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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대만

변화의 태풍, 중국 ‘돈맛’ 이겨낼까

수난의 ‘반쪽 국가’

  • 글 · 사진 김용한 | yonghankim789@gmail.com

변화의 태풍, 중국 ‘돈맛’ 이겨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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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사람들이 “나는 차이니즈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자신들은 중국인과 달리 선진 경제, 우아한 사회, 고상한 문화를 누린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대만은 지난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을 선택함으로써 중국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비쳤다. 토네이도 같은 양안관계는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변화의 태풍, 중국 ‘돈맛’ 이겨낼까

대만의 제2 도시이자 남부 최대 항구도시 가오슝. 가운데 솟은 빌딩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 ‘가오슝85빌딩’이다.

대만 남자와 중국 여자가 만나 마음을 통하고 몸을 통하고 정을 통하게 됐다(三通). 둘이 처음 관계를 맺는 순간, 대만 남자가 감격에 겨워 외쳤다. “대만이 대륙을 통일했어!” 그러자 중국 여자가 맞받아쳤다. “천만에. 대만은 중국에 완전 포위됐고, 두 개의 작은 섬 진먼(金門)과 마쭈(馬祖)만 가까스로 포위를 면했지.”
가장 사적인 연인관계도 쉽게 정치 관계로 변하는 곳. 중국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23번째 성’인 대만성(臺灣省)으로 여기고, 대만인은 쑨원의 적통을 이어받은 중화민국으로 여기는 곳. 대만이다.



정치·문화사적 이름  

변화의 태풍, 중국 ‘돈맛’ 이겨낼까


대만의 약칭은 ‘땅 이름 대(台, 번체자는 臺)’다. 폴리네시아인 등 다양한 원주민이 살던 대만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찾아왔다. 시라야족 원주민은 희한하게 생긴 네덜란드인을 ‘타이오안’(외국인)이라 불렀고, 네덜란드인은 이를 땅 이름이라 여겼다.
사람은 가도 이름은 남았다. 훗날 네덜란드인을 몰아낸 중국인은 이 이름을 음차해 중국식 명칭 ‘타이완(臺灣)’을 만들었다.
대만이라는 이름엔 많은 사연이 담겼다. 원주민과 네덜란드인의 만남에서 만들어진 이 이름은, 대만이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만나는 섬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이 이름이 원주민의 말에서 네덜란드인의 로마자 표기로 옮겨졌다가, 다시 중국인의 한자로 바뀐 것은 섬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즉 ‘타이완’은 정치사적, 문화사적 이름이다.
대만 섬은 한반도처럼 중국 대륙과 하나였다. 1만 년 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한반도는 황해가 생겨 반도가 되고, 대만은 대만해협이 생겨 섬이 됐다. 해수면이 상승해도 가라앉지 않은 데서 보듯 전체 면적의 64%가 산이다. 100개가 넘는 산은 평균해발 3000m이고, 최고봉인 위산(玉山)은 3952m의 높이를 자랑한다. 환태평양 화산대라 지진이 잦지만 온천도 많다. 북회귀선은 대만 북부를 온대습윤 지역, 남부를 아열대 지역으로 가른다. 작은 섬이지만 식생이 풍부하고 다양한 작물을 기르기 좋다.
180km의 대만해협 덕분에 대만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나름의 독자성을 지킬 수 있었다. 태평양권이라 일본, 동남아 등과 왕래하기도 좋다. 섬인 만큼 대만은 뱃사람들과의 인연을 떼려야 뗄 수 없다. 대만의 역사는 바다를 건너온 정복자들이 교체돼온 역사였다.  
‘태평양의 왕자’ 폴리네시아인은 바닷물에 손을 담그기만 해도 수평선 너머 섬까지의 거리와 방위를 알 정도로 항해술이 뛰어났다. 이들의 대양 항해는 오늘날의 우주여행에 맞먹는 스케일이었다. 폴리네시아인은 대만은 물론 필리핀, 말레이시아,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 통가 등을 두루 누볐다. 이들의 흔적은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트로네시아어(Austronesian Languages)족 또는 남도어(南島語)족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 통가, 동남아의 말레이어, 타갈로그어(필리핀 원주민 언어) 등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다. 특히 대만은 모든 종류의 남도어족이 다 살고 있다.



