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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일본이 영유권 주장할 7광구의 과거·현재·미래

8만4000㎢ 바다영토로 日 압박 포철 건설비 2억 달러 받아내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2028년 일본이 영유권 주장할 7광구의 과거·현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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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광제·권병현 前 대사가 8만4000㎢ 확보
  • ● 12년 후 협정 만료…“치밀하게 무장해야”
  • ● 석유·가스 72억t 매장 추정…中도 숟가락 얹어
  • ●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도 주장해야 돌아온다”
2028년 일본이 영유권 주장할 7광구의 과거·현재·미래


철은 ‘산업의 쌀’이다. 종합제철소 건설이 늦었다면 산업화 역사가 현재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가 출범했다. 2년 뒤(1970년) 같은 날 포항제철소 1기 설비가 착공됐다. 포스코의 역사는 한국 산업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포스코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 자금으로 세워졌다. 피 맺힌 돈으로 ‘제철보국(製鐵報國)’에 나선 것. 한국은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 중 ‘청구권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정부 차관) 2억 달러, 민간 차관 3억 달러를 들여왔다.

그런데 당시 외교관 두 사람의 헌신과 노력, 기지(機智)가 없었다면 종합제철소 건설은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신동아’에 전하면서 “치밀한 무장”을 당부했다.



“대한민국 영토만한 바다”


“조약을 담당하는 외교관은 나라의 변호사로서 국가 이익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조광제(85) 전 주(駐)스페인 대사는 3월 7일 이렇게 말했다. 조 전 대사는 한국이 산업화에 전력을 다하던 1968~1970년 외무부(현 외교부) 조약과장을 지냈다. 1957년 외무부에 입부해 이듬해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40년 동안 외교관으로 일했다.
 
권병현(78) 전 주중대사는 조 전 대사가 조약과장일 때 사무관으로 일했다. 권 전 대사는 같은 날 이렇게 말했다.

“조 전 대사와 내가 북한을 제외한 대한민국 영토만한 8만4000㎢ 바다를 확보해 일본을 압박했다.”

북한을 제외한 한국 영토는 9만9720㎢이다. 두 전 대사가 국제법에 근거해 확보한 8만4000㎢ ‘바다영토’에 ‘7광구’가 속해 있다.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동명의 스릴러 영화(2011년)로도 유명한 곳이다. 8만4000㎢와 종합제철소의 관계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시곗바늘을 1969년으로 되돌려보자.

1969년의 어느 날 ‘외무부 조약과장 조광제’는 일본 신문을 읽고 있었다. 제주도 서남방과 일본 서북방의 대륙붕이 겹치는 지역에서 니혼세키유(日本石油)와 데이코쿠세키유(帝國石油)가 제3국과 제휴하거나 단독으로 석유 탐사 및 시추를 계획하고 일본 정부에 그 허가를 신청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조약과장 조광제’는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대륙붕은 일반적으로 대륙의 토양이 수만 년에 걸쳐 바다로 밀려 내려오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긴, 얕고 기복이 적은 평탄한 해저 지형을 가리킨다. 대륙붕이 주목을 받는 것은 석유, 가스, 인산염광물, 메탄수화물 등 광물자원과 관련해서다.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은 지금도 각지에서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거나 육지와 이어진 대륙붕을 근거로 영유권 다툼을 벌인다. 

1969년의 다른 어느 날 ‘외무부 조약과 권병현 사무관’이 처음 들어보는 얘기를 전했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간에 대륙붕 경계선 분쟁이 생겨 국제사법재판소에 계속(係屬)된 끝에 심리를 거쳐 판결이 나왔는데, 1958년 제네바 협약의 등거리 원칙을 배제하고 ‘자연 연장설’을 취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대향(對向)하거나 인접한 국가 간 중복되는 대륙붕의 경계는 등거리 원칙에  따른다’는 제네바 협약에 근거해 니혼세키유, 데이코쿠세키유의 유전 개발을 허가했는데, 1969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가 ‘육지영토의 자연적 연장을 해치지 않도록 당사국과 공평하게 합의해야 한다”고 판결한 사실을 권 사무관이 찾아낸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 판례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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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제 전 대사의 증언을 들어보자.

“20번 넘게 비밀회의를 했다. 1958년 제네바 협약과 1969년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를 면밀하게 검토해 대한민국의 관할권 주장이 국제법상으로 당연하다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일본 처지에서는 억울할 일이겠으나 한반도와 제주도를 잇는 지형이 남쪽 바다로 완만하게 흘러가다가 류큐해구(琉球海溝)까지 이어진다. 일본의 경우는 규슈(九州, 일본 열도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에서 서쪽으로 얼마 안 가서 류큐해구를 만나 가파르게 떨어진다.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대로라면 류큐해구가 한일 간 대륙붕의 경계가 되는 것이다.”  
 
‘류큐’는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다. 해구란 심해저의 좁고 기다랗게 움푹 꺼진 지형을 가리킨다. 

조 전 대사의 설명을 듣던 권 전 대사가 “극비의 극비로 일했다”고 덧붙였다. 권 전 대사는 당시 서울 종로구의 하숙집에서 한국의 대륙붕 구역을 한반도의 자연적 연장이 끝나는 류큐해구까지로 하는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의 초안을 잡았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당시 ‘대외비’ 문건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권 전 대사의 표정은 바로 어제 일을 말하는 듯 양양(揚揚)했다.

“누상동 하숙집에서 법률안을 썼다. 보안이 걱정돼 사무실에선 작업할 수 없었다.”

한국이 관할하는 대륙붕 구역을 위도, 경도로 표시하는 내용은 대통령령인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 시행령’에 넣었다. 조 전 대사는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 및 동 시행령’ 문건과 한국의 대륙붕 경계선을 명시한 해도를 들고 최규하 당시 외무부 장관을 찾아갔다. 최 전 장관은 “이래도 될까?”라면서 결재를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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