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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대접 옹졸하기 짝이 없다”

제3국 망명 北 노동당 간부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한국 정부 대접 옹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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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4년 이후에만 10여 명 제3국 망명
  • ● “한국에 와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한국 정부 대접 옹졸하기 짝이 없다”
“중앙당 간부가 한국에 들어와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도 서울에 온 거 후회하고 있는데….”

북한 노동당 간부로 일하다 망명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외환 전문가로 유럽에서 일하다 탈북한 B씨의 얘기도 비슷하다.

“한국 사람이 탈북자와 대화할 때 관심 갖는 것은 딱 하나예요. 북한이 어떤 곳인지 확인하는 것 외에는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아요. 비즈니스 파트너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B씨는 서울에서 금융 관련 사업을 하다 실패했다.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B씨의 아들은 여덟 살 때 한국에 왔다. 어린 나이에 외국 생활을 했기에 평양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고위급 망명자 2명뿐

“한국 사람과 다를 게 아무것도 없는 아들이 취업을 못해요. 아들보다 못한 녀석도 합격한다더군요. 큰 기업이 탈북자에게는 일자리를 잘 안 줍니다. 입사하면 국정원이 이런저런 간섭을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한다더군요. 아이들은 차별받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혼자 탈북해 북한으로 돈을 부쳐주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B씨는 “아들이 북한에서보다 훨씬 나은 교육을 받았으되 아버지 탓에 인생은 꽝이 됐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C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북한 경제도 좋아졌다 하고, 중앙당 간부들이야 먹고살 만한데 한국에 올 이유가 없죠. 선생 같으면 위험 부담을 감수하겠어요?”

7월 초순 북한군 장성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들이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한 일간지가 “김정은 공포 통치에 탈출 러시가 인다”고 보도한 후 망명설이 연거푸 터진 것. 군부 실력자 중 하나인 박재경 대장 망명설이 돌더니 박승원 상장의 이름도 거론됐다.

정부가 고위급 인사 망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확인하면서 언론만 머쓱하게 됐다. 앞서 7월 17일 발행된 ‘신동아’ 8월호는 “김정은 집권 후 한국에 망명한 고위급 인사는 단 1명도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평양판 엑소더스의 진실-北 고위급 망명 全無’ 제하 기사 참조).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으로 망명한 노동당 출신 인사는 5명에 그친다. 그중 가장 직급이 높은 이가 노동당 ‘중앙당 과장급’이다. 북한 김정은의 공포통치로 동요한다는 국가정보원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망명 공작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년에 1명 남짓 꼴로 망명한 셈인데 남북의 체제 격차와 김정은 집단의 행태를 고려할 때 매우 적은 숫자다. 최근에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탈북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사실에 어긋난다. 두어 사람이 꽤 많은 돈을 갖고 망명했는데, 돈 가져온 것만 보고 영향력이 있다고 잘못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집권 이후로 범위를 넓혀도 한국에 망명한 북한 고위인사는 달랑 2명뿐이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언론이 ‘탈북 고위 인사에 따르면’ ‘고위급 탈북자가 밝혔다’ 식으로 보도한 것은 황장엽(1923~2010)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유이’한 고위급 탈북자인 ○○○ 씨를 인용한 것이 아니면 취재원의 신상을 과장한 것이다. 김정일 집권 이후 한국 기준으로 차관급 이상 직위에 있다가 망명한 고위 인사는 ○씨와 황 전 비서가 전부다.

CNN의 오보

5월 11일 미국 CNN에 ‘고위급 탈북자’라는 박모 씨가 등장했다. CNN은 서울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송은 ‘북한 최고위층이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박씨를 소개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뒷모습, 옆모습만 촬영하거나 실루엣으로 처리했으나 평양 말씨의 음성은 변조 처리하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해 5월 5일이나 6일 김정은이 김경희를 독살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김정은의 경호를 맡는 974부대 정도만 독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현재는 고위 관리들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 초 한국에 입국한 박씨는 ‘북한 최고위층이던 사람 중 한 명’이 아니다. 박씨의 북한 정보에 대한 당국의 시각도 이 인터뷰로 인해 교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김경희가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박씨는 김경희의 안위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노동당 과장급 인사인 박씨가 북한에서 사용한 이름은 이○○다. 신분 보호를 위해 한국에서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예가 많다. 박씨는 노동당 39호실 출신 탈북자로 언론이 북한 고위인사 망명 오보를 내는 데 단서가 됐다. 서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탈북 사실이 알려졌는데, 박씨 망명이 ‘고위급’으로 둔갑하고, 언론이 속보 경쟁을 벌이면서 “망명 행렬이 이어진다”는 오보가 나온 것이다.

복수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후 숙청을 비롯한 공포 정치가 이어지면서 김정일 집권 시기보다 훨씬 많은 당·정·군 간부가 북한을 이탈했다. 국정원은 2월 “김정은이 ‘튀다튀다 보위부까지 튄다’는 말을 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된 당·정·군 간부가 70명이 넘는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당 간부들이 북한을 이탈하는 것은 신변에 위협을 느꼈거나 비위 사실이 적발되거나 적발될 소지가 있을 때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찾거나 소신에 따라 탈북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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