종을 연신 눌렀지만 안에선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발길을 돌리던 찰나 빨간색 혼다 시빅(Civic) 승용차 한 대가 진입로로 들어왔다. 소캠 씨가 탄 차였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외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회사 임원 한 명이 잠만 자러 올 뿐 직원이 상주하지 않아요. 회사(구글)에 초대된 외지 손님이 어쩌다 주말에 와서 자고 가는 일이 있긴 하죠.” 

홍콩 태생의 이민자인 그녀는 구글 창업자들이 입주하기 훨씬 전부터 옆집에 살았다고 했다. “항공사 직원이던 남편 밥과 잡지사 기자이던 아내 에이미 부부가 신혼이던 수전 부부에게 집을 팔고 이사를 갔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들이 세 들어 와서 차고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대화에 등장한 수전은 현재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 최고경영자(CEO) 수전 워치츠키.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구글 창업자들에게 세를 준 게 인연이 돼 구글 최초의 마케팅 매니저로 합류한 인물이다. 부동산 거래 기록을 확인해보면 1998년 8월 당시 신혼이던 수전 워치츠키 부부는 62만 달러에 이 집을 사서 입주했다. 그리고 2006년 9월 구글이 124만5000달러에 이 집을 그들 부부에게서 사들였다. 현재 시세는 250만 달러(약 25억 원) 수준. 

구글은 창업자들이 차고에서 일하는 동안 가파르게 성장했고, 불과 5~6개월 만에 더 넓은 사무실을 얻어 이곳을 떠났다. 창업자들이 거창하게 ‘구글 세계 본사(World Headquarters)’라고 부른 차고엔 이후 ‘구글이 탄생한 곳’이란 별칭이 붙었다. 2013년 9월 구글은 바로 이 차고에서 업데이트한 검색엔진을 발표했다. 발표자는 이전 집주인 수전 워치츠키였다.


‘자발적 초과근무’ 독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공동 창업한 차고. 이 공간이 딸린 로스알토스시 주택 앞엔 사유지를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문 팻말이 걸려 있다. [황장석]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공동 창업한 차고. 이 공간이 딸린 로스알토스시 주택 앞엔 사유지를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문 팻말이 걸려 있다. [황장석]

현재 마운틴뷰 본사에 있는 더 거라지는 흔히 ‘80/20 규칙’을 설명하는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구글은 직원들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의 80%는 업무에 쓰더라도 20%는 업무와 무관한 일을 시도하도록 독려하는데, 시간 날 때 그런 20%의 실험과 시도를 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구글 전·현직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공간은 ‘초과근무(?)’를 하는 곳이다. 자신의 업무량을 100% 소화하면서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그 때문에 ‘80/20 규칙’이라는 게 이름만 존재한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직원 개인이 스스로를 갈고 닦을 수 있도록 호기심을 충족할 공간과 기자재, 학습 기회까지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초과근무라고 하더라도 ‘자발적인’ 초과근무라고 하는 게 합당할 듯하다. 알아서 더 일하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할까. 

‘구글 차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만한 게 사내 창업 인큐베이터 ‘에이리어 120(Area 120)’이다. 구글에서 근무하다 창업하려고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에게 ‘사직하지 말고 사내에서 창업해보라’며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직원들에 따르면 회사 측에 창업 아이디어를 제시해 채택되면 사내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직원을 공개 모집하고 선발해 6개월 동안 업무를 떠나 해당 프로젝트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해준다. 필요한 사무실 공간, 비용 등을 모두 회사가 지원해주고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구글이 적극적으로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창업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현업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직원의 ‘한시적 이탈’을 회사가 허용하고 지원하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4월 중순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 등록된 뒤 각각 1만 명 이상이 내려받은 자바스크립트 코딩(coding) 애플리케이션(앱) ‘그래스호퍼(Grasshopper)’다. 영어 단어로 메뚜기를 뜻하는 그래스호퍼는 앱의 명칭이자 해당 앱을 만든 회사 이름이다. 에이리어 120에서 뭉친 구글 직원 6명이 만들고 참여한 회사다. ‘코딩이라곤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 별도의 코딩 교육을 받기 곤란한 저소득층 학생 등을 위해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쉽게 코딩을 배울 수 있는 앱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구글 엔지니어 한 명의 아이디어가 회사 차원의 지원을 받아 창업으로 이어진 경우다. 테크크런치 4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래스호퍼라는 이름은 미 해군 제독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COBOL) 개발에 중대한 기여를 한 프로그래밍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인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1906~1992)를 기리며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애플과 HP의 차고

