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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통신

부자도 해변 독점 못해!

美 법원, 비치 통행 막은 호텔에 벌금 19억 원 부과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부자도 해변 독점 못해!

  •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 있는 한 특급호텔이 160만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1달러를 1180원으로 환산하면 19억 원에 육박한다. 거액의 벌금을 내게 된 사유는 주민의 해변 접근권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누구나 해변을 즐길 권리를 갖고 있는데 해당 호텔이 그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 이 사연을 들여다봤다.
미국 캘리포니아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 전경. 중세 고성처럼 서 있는 호텔 아래 절벽을 따라 해변이 이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 전경. 중세 고성처럼 서 있는 호텔 아래 절벽을 따라 해변이 이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테오(San Mateo) 카운티에 있는 하프문베이(Half Moon Bay). 아름다운 해안도시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이곳 선착장은 어부들이 직접 배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을 사러 오거나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나온 주민들로 북적인다. 이 도시 해안가에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이 있다. 평일 하루 숙박비가 1000달러(약 118만 원)에 이르는 호텔이다. 이 호텔은 골프장으로도 유명하다. 탁 트인 태평양 풍광을 보며 티샷을 날릴 수 있는 골프장이다. 골프를 쳐본 적 없는 필자 같은 사람도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곳이다.


“해변 방문 주차장에 주차”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 진입로에 있는 초소.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 진입로에 있는 초소.

일요일인 6월 30일 새너제이 집에서 출발해 1시간 남짓 차를 몰아 이 호텔 앞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30분 무렵, 호텔 건물을 10m 정도 앞두고 초소 같은 건물을 만났다. 호텔 직원이 진입하는 차량들을 멈춰 세우는 곳이다. 초소에 다가가기 전 도로 중앙에 흰색 패널이 보인다. 검은 글씨로 “리츠칼튼 발레(파킹)만 가능, 40달러”라고 적혀 있었다. 

‘호텔 옆 해변에 가려는 건데 설마 40달러를 내야 하나?’ 혼자 잠시 생각하는 순간 바로 우측에 있는 또 다른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해변 이용을 위한 무료 주차 공간이 호텔 주차장에 있으니 직원에게 주차장 출입구 비밀번호를 받으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일단 초소 앞에 차를 세우자 직원이 투숙객이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무슨 용무냐”고 되묻는다. “해변에 가려고 한다”고 하자 한 번 쳐다보더니 여러 번 접은 인쇄물 한 장을 건넸다. 인쇄물엔 손 글씨로 5자리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해변 산책로’라는 제목의 인쇄물 상단에 적힌 숫자는 호텔 주차장 차단기를 여는 비밀번호였다. 직원은 “반드시 ‘해변 방문(Coastal Access)’이라고 표기된 지정구역에 주차하라”고 말했다. 초소를 통과해 호텔 주차장에 들어갔다. 바닥에 C(Coastal Access)로 시작되는 번호가 붙어 있는 주차 공간이 25개 있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막 주차장에 들어온 차가 C로 시작되는 주차 공간을 찾아 빙빙 돌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텔 건물을 빠져나오니 호텔과 바로 붙어 있는 초록빛 골프장과 태평양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호텔이 있는 언덕 아래, 하얗고 깨끗한 모래해변에서 주민들이 한가로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열대여섯 명이나 될까. 수는 많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가 70대 노부부와 딸로 보이는 중년 여성을 만났다. “여기 참 아름답죠?”라고 인사를 건네자 중년 여성이 대답한다. “정말 아름다워서 자주 오고 싶은 곳이죠. 주차하기 어려운 걸 빼면 말이죠.” 

사실 이곳은 산책하기 좋은 장소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1년 내내 그리 붐비지 않는다. 호텔에서 자동차로 10분가량 떨어진 선착장에 수산물을 사러 가거나 놀러 가는 주민이 몰리는 것과 대비된다.


초록 골프장과 태평양 바다

이유는 이 호텔이 최근 캘리포니아해안위원회(California Coastal Commission)에서 19억 원에 육박하는 벌금을 ‘맞은’ 것과 관련 있다. 바로 주차장 이용이 불편해서다. 해안위원회는 캘리포니아 해안 환경을 관리할 뿐 아니라 주민들의 해안 접근권도 보호하는 주정부 기관이다. 

현재 위치에 호텔이 들어선 건 2001년이다. 그전까지 호텔 자리는 주민들이 산책하고 거니는 바닷가 언덕이었다. 주민들은 호텔 자리를 거쳐 해변을 오갔다. 해안위원회는 호텔 개발을 허가하면서 단서를 달았다. 예전처럼 주민들이 해변에 접근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평등하게 해변을 즐길 권리를 보장한다는 전제 아래 개발 허가를 내줬다. 단서를 붙이지 않고 허가를 내줬다면 직무유기로 소송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조건부 허가에는 호텔과 골프장 사이 일반인 통행로, 호텔 안팎 화장실, 언덕에서 해변을 오르내릴 계단 확보가 포함됐다. 주차장 설치 조건도 붙었다. 호텔에서 100m가량 떨어진 길 옆에 해변 방문객을 위한 15대 규모 무료 주차장을 만들고 호텔 주차장에도 25대 규모 무료 주차 공간을 마련하도록 했다. 골프장 이용객이나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 해변을 찾아온 방문객만을 위한 주차 공간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은 5월 말 해안위원회가 호텔 측에 벌금을 부과하면서 내놓은 보고서에 드러나 있다.


