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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잔치’ 남북경협

[르포] 연쇄 정상회담 이후 북·중 국경을 가다

中동북지역 北 개방만 손꼽아 기다려

  • |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르포] 연쇄 정상회담 이후 북·중 국경을 가다

  • ●북·중 국경 세관 주변마다 공사 중
    ●북한 프리미엄… 단둥 부동산 값 폭등
    ●커다란 변화는 시장경제 일상화
    ●중국 도시 닮아가는 양강도 혜산
    ●中, 나진·청진항 통해 ‘동해 출구’ 마련
[르포] 연쇄 정상회담 이후 북·중 국경을 가다
매년 이맘때 북·중 및 북·러 국경을 답사해왔으나 이번은 다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남북, 북·미 관계가 급격히 변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과연 비핵화와 개방을 선택할지 의구심을 내비친다. 과거 남북 관계나 북·미 협상 과정을 볼 때 충분히 제기할 만한 의문이다. 선입관을 배제한 채 르포르타주(reportage) 방식으로 7월 4~25일 북·중 및 북·러 국경 상황을 들여다봤다.


“北, 그 나름의 경제 발전 중”

먼저 선택한 도시는 베이징(北京)이다. 베이징은 대북 정보가 종합되는 장소다. 정기적으로 북한에 드나드는 이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다년간 북한을 방문해온 이들을 통해 동향을 들을 수 있었다. 

소식통들은 “외부 관측과 달리 북한이 그 나름의 경제 발전을 해가는 중”이라면서 구체적 실례를 전했다. 커다란 변화는 시장경제의 일상화다. 평양 주요 시장에는 중국에서 거래되는 생필품 중 없는 품종이 거의 없으며 시민들의 구매력도 상당하다고 한다. 스마트폰 보급 속도도 매우 빠르다. 스마트폰 가격이 500달러에 달하는데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성인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또한 외국 화폐 사용이 자연스럽다. 시장에서 거스름돈으로 위안화나 유로화를 건네준다고 한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호텔이나 상점, 택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달러, 유로, 엔, 위안이 주로 사용된다.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북한 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생긴 현상이 고착화해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평양의 경우도 식량과 기름을 제외한 모든 생필품을 시장에서 구입해 해결한다. 사실상 시장경제 체제로 변모한 셈이다. 계획경제 시절 국가가 식량과 생필품을 배급했으나 요즘에는 ‘회사’가 식량을 확보해 나눠준다. 국가 차원의 배급제가 회사별 배급으로 바뀐 것이다. 소식통들은 “회사별 배급마저 폐지되면 북한은 완전한 시장경제 체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평양 시민들의 기대도 크다. 당국이 더욱 개방적인 정책을 구사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북한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시기에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베이징에서의 일정을 뒤로하고 국경도시이자 북·중 교역의 70%가 이뤄지는 단둥(丹東)으로 향했다.


中 관광가이드 “北은 불쌍한 나라”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철교.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철교.

단둥에서 이뤄지는 북·중 교역은 이전보다 활발해 보이지 않았다. 대북사업가들은 “북한이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공산품의 국산화를 상당히 이뤄냈고, 유엔 대북제재 여파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보내는 수출품이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단둥 부동산 값이 폭등했다는 점이다. 단둥의 주민들은 “북한이 전면적 개방에 나서리라는 기대감으로 부동산 값이 치솟았다”고 주장한다. 

밀수 경험이 있는 한 대북사업가는 “제재로 인해 중국에서 북한으로의 밀수가 횡행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밀수가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중 국경도시에서 밀수는 북한 내 시장 거래가 자유롭지 못할 때 활개를 쳤는데 현재는 시장 거래의 제약이 사실상 소멸했기에 밀수가 줄었다는 주장이다. 

밀수가 줄어든 또 다른 이유는 북한산 물품의 가격 경쟁력이다. 중국에서 생산한 잉여 제품 가격이 북한 시장 가격보다 낮을 때 밀수로 돈을 벌 수 있는데, 최근에는 북한산 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이 중국산보다 낫다는 게 북한 내 시장 이용자들의 인식이라고 한다. 

