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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잔치’ 남북경협

남북경협 곳곳 ‘잡음’

“정세현 전 장관도 엮일 뻔”

  •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남북경협 곳곳 ‘잡음’

  • ● IT 업체 A사 광화문에 사무실 차리고 ‘남북경협 컨설팅’ 추진
    ● “정세현 전 장관에 사무실·고급승용차 이용 제의”
    ● 정 전 장관, “연구소 이사장 제안 한 달 만에 거절”
    ● 증권가, “남북경협 투자 주의해야
6월 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 일행이 탄 차가 개성공단으로 향하고 있다.

6월 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 일행이 탄 차가 개성공단으로 향하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한껏 달아오른 ‘남북경협’ 논의가 최근 북·미 간 비핵화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주춤해지는 분위기다. 현대그룹과 KT 등 일부 대기업이 남북경협사업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며 대북사업 준비에 들어갔지만, 마냥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재계를 중심으로 ‘남북경협 주의보’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사업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남북경협’이란 단어를 내세워 ‘판’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 

‘신동아’ 취재 결과 최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남북경협 관련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릴 뻔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은 지난 6월 초 불거졌다. 국내 한 IT전문 코스닥 상장사인 A업체는 서울 광화문에 992㎡(약 300평) 규모의 사무실을 임차해 차려놓고 정세현 전 장관에게 ‘남북경협연구소’ 이사장 자리를 제안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장관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통일비서관과 민족통일연구원장을 지냈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연이어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2002~2004).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실행하고 노무현 정부 때 이를 계승·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직에서 떠난 후에는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원광대 총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반도평화포럼·한겨레통일문화재단·평화협력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경협연구소 이사장 제안 받았지만…”

A업체는 정 전 장관에게 국내산 고급 승용차와 운전기사를 제공하며 대북경협 사무실을 운영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업체의 B 전 대표가 자신을 ‘대북경협 사업의 통로’로 칭하고 주변인들에게 “정세현 전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 라인을 과시하며 해당 사업을 과대 홍보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해 11월 A업체 대표로 취임한 B씨는 대북사업 경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을 ‘신동아’에 제보한 C씨는 “B 대표가 정 전 장관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대북사업을 하고 싶으면 나를 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업체에 취임한 지 불과 9개월 만인 지난 7월 13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무렵 남북경협연구소도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B씨는 남북경협 사업을 시작하기 전, A사 지분 100%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는 등 이미 업계에서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A사는 지난 3월 재무제표 부실 작성, 주석 기재 누락 등의 이유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아 주식매매 거래정지 처분을 받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돼 있는 A사의 회계법인 감사보고서에는 “2017년 12월 31일로 종료되는 회계연도의 재무제표 부실 작성 및 주석 기재 누락 등으로 재무제표와 주석 공시의 적정성에 대해 확인할 수 없었다. 회사가 매도가능증권으로 계상한 ‘XXXX 주식회사’에 대한 투자금액과 관련해 평가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감사 증거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C씨는 “B 전 대표가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 관련해) 투자받은 20억 원에 대해 사용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암호화폐 거래소는 지난 4월, B씨가 암호화폐 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모아 횡령한 혐의로 당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A사의 주가 변동을 살펴보면, 해당 주식은 올 1월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 공시 이후 주가가 올랐지만 이후 수차례 급등락을 반복하다 결국 거래정지됐다.


“남북경협 컨설팅 회사로 키우려 했다”

2월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남북경협 컨퍼런스가 열렸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동아DB]

2월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남북경협 컨퍼런스가 열렸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동아DB]

이후 B씨는 남북경협으로 눈을 돌렸다. 정세현 전 장관은 ‘신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A사로부터 ‘남북경협연구소 이사장’ 자리를 제안받았음을 인정했다. B씨와의 인연은 개성공단 사업 관계자인 D씨 소개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정 전 장관은 “6월 중순 D씨의 소개로 B씨를 처음 만났다. 남북경협 관련해 연구소를 만든다고 해서 이사장직을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 B씨는 탈북자였던 아버지의 유언이 ‘북한을 도우라는 것이었다’며 앞으로 남북한 교류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만인 7월 중순, 정 전 장관은 “자신의 이름이 좋지 않은 소문에 연루됐음을 알고 B대표와 거래를 중단했다”고 주장한다. 정 전 장관은 “증권가에서 B씨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심지어 내 이름을 팔아 남북경협 사업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라 B씨와 D씨를 만나 ‘없던 일로 하자’고 통보했다. B씨가 내준 차도 바로 돌려줬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정 전 장관과 B씨를 연결해준 D씨는 “남북경협연구소 설립 계획이 무산된 것이 전적으로 B씨 책임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D씨는 “대북제재나 비핵화 논의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남북경협 분위기가 식어버려 사업을 중단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처음은 연구소로 시작해 나중에는 남북경협 관련 컨설팅 회사를 차릴 계획이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A업체 관계자는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A 회사 한 관계자는 “정세현 전 장관이 갑자기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난감한 상황이다. 광화문에 얻은 사무실도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다른 임차인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동아’는 A사 측에 B씨와의 전화 연결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담당자는 “B씨와 관련해서는 어떤 내용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측 정식 초대장 받은 사업은 딱 하나”

대북사업 전문가들은 “남북경협 사업을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현재 업계에 떠도는 남북경협 이슈는 많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사업에 정통한 한 인사는 “북측으로부터 정식 초대장을 받고 진행하기로 결정된 사업은 오는 9월에 열리는 스포츠 행사 하나밖에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남북경협 테마주’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그동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남북경협 관련주가 급등락을 반복한 만큼 개인투자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8년 9월 호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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