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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이란, 결박 풀고 패권국으로?

경제개방, 정치력 확대 ‘양수겸장’

  • 인남식 |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in@mofa.go.kr

‘걸리버’ 이란, 결박 풀고 패권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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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꽁꽁 묶여 있던 ‘걸리버’가 결박을 풀었다. 패권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이란이다.
  • 1월 16일 핵 관련 경제제재가 해제된 이란은 중국은 물론 유럽 각국의 ‘러브콜’을 받는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이란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셈법.
‘걸리버’ 이란, 결박 풀고 패권국으로?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왼쪽)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1월 1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 경제제재 해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바야흐로 이란의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과 이란 사이에 극적으로 타결된 핵협상이 역사적 분기점이다. 이후 6개월간 일련의 검증 과정을 거쳐 지난 1월 16일 핵 관련 대(對)이란 경제제재가 일제히 해제됐다. 물론 향후 10년 내 이란이 핵 활동을 재개할 경우 국제사회는 언제든 제재 복원(스냅백) 수순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란이 보여준 적극적 이행 의지로 볼 때 협상 타결안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은 당분간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신정주의(神政主義) 이슬람을 추구하며 폐쇄된 근본주의의 길을 걷던 이란이 이렇게 갑자기 바뀐 이유는 뭘까. 요약하면 강력한 경제제재 효과와 이로 인한 민심의 요동이 동인(動因)이다.



다시 세상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으로 자산 동결 및 금융제재가 본격 시행된 2010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일련의 제재조치가 잇따랐다. 특히 2011년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정부를 압박하며 제재 수위를 높인 게 결정타였다. ‘국방수권법 2012(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를 통해 이란산 원유 수입국에 대한 금융제재를 법제화해 2차 제재를 강화한 것이다. 이란과 교역하는 국가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 제재는 파장이 컸다. 한국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름대로 잘 버티며 내수 기반의 ‘저항경제’를 유지해오던 이란도 거의 유일한 현금원인 원유 수출이 급감하자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환율은 급등하고 구매력은 크게 떨어졌다. 제재가 본격화한 2011년과 2012년의 인플레이션은 각각 30.5%, 34.7%를 기록했고 재정수지도 적자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011년 7511달러에서 이듬해 5512달러로 2000달러 가까이 떨어지며 중산층의 생활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다. 빈곤층은 당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보조금을 지급받았지만,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생산주체인 중산층의 삶은 피폐해졌다. 여론 주도층의 불만은 누적됐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심의 변화는 2013년 6월 제11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본격적으로 표출됐다. 이변이었다. 유일한 중도파 후보 하산 로하니가 예상을 깨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해 결선 투표 없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당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지지하던 보수파 유력 후보들을 물리친 로하니의 당선은 이란 민심의 향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보수층은 아연 긴장했고, 미국은 오만 술탄 카부스 국왕의 중재로 즉각 로하니 신정부와 물밑 협상을 시작했다. 결국 지난 1월 16일 제재 해제 이행일을 맞았다. 2년 반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이란은 이제 기지개를 켜며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란은 어떤 나라인가. 상당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대국 후보생이다. 세계가 이란의 개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 국가다. 이른바 탄화수소계 에너지 자원 부존량으로는 세계 제일이라 할 수 있다. 광물 부국이기도 하다. 아연, 구리, 철광, 우라늄 등 68종에 이르는 다양한 광종(鑛種)을 생산한다. 언제든 채굴해 시장에 내놓기만 해도 현금화할 수 있는 자원이다.