단둥은 이렇듯 북한 개방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으나 예년과 비교해 변화는 크지 않았다.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관광하는 중국인들.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관광하는 중국인들.

단둥 일정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창뎬만족자치현으로 향했다. 압록강 이북(以北)에는 조선족 자치현과 시가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만족이 주류인 게 특징이다. 만족들은 중국 당국의 개민 정책에 부응해 민족을 만족에서 한족으로 바꾸고 신분증에도 그렇게 표기한 경우가 많다. 

창뎬만족자치현은 압록강변에서 단둥 다음으로 중국 내국인 관광객이 많다. 창뎬만족자치현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평안북도 삭주군 청수노동자구다. 이곳에는 북한에서 몇 안 되는 여성 교도소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쪽 압록강변에는 관광지역이 조성돼 있다. 내국인을 상대로 압록강과 북한을 테마로 관광업을 한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북한 땅에 가까이 다가간다. 가이드는 북한 쪽 건물을 일일이 소개하며 그곳은 무엇을 하는 어떤 곳인지 설명한다.


린장에서 바라본 북녘은 ‘암흑세계’

중국인 관광 가이드는 “북한은 매우 가난한 나라이며 자유가 없이 불쌍하게 사는 나라”라고 소개했다. 어떤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다소 조롱이 섞였지만 보통의 중국인이 가진 북한 인식이 이와 같다. 

지린성 지안(集安)은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고구려 유적이 많은 곳이다. 지안의 대안(對岸)은 자강도 만포시다. 지안시는 북한과의 교역 확대에 대비해 세관 주변을 현대적으로 정비했다. 압록강을 건너는 교량도 철교와 왕복 4차선으로 건설했으나 북한 측 사정으로 인적 왕래는 적다. 지안시의 중국인들도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방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린성 린장(臨江)시는 백두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도시다. 동·서·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남쪽으로 압록강이 흐른다. 린장에서 오랜 지인인 중국인 친구를 만나 회포를 나누고 휴식을 취했다. 린장의 중국인들 또한 북한 개방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지인은 남북 자유 왕래가 가능해지면 북한을 거쳐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린장에서 야간에 바라본 북한 측은 완전 암흑세계였다. 북한의 전기 사정이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야간 풍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린장에서 휴식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창바이(長白)현으로 향했다.


허룽국제경제무역협력지구 건설 중

 건설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미개통된 지안-만포대교 앞에 선 필자. 필자는 1993년 북한을 이탈해 이듬해 9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다.

건설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미개통된 지안-만포대교 앞에 선 필자. 필자는 1993년 북한을 이탈해 이듬해 9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다.

창바이현 맞은편은 양강도 혜산시다. 작년과 비교해 도시 색감이 달라졌다. 압록강변에 무수하던 낡고 허름한 단독주택이 2~3층 연립주택으로 탈바꿈했고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했다. 그 색감이 중국 도시를 닮아 압록강이 없다면 창바이현과 구분하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건물 색깔로 북한과 중국을 구분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혜산시가 창바이현을 닮아간다. 압록강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중국인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중국 지린성 지안세관(위)과 백두산 천지 인근 야생화.

중국 지린성 지안세관(위)과 백두산 천지 인근 야생화.

창바이현 일정을 마치고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이번엔 남파로 올랐다. 중국 측은 백두산 입장 코스를 3개로 정비해 관리한다. 대다수 관광객이 북파와 서파로 오른다. 남파는 백두산에서 가까운 지역에 사는 중국인이 주로 오르는 코스다. 교통, 호텔 등 부대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면서 느끼는 시각적 느낌도 북파, 서파와 사뭇 다르다. 다양한 고산지대 생물과 꽃을 음미할 수 있다. 특히 북한 측 국경 철책이 있어 북한과 맞닿은 곳임을 체감할 수 있다. 천지에 오른 후에도 북한 국경이 등반로 옆으로 이어져 안전요원들이 국경선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백두산은 어느 쪽에서 오르더라도 천지가 나타났을 때의 장엄함이 일품이다. 비 예보가 있어 걱정했으나 안개가 걷힌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천지는 10분가량 모습을 보여준 후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도백하를 거쳐 허룽(和龍)시로 향했다. 허룽시 난핑(南坪)진 맞은편은 북한 무산광산이다. 유엔 대북제재로 교역이 중단되다시피 한 난핑 세관은 인적마저 드물었으나 허룽국제경제무역협력지구 건설이 한창이어서 도시가 온통 공사판이다. 북한이 개방하면 북·중 국경지역 가운데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질 곳 중 하나다. 중국은 무산광산 철광석을 수입하고자 허룽역에서 난핑역까지 전용 철도를 부설했을 만큼 무산광산에 관심이 많다. 