최초의 정복자

바다에 살던 해양민족은 대만에서 정착 생활을 하며 평지에 사는 평포족과 산에 사는 고산족으로 변했다. 여기에 중국인들도 찾아와 더러는 정착해 농사를 지었고, 더러는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대만을 거점으로 밀무역과 해적질을 했다.
이때만 해도 대만에는 확고한 지배자가 없었다. 대만의 첫 공식 지배 세력은 생뚱맞게도 멀고먼 나라 네덜란드였다. 대항해시대를 연 유럽은 중국과 인도 무역을 위한 거점 마련에 열을 올린다. 선발주자 포르투갈은 중국 최대의 무역항 광저우와 가까운 마카오에 일찍 터를 잡았고, 후발주자 네덜란드는 대만을 거점으로 삼았다. 대만은 푸젠과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잇는 중간 지점으로서 중일무역에도 적합했다.
162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대만을 점령한 뒤부터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대만 원주민은 수도 적고 생산력도 낮았기에 주둔군은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중국인들에게 농토와 농기구를 지원하며 이주를 장려했다. 때마침 명말청초 흉년과 전쟁에 시달리던 중국인이 대거 대만으로 건너왔다.
타고난 일꾼인 중국인은 잠자던 대만을 깨웠다. 점령 초기 동남아, 일본에서 식량을 수입하던 대만은 곧 사탕수수, 쌀 등을 수출했다. 대만의 급속한 농업생산력 발달은 중국인의 급속한 이주와 맞물렸다. 따라서 역사가 토니오 안드레이드는 대만 사람이 ‘중국인’이 된 것은 네덜란드가 대만을 식민지로 삼은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태평양에 놓인 대만은 중계무역으로서도 최적지였다. 네덜란드는 중국, 일본, 동남아, 중동과의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당시 동인도회사  사원 중 표류하다 조선까지 흘러들어온 사람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벨테브레(박연)와 하멜이다. 네덜란드의 활발한 해상무역 활동이 엿보인다.



정성공 견강부회

그러나 네덜란드의 통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푸젠의 실력자 정성공은 반청복명(反清復明) 전쟁을 일으켰다가 청나라에 패했다. 정성공은 바다로 격리돼 청의 공세를 피할 수 있으면서 언제라도 다시 대륙으로 쉽게 갈 수 있는 대만을 거점화하기로 했다. 1661년 정성공은 ‘홍모귀’(紅毛鬼, 네덜란드인)를 물리치고 마침내 대만의 왕이 된다.
훗날 중국 공산당은 정성공을 칭송한다. 정성공은 푸젠성 출신으로서 외세를 물리치고 대만을 정복했으니, 대륙이 대만을 정복한 모범사례다. 대만 국민당도 정성공을 떠받든다. 정성공은 대만을 근거지로 대륙 본토의 야만스러운 정부에 굴하지 않고 항쟁을 펼친 만큼 대만이 대륙을 정벌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일본 식민통치자 역시 정성공을 좋아했다. 정성공은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대만을 정복한 최초의 ‘일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1898년 일본의 대만총독은 부임하자마자 정성공의 사당을 참배했다.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의 아들, 해적 가문의 후예이며 해상무역상이던 정성공의 복잡한 배경은 대만의 복잡 미묘한 역사를 반영한다.
정성공은 한결같이 반청복명을 꿈꿨지만, 청과 대만의 세력차는 너무나 컸다. 정성공의 아들 정경은 청의 패권을 인정하되 대만의 독립성을 지키는 현실주의 노선을 택했다. 정경은 사신을 보내 “조선의 예를 따라 삭발하지 않고 다만 신하를 칭하며 공납을 바치는 선에서 관계 유지를 희망”했다. 그러나 청은 이를 거부하고 만주식 변발을 하고 투항하기를 원했다. 조선은 병자호란 패전 후 굴욕적인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했으되 청에 협력하자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청은 대만이 조선과 달리 중국의 영토임을 못 박았다.
다만 청은 반란자의 집합소인 대만을 토벌하고자 한 것이지, 대만 섬 그 자체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다. 탁월한 수군제독 시랑이 대만을 정복했을 때 청은 대만인을 이주시켜 섬을 아예 비워버릴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랑은 대만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반대 상소를 올렸다. 대만은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해 경제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장쑤, 저장, 푸젠, 광둥 등 연해지역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긴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시랑의 말은 정확했다. 먼 훗날 이 땅에 눈독을 들여 병약한 청나라 대신 대만을 차지한 것은 신흥 열강으로 부상하던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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