패권국가 잠재력

그뿐만 아니라 8000만 인구대국(세계 17위)이며, 평균연령 30세(30세 이하 인구 60%)의 젊은 국가다. 도시인구 비율도 74%에 달해 구매력 측면에서 높은 시장성을 지녔다.
교육 수준 및 인적자원 활용도도 높다. 테헤란대, 응용과학기술대, 테헤란 의대 등에선 국제적 수준의 교육이 이뤄지며, 유럽 주요 대학으로의 유학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여대생 비중은 56%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여타 이슬람권과 달리 여성의 사회활동이 적극 장려돼 여성 고등교육률과 취업률이 높다. 여성의 피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을 기본권으로 보장받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리 여성의 자가운전도 허용된다.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임하며 제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역사적 자긍심도 높다. 유목문화가 중심인 인근 아랍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 속엔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이 출현해왔다고 믿는다. 중세 사파비드 왕조 압바스 1세의 치적은 놀라웠고, 당시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이라 일컬어질 만큼 융성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19세기 말 유럽 식민제국의 침투 속에서도 카자르 왕조의 아미르 카비르 재상은 이란 근대화의 비전을 펼쳤고, 팔레비 왕조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는 중동 최초의 입헌민주주의를 구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호메이니 혁명을 서방의 유대-기독교권에 의한 중동 침투에 대항해 최초로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공화정 모델을 세운 사례라 믿으며, 체제에 대한 자부심이 여전히 높다. 즉, 최고지도자 그랜드 아야톨라가 이끄는 신정질서 아래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를 구성하는 독특한 이란식 ‘이슬람 법학자 통치체제’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잠재력과 높은 인적 자원 수준, 역사적 자부심을 지닌 이란이 제재 해제 이후 곧 역내 주요 행위자, 나아가 역내 패권국가로 부상하리라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바다. 이러한 이란이 최근 현란한 개방 행보를 시작했다.
연초 경제제재가 해제되자마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란을 방문한 데 이어 로하니 대통령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했다.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관계를 통해 교역 규모를 현재의 520억 달러에서 10년 내에 6000억 달러 수준으로 11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최근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상징적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고속철 협력사업을 포함해 17개 분야의 협약을 체결했다.
프랑스와는 푸조, 시트로엥 등 자동차산업의 공동 투자를 비롯해 원유 수입 및 정유, 공항 운용, 철도 등 포괄적인 사회 인프라 협력을 약속했다. 압권은 에어버스 항공기 118대 구입 주문이다. 이번 프랑스 방문에서 약속한 경제협력 규모는 40조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탈리아와도 22조 원대 대규모 경협 약속이 이뤄졌다. 오스트리아, 벨기에도 로하니 대통령을 초청해 곧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고, 수주 내에 스위스 대통령도 이란을 찾을 예정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문 계획도 알려졌다. 이렇게 단기간에 급부상한 경제협력 대상은 일찍이 없었다.



경제협력 파트너 급부상

핵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정무적 동기, 즉 비확산과 대테러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유럽의 내심은 경제적 동기에 기울었다. 만성적인 경기 침체를 겪는 유럽에 정상화한 이란의 개방은 매력적인 호기다. 비록 저유가 기조지만 러시아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천연가스 공급원으로서의 가치, 구매력 높은 새로운 시장의 출현, 그리고 막대한 재원의 인프라 투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제재 해제와 동시에 동결이 풀린 1000억 달러는 투자의 마중물 구실을 하며 이란 경제의 체질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경제개방에 따른 전방위적 외교 행보를 보이는 데에는 내심 정치적 힘의 우위를 다지기 위한 의도가 숨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시진핑 주석과 약속한 전략적 협력관계의 이면엔 수니-시아파 간의 종파 단층선에서 중국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물씬 드러난다. 이란으로선 전통적 우호관계인 러시아와 중국을 확실한 정치적 협력 파트너로 굳혀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유엔 안보리에서의 표 대결 상황에서도 이란의 처지가 반영될 수 있다. 중국 역시 이란 시장 선점 효과 차원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방문에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포함해 균형을 맞춘 행보를 보였고 양국에서도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진핑 주석은 기존 중동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치적 개입을 극도로 삼가고 경제적 협력 기조에만 집중한다는 태도다. 다만 이란과의 관계에선 정치적 협력관계를 일부 확인하는 면모를 보였다. 현지 예측으로는 이란이 곧 상하이 협력기구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도 이란의 정치적 행보가 감지된다. 이탈리아와의 정상회담 이후 나온 공동성명을 보면, 시리아 및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등 중동의 긴급 현안에 관해 이란과 공조하는 뉘앙스가 드러난다. 이어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회담은 화기애애했다. 이슬람 비주류인 시아파 종주국을 대표하는 로하니 대통령은 교황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고, 교황은 이란이 중동 평화 유지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덕담도 건넸다. 적어도 가톨릭계에서 이란이 보여준 최적의 공공외교였다. 기존의 핵 개발 국가 이미지, 호메이니의 과격한 이슬람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킬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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