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新東亞 - 미래硏 연중기획 | 中·國·通

“中, 탐색전·심리전 능란 약해 보이면 더 밀어붙여”

윤영관 前 외교부 장관

  • 이문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 carrot@donga.com

    입력2016-12-22 16: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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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강국으로 떠오르고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중국이 더 중요하다’와 ‘한·미·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를 놓고 백가(百家)가 쟁명(爭鳴)한다. 중국은 우리에게 친구인가, 적(敵)인가.

    중국은 글로벌 차원에선 아닐지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에 도전하면서 지역 패권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은 특히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퇴기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중국은 이웃을 강압하는 미국식 패도(覇道)가 아닌 도덕과 인의의 왕도(王道)로 국제 질서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한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양상은 어떤 형태로 일어날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신동아’와 미래전략연구원이 2017년 연중기획으로 ‘中·國·通’을 시작한다. ‘중국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게 목표다. 첫 회 주제는 ‘중국의 외교를 묻는다’로 잡았다. 지난 12월 3일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서울대 명예교수)을 서울 광화문 미래전략연구원에서 만났다. 윤 전 장관은 미래전략연구원 초대 원장이다.   

    ▼중국의 부상(浮上)이 21세기 세계 질서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여러 쟁점이 있습니다. 중국이 정말 강대국인지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거나 미국의 영향력을 대체할 강대국이라고 봅니까.

    “앞으로 30, 40년 동안 국제정치의 핵심 화두가 중국일 겁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에도 미국 쇠퇴론은 종종 나왔습니다. 1970~80년대에도 쇠퇴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쇠퇴론이 제기됐으나 그때마다 미국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2008년 이후 하강론, 쇠퇴론이 부활합니다. 중국의 외교도 2008년 이후 공세적으로 바뀌었고요.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사실입니다. 구매력 평가지수(PPP)로 환산한 경제력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상대적 국력 상승이 앞으로도 지속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미국의 군사력은 중국의 4배 내지 5배에 이릅니다. 소프트 파워, 즉 연성 권력에서도 미국이 중국보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어요. 2000년대 후반 셰일 오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에너지 자립을 도모하게 됐다는 점도 미국에 고무적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외부 수입으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부패, 환경오염, 복지 등 내부 도전은 중국이 권력을 밖으로 투사할 때 제약 요인이 됩니다. 경제성장률도 7%, 6%대까지 내려갔어요.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됩니다. 과학기술에서 혁신을 이뤄내려면 질 높은 교육 시스템이 필요해요. 중국은 아직 교육제도에서 미국에 필적하기 어렵습니다. 과잉 투자와 금융 섹터 버블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앞으로 큰 관심사고요.”

    ▼중국이 적어도 20~30년간은 미국에 필적하지 못한다?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세계정치 차원에서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가 되긴 힘들다고 봐요. 중국의 대외 전략도 글로벌 차원에서 패권을 추구하기보다는 아시아 지역에 거점을 둔 지역 패권을 꿈꾸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강조하건대, 미국은 상대적 쇠퇴를 지속하고 중국은 상대적 상승을 이어가리라는 단선론적 추론은 위험합니다.”



    “힘의 공백 파고들 것”

    ▼도널드 트럼프의 대외전략은 경제적으로는 보호주의, 외교적으로는 고립주의라고 하겠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수정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가 약화되고 중국은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라고 생각할 겁니다. 트럼프 시대 미중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합니까.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전략은 최근 1~3년 사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힐러리 클린턴마저 대선 과정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지지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견해를  바꿨습니다. TPP 추진이 재균형 전략에서 경제의 축 구실을 했는데도 말이지요.

    필리핀 같은 경우는 미국이 말로만 재균형을 이야기했지 중국의 점증하는 압력과 영향력 확대에 무력함을 드러낸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친중적 행보를 보이면서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필리핀이 미국, 중국, 일본을 상대로 ‘딜’을 하려는 듯 보입니다.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해 적극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자기네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북한 핵은 한국에 사활이 걸린 문제예요. 북한의 위협은 사활과 관련됐기에 한미동맹은 약화하기 힘듭니다. 대북 제재가 굉장히 강하게 들어가는데도 북중 간 교역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한국인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중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사드 같은 경우는 북한 핵을 억지하는 차원에서 들여온 것이기에 북한이 위협을 제거할 때까지만 배치한다는 조건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한미동맹을 약화하려 하지 말라, 미국에는 중국을 포위하는 연합전선에 참여하라고 요구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가진 전략적 인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7년 시점에서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까요.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전쟁에 참전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은 한반도를 전략적 완충지대로 여겨왔습니다. 북한의 지정학적 역할에 대한 중국의 인식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변화한 게 없다고 봅니다. 다만 시진핑 집권 이후 북한을 다루는 방식은 바뀌었습니다.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서 북한을 통제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것 같아요.”



    손자병법 닮은 중국 외교

    ▼완충지대로서 북한 체제 존속을 바란다?

    “한국의 동맹인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 북부에까지 미쳐 압록강, 두만강에서 미군과 맞닥뜨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중국의 전략적 판단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에 북한은 미국을 막아주는 방파제인 것이죠.”

    ▼그렇다면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중국에 ‘당신네들에게 부담을 주는 북한을 끌어안고 현상유지를 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통일 한국이, 예를 들어 휴전선 북쪽에 실질적 의미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주는 경우가 더 유리한지 생각해보라. 통일이 되더라도 당신네들이 원하지 않는 전략적, 외교적 선택을 하지 않을 테니 협조하라.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는 미국 지상군 철수도 고려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합니다.”

    ▼중국과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중국인과의 협상에서 이기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중국 외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중국 외교의 협상 태도나 전술적 측면에서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그런 특징이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외교 방식과 특별히 다른 것인가요.

    “마오쩌둥(毛澤東)이 마르크스, 레닌보다 손자병법의 영향을 더 받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중국은 전쟁을 할 때도 군사적 요소에 앞서 정치적, 심리적 요소를 굉장히 강조해왔습니다. 서구의 전략가들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데 비해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강조하지요. 심리적