약속 안 지킨 호텔

호텔 측은 약속을 지키는 듯했다. 주민들이 호텔과 주변을 지날 통로를 조성했고 호텔 안팎에 화장실도 지어 제공했다. 호텔과 골프장이 있는 언덕에서 해변까지 이어진 계단도 설치했다. 하지만 호텔이 들어선 직후부터 해안위원회에는 불만 민원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호텔 내부 주차장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해변 방문자를 위한 25대 주차 공간에 호텔 측 발레파킹 차량이나 골프장 이용객 차량이 주차돼 있기 일쑤였다. 주차장을 빙빙 돌아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어 호텔 밖으로 차를 몰고 나와야 하는 일이 빈발했다. 

해안위원회가 공개한 2004년 3월 보고서를 보면, 호텔 직원들은 해변 방문자들에게 호텔 내부에 주차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일부 직원은 무료 주차 공간이 없다며 호텔 입구에서 100m쯤 떨어진 노상 주차장으로 보냈다. 민원이 이어지자 해안위원회 담당 직원이 호텔과 접촉해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2004년 해안위원회는 호텔 측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호텔 주차장의 25개 주차 공간을 제대로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호텔에 무료 주차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방문자가 쉽게 알도록 호텔 진입로 등에 표지판을 설치해 알리라고 지시했다. 직원 교육도 요구했다. 무료 주차장, 산책로, 호텔 화장실 위치와 이용 방법을 담은 안내서도 나눠주도록 했다. 

호텔 측은 이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2007년, 2011년 두 차례 벌금을 냈다. 정확한 액수는 파악되지 않았는데 확실한 건 이번처럼 거액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민원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이 호텔은 5월, 160만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호텔 측이 이번엔 시정명령을 제대로 이행하겠다면서 납부하기로 한 금액이다. 

결과적으로 호텔 측이 거액의 벌금을 내게 된 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해변 이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호텔을 향한 민원 제기의 중심에는 캘리포니아 비영리 환경단체 서프라이더 파운데이션(Surfrider Foundation)이 있었다. 이 단체의 정책 담당자는 벌금 부과와 관련해 현지 언론인 KGO-TV에 “이번 결정은 주민을 위한 진정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억만장자, 해변을 차단하다

미국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사업가가 마을 전체를 사들인 뒤 해변 통행을 차단해 소송이 이어졌던 캘리포니아 마틴스비치 전경.

미국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사업가가 마을 전체를 사들인 뒤 해변 통행을 차단해 소송이 이어졌던 캘리포니아 마틴스비치 전경.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우측에 마틴스비치(Martins Beach)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자동차로 2, 3분 들어가면 등장하는 해변이 마틴스비치다. 지난해 10월 연방법원 결정으로 주민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허용되기 전까지, 이곳에서는 10년 동안 해변 접근권을 두고 소송이 이어졌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이자 기업가인 비노드 코슬라는 오라클에 인수된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창업자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는 실리콘밸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으로 통한다. 이외에도 코슬라는 자기 이름을 딴 코슬라벤처스라는 벤처투자사를 설립한 억만장자다. 마틴스비치 통행을 둘러싼 소송이 시작된 건 그가 마틴스비치가 있는 마을을 통째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머큐리뉴스 등의 보도를 보면, 코슬라는 2008년 당시 3200만 달러를 들여 마틴스비치 일대를 모두 사들였다. 해변 자체를 산 건 아니지만 해변을 둘러싼 마을 소유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해변으로 가는 비포장도로 통행을 막았다. 해변으로 가는 길은 이전에도 사유지였지만 전 주인은 해변을 찾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다만 공터 같은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비를 받았다. 

새롭게 마틴스비치 마을 주인이 된 코슬라는 사유재산권을 앞세워 해변으로 가는 도로에 차단기를 세웠다. 캘리포니아가 누구나 해변을 즐길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지만 사유재산권보다 우선하진 않는다는 논리였다. 또 그는 사설경호원을 고용해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2012년엔 사유지 침범 혐의로 서퍼 5명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주민 불만이 커지면서 서프라이더 파운데이션이 나섰다.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이다. 땅 주인이라고 해도 해변 통행을 마음대로 차단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억만장자 사업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캘리포니아 주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한 뒤 지난해 10월 1일 연방법원에서 같은 결정이 내려지고서야 소송이 일단락됐다.


법원 “해변은 모두의 것”

‘이곳은 사유지’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

‘이곳은 사유지’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

이 사건은 연방법원 판결이 나온 뒤 뉴욕타임스까지 보도하는 ‘전국 뉴스’로 화제를 모았다. 연방법원은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해변을 즐길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유지라고 해도 주인 마음대로 해변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해선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차를 몰고 마틴스비치로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니 공터 주차장이 나왔다. 마을 전체를 사들인 사업가 코슬라를 대리해 집을 빌려주고 마을을 운영하는 관리회사 직원이 주차비로 하루 10달러를 받고 있었다. 물어보니 지난해 10월 법원 판결이 나온 뒤 해변으로 가는 도로 차단기를 치우면서 생겨난 변화라고 했다. 그전까진 통행 자체를 막았으니 주차비를 받을 일도 없었다. 

해변으로 내려가니 ‘이곳은 사유지이며 허가된 차량만 주차가 허용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 별장 같은 숙소에 묵는 사람들과 해변 통제가 풀린 사실을 아는 주민 10명 정도가 해변에서 휴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10여 년 전 억만장자 사업가가 마을을 사들여 통행을 막기 전까진 북적이던 곳이다. 예전에 이곳을 즐겨 찾던 주민들이 돌아오는 데엔 시간이 좀 더 걸릴 듯싶다.




신동아 2019년 8월호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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