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 | 북핵, 북핵, 북핵, 북핵!<세계는, 한국은 | 마지막회>

흡수통일 유일한 길은 독일式 ‘접근 통한 변화’

날뛰는 北 무릎 꿇리려면?

  • 장량(張良)|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정치학박사

흡수통일 유일한 길은 독일式 ‘접근 통한 변화’

1/4
  • 낫을 마구 휘두르며 “다 찔러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자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싶지만 그러다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4차 핵실험에 흥분할 때가 아니라 우리 실력을 냉정히 평가하고 나서 북을 무릎 꿇려 흡수한 후 인구 7500만 명, 면적 22.2만㎢, 동-서 800㎞ 남-북 1500㎞ 영토 범위를 갖는 강국으로 가는 길을 모색할 때다.
흡수통일 유일한 길은 독일式 ‘접근 통한 변화’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1970~80년대 필자의 고향에서는 뜨거운 여름날 막걸리를 폭음하고 대취해 상의를 다 벗어던진 채 낫을 들고 “다 찔러 죽이고 나도 죽자”고 소리 지르며 날뛰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동네 사람들은 걱정은 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듯이, 그의 형에게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팬 뒤 집으로 끌고 가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잘못하다 형이 동생이 휘두른 낫에 다치기도 했다. 바로 지금 북한이 핵무기라는 커다란 낫을 들고 날뛰는 못된 동생 꼴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원자탄보다 폭발력이 100배 이상 강한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또 한 번 시퍼렇게 날 선 낫을 들고 설치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형을 코너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힘깨나 쓰는 이웃 중국의 정치인, 외교관, 학자는 물론이고 보통의 국민까지 나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정신 나간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담장을 접한 이웃집 망나니 동생을 앞장서서 혼내주려고 하진 않는다. 그자를 징치(懲治)하려다 자기네 식구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자가 그렇게까지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동네에 사는 미국이 그자의 행실이 나쁘다고 상대도 해주지 않고 수시로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동네 사람들이 부추기는 대로 몽둥이를 들고 정신 나간 북한을 상대해 유혈낭자하게 싸워야 할까.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고, “큰일났다”고 말은 하면서도 제대로 도우려곤 하지 않는 동네 사람들을 설득해 함께 징치에 나서야 할까. 이해관계가 다른 이웃 사람들이 망나니 동생의 형 뜻대로 움직여줄까. 북한을 징치하려다가 휘두르는 낫에 찔려 중상을 입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방어는 철저히 하되, 못된 동생 북한으로 하여금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게 하고, 낫을 치우게 한 뒤 낫을 들고 설치는 이유를 찬찬히 물어보고 해결책도 모색해가야 할까. 



“짧은 순간을 움켜쥐어라”

26년 전인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처럼 분단된 처지이던 서독은 동독을 어떻게 다뤘을까. 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상은 독일 통일이 “비구름 뒤에 숨은 태양이 잠깐 얼굴을 내민 짧은 순간을 움켜쥐어 달성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통독(統獨)은 도둑처럼 온 것이 아니라 찰나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독일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인내와 지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통독은 콘라드 아데나워(총리, 보수)가 이뤄놓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에곤 바르(특임장관, 진보)가 설계하고, 빌리 브란트(총리, 진보)가 감리했으며, 헬무트 슈미트(총리, 진보)를 거쳐 헬무트 콜(총리, 보수)과 디트리히 겐셔(외상, 중도)가 종결지은 독일 민족의 숙명적 과업이었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바르는 통독은 소련과 함께 가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서독은 소련이 바라는 대로 동독을 안정시켜야 하며 경제협력을 통해 동독 주민의 삶을 개선시켜 동·서독 간 경제·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바르의 주장이었다. 그는 이를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rung)’라고 했다. 변화를 위한 조치가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결국 통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바르는 민족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였다. 바르의 아이디어는 사민당(SPD) 출신 총리 브란트의 지지를 받아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구체화했다. 동방정책은 처음에는 서독 보수(기민당/기사당)는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 심지어 동독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책사(策士) 헨리 키신저는 동방정책이 독일을 유럽의 중심에 위치시키려는 비스마르크식 고전적 외교 책략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이 동방정책을 반대하면 서독과 여타 유럽 국가의 관계가 악화되고, 이는 결국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해 동방정책을 지지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1/4
장량(張良)|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정치학박사
목록 닫기

흡수통일 유일한 길은 독일式 ‘접근 통한 변화’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