북한 남양과 중국 투먼을 잇는 왕복4차선 대교가 건설 중이다.

북한 남양과 중국 투먼을 잇는 왕복4차선 대교가 건설 중이다.

투먼(圖們)시는 한국인이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중국 투먼과 북한 남양을 잇는 세관 주변도 온통 공사판이었다. 기존의 왕복 2차로 대교를 왕복 4차로 신(新)대교로 교체 중이었으며 세관 주변에 국제무역 교역장을 새로 건설하고 있었다. 

중국은 북한이 개방되면 압록강 이북의 중국 측 국경도시와 북한 주요 도시 및 항만을 도로와 철도로 연결할 계획이다. 투먼, 허룽 등에서 나진항, 청진항으로 물류를 옮기려는 것이다. 동해 출구를 여는 것은 동북지방의 번영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려면 북한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훈춘(琿春)에는 취안허(중국)-원정리(북한) 대교가 왕복 4차선으로 완공돼 있다. 이 대교는 중국인의 북한 관광 통로다. 훈춘에서 자가용을 운전해 북한 나선특구에 들어가 며칠씩 지내다 오는 중국인들이 제법 있다.


북한도 중국처럼 천지개벽할까

중국 허룽에서 난핑진으로 이어지는 철길. 무산광산 철광 수입을 위해 건설된 전용 철도다.

중국 허룽에서 난핑진으로 이어지는 철길. 무산광산 철광 수입을 위해 건설된 전용 철도다.

취안허 세관에서 북한 관광을 진행하는 중국 여행사 관계자는 “올해 7월 10일부터는 여권이 아닌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1일 관광이 가능하도록 북한 측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에게도 북한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1회성 관광을 하는 곳이지 휴식이나 여가를 위해 찾지는 않는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북한 내 휴양 시설 수준이 중국에 미치지 못하고 여행객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중·러 국경을 넘어 러시아 하산으로 향했다. 하산은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국경도시다. 중국 훈춘에서 그라스키노까지 간 후 하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훈춘-그라스키노 사이에 국경과 세관이 있다. 여객과 수출입 물건을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량이 중국, 러시아 쪽에서 각각 국경을 넘는다. 

이번 답사에서 인상적인 점 중 하나가 중국 측 출입국 관리 체계 변화다.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는 세계적 수준으로 출입국 심사와 통관이 이뤄진 지 오래나 그 밖의 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세관을 통과하는 데 최단 1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었으나 이번에 러시아로 넘어갈 때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중국의 지속적 개방과 경쟁 체제가 낳은 결과다. 

북한도 중국처럼 천지개벽할 수 있을까.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중국보다 더 빠를 수도 있겠지만 초기에 북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철도 연결된 나진-하산

러시아 하산역. 북한 나선특구로 철길이 연결돼 있다.

러시아 하산역. 북한 나선특구로 철길이 연결돼 있다.

그라스키노에 도착하니 러시아인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회포를 나눌 틈도 없이 곧바로 하산으로 향했다. 하산으로 가는 도로는 넓으나 포장 상태가 좋지 못했다. 북한의 도로 사정은 어떨까. 북·러 국경지역에서 두만강 하구를 경계로 북한의 나선특구를 부감(俯瞰)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북·러 국경에 방문하려면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나 이번에는 그런 절차가 필요 없었다. 

북한 나선특구와 러시아 하산 사이에는 비록 단선이지만 철도가 연결돼 있으며 관리 상태도 양호해 보였다. 북한이 한국과 철도를 연결하고 한국의 물류가 철도를 통해 러시아로 넘어가고 러시아의 물류가 한국으로 이동하면 하산은 세계에서 주목받는 국경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18년 9월 호

|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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