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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후베이성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鄂 천하삼분 맹주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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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벌어진 땅에 사는 것은 녹록지 않다. 가만있어도 난리가 벌어지는 탓이다. 그래서 후베이 사람들은 거친 세파를 통쾌하게 헤쳐 나가는 강호의 협객 같은 삶을 꿈꾼다. 이들은 의리를 버린 자를 ‘반수(反水)’라 일컫는다. 물을 거스르는 것처럼 본성에 어긋난 짓을 했다는 뜻이다.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이창 장강대교.

충칭(重慶)에서 출발한 장강삼협(長江三峽) 크루즈 여행의 종착점은 후베이의 이창(宜昌)이다. 유비가 육손에게 대패한 이릉대전이 일어난 땅에서 다시 장강을 따라 내려가니 징저우(荊州)가 나왔다. 삼국시대에 형주 강릉성(江陵城), 위·촉·오가 격전을 벌인 곳이다.

징저우 곳곳에는 삼국시대를 그리는 흔적이 있다. 여관은 ‘삼국빈관(三國賓館)’이고, 공원은 ‘삼국공원(三國公園)’이며, 심지어 노래방 이름은 ‘동작대(銅雀臺)’였다. 물론 ‘삼국’이라고는 해도 민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유비·관우·장비였다. 삼국공원 입구에선 유·관·장 삼형제의 석상이 나그네를 반겨주고, 형주성벽 위엔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징저우를 지키는 신물처럼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삼국시대 최대의 격전지인 후베이다웠다.



초나라 본거지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후베이(湖北)성의 약칭은 ‘땅 이름 악(鄂)’자다. 후베이 수상방어의 요충지인 우창(武昌)에 옛날 악(鄂)나라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약칭이다. 후베이란 중국 최대의 호수이던 동정호(洞庭湖) 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후베이의 가장 큰 지리적 특징은 ‘중국의 배꼽’이라는 점이다. 후베이의 성도 우한(武漢)의 특징을 들어보자. “하나의 선(징광선, 京廣線)이 관통하고, 두 강(長江,漢水)이 교차해 흐르는 곳에 삼진(三鎮, 우창(武昌)·한커우(漢口)·한양(漢陽))이 정립해 있다. 오방 사람이 잡거하고 아홉 성으로 두루 통한다(五方雜處,九省通衢).”

남북으로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달리는 징광선, 동서를 잇는 장강. 중국의 대동맥인 징광선과 장강이 만나는 곳이 바로 후베이다. 중국의 양대 철도인 징광선과 룽하이선(隴海線)이 만나는 허난성이 중국 교통의 중심이라면, 후베이는 중국 지리의 중심이다. 후베이는 허난, 산시(陝西), 충칭, 후난, 장시, 안후이와 접하며 수륙교통으로 장쑤, 광둥, 쓰촨도 쉽게 오갈 수 있다.

특히 성도인 우한은 장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으로 우창, 한커우, 한양 등 세 항구가 합쳐진 도시다. 따라서 사방에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치세에는 상인들이 오가고, 난세에는 군대가 충돌한다.

후베이의 또 다른 약칭인 초(楚)가 이 지역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주요 영역이 바로 후베이다. 중원의 화하족은 황하를, 남방의 초인(楚人)은 장강을 젖줄로 삼았다. 일찍부터 국가를 정비한 화하족에게 남방의 오랑캐들은 남만(南蠻)에 불과했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접어들면서 형만(荊蠻)은 초나라를 세우고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빠르게 발전한다.

초나라는 당시의 선진국인 주나라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지만, 주나라는 초를 오랑캐로 여겨 상종하려들지 않았다. 초의 지도자는 주 왕실에 작위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당차게 말한다. “좋다. 올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올리겠다. 우리는 만이(蠻夷)다. 그러니 주나라 왕실의 시호를 따르지 않는다.” 바로 이 사람이 강한(江漢, 장강·한수)의 맹주 초 무왕이다. 남의 인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초의 자긍심이 드러난다.



一鳴驚人 一飛沖天

춘추시대에 주 왕실은 쇠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권위가 살아 있었다. 따라서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은 춘추시대를 주름잡은 패자(覇者)인 동시에 여전히 주 왕실을 섬기는 일개 귀족이며 신하였다. 그러나 황하가 아닌 장강을 무대로 등장한 신진 강국 초·오·월은 모두 독자적으로 왕을 칭했다. 초장왕, 오왕 부차, 월왕 구천은 주나라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국의 수장이 됐다. 주 왕실은 오랑캐를 무시하다가 오랑캐에게 무시당하며 권위가 땅에 떨어졌으니 자업자득이랄까. 이후 주 왕실의 권위가 살아 있던 춘추시대는 끝나고, 오로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열렸다.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요, 한번 날면 하늘을 뚫을 것이다(一鳴驚人,一飛沖天).” 그 유명한 초장왕의 호언장담대로 초나라의 약진은 눈부셨다. 대동맥 장강을 중심으로 실핏줄처럼 무수히 퍼져나간 강과 호수는 풍부한 쌀 생산의 원천이다. 또한 후베이에는 청동기시대의 핵심 전략자원인 구리가 풍부했다. 구리는 당시 매우 값진 귀금속이라 주 왕실은 거대한 청동기물인 구정(九鼎)을 만들어 권위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러나 풍부한 구리광맥을 장악한 초장왕은 구정을 두고 코웃음을 쳤다.

“구정이 과연 얼마나 큽니까. 그 정도는 우리 초나라 군대의 부러진 창날만 모아도 만들 수 있습니다.”

초장왕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선진국 주나라에 꿀리지 않고, 초의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한껏 과시하며 신흥 강국의 활력과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초장왕은 그저 혈기만 왕성한 ‘막무가내 군주’는 아니었다. 그는 용맹하고 호방하면서도 치밀하고 사려 깊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차를 타고 앞장설 정도로 뛰어난 전사이면서도 “무(武)란 ‘창(戈)을 멈춘다(止)’는 뜻”이라며 무력 사용에 신중을 기했다.

초는 장강 일대를 급속히 장악해간다. 초에 맞설 만한 세력이 적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초가 점령지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대규모 관개시설을 설치해 점령 전보다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 것이 원인인 듯하다.

남방의 맹주 초는 천하무적의 진(秦)에도 힘겨운 상대였다. 초 공략은 진의 천하통일 중 최대의 고비였다. 진시황은 백전노장 왕전에게 초를 정벌하려면 몇 만의 군사가 필요한지 물었다. 왕전은 강국 조(趙)나라를 10만 군사로 멸망시킨 명장이었지만, 초나라 정벌을 위해서는 60만 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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