빌 휼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HP를 공동 창업한 팰러앨토시 주택의 차고. [황장석]

빌 휼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HP를 공동 창업한 팰러앨토시 주택의 차고. [황장석]

구글 창업자들이 차고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실리콘밸리 전통과도 관련이 깊다. 가깝게는 애플, 멀게는 HP가 탄생한 공간이 차고였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두 사람이 구글을 창업하면서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간 인물이자 종종 의견을 구한 실리콘밸리 기업가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였다. 잘 알려져 있듯 잡스가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컴퓨터를 조립하고 납품하기 시작한 곳이 부모 집 차고였다.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난 잡스는 생전에 HP 창업자들을 존경했다. 어린 시절 HP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탐험가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고, 중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공교롭게 잡스가 존경한 HP 창업자들이 회사를 시작한 곳도 그들이 세 들어 살던 집 차고였다. 

구글 차고와 마찬가지로 애플과 HP의 차고는 실리콘밸리의 명소다. HP 본사가 있는 도시 팰로앨토에 있는 HP 차고는 2000년 회사 측이 소유주로부터 건물과 함께 사들여 보수한 뒤 박물관으로 만들었다(사립 박물관이라 건물 내부를 일반에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이곳은 1989년 캘리포니아주의 ‘역사적 랜드마크(California Historical Landmarks)’ 제976호로 지정됐고, 2007년엔 미국 연방정부가 ‘역사적 장소(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했다. 차고 앞에는 “이 차고는 세계 최초의 첨단 기술 지역 ‘실리콘밸리’가 태어난 곳”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HP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첫 번째 기업이자 이 지역의 관련 산업 성장을 이끈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애플 본사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로스알토스에 있는 ‘애플 차고’가 딸린 주택은 개인 소유다.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 폴 잡스가 1989년 재혼한 부인 메릴린 잡스가 살고 있다고 한다(폴 잡스와 함께 갓난아이 스티브를 입양한 어머니 클래라는 1986년 세상을 떠났고 폴은 1993년 사망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지 ‘감시 카메라 작동 중. 사유지 침범하지 말고 사진은 도로에서만 찍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집 앞에 걸려 있을 정도다. 팻말은 없지만 이곳은 ‘애플이 탄생한 곳’으로 불리며 집주인이 경고문을 붙일 만큼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실리콘밸리 초심의 상징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로 HBO에서 방송되는 ‘실리콘밸리’ 시즌4에선 구글, 애플과 비슷한 공룡 기업 ‘훌리(Hooli)’의 공동 창업자 개빈 벨슨이 동업자들을 데려와 과거 자신과 친구가 함께 훌리를 창업한, 친구 어머니의 집 차고를 재현한 공간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가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라네 친구들. 훌리가 태어난 곳이지. (중략)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된 이 시점에 명심해야 할 건 항상 진정으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물질적 성공이나 이런 게 아니라 바로 혁신의 정신(spirit of innovation) 말이야. 코딩하는 프로그래머 몇 명과 (끼니를 때우는) 라면, 그리고 꿈. 당신들을 여기로 데려온 건 그런 이유라네.” 

실리콘밸리 현실을 해학적이면서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창업자의 차고는 초심을 상징한다. 힘들던 시절, 꿈을 위해 땀과 눈물을 쏟아붓던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무모할 만큼 도전하던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구글이 별도의 차고를 꾸며 운영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 차고라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엔 그런 이유도 포함돼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리콘밸리 어느 차고에선 미래의 구글, 애플, HP를 꿈꾸는 창업자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신동아 2018년 7월 호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목록 닫기

실리콘밸리 혁신의 공간을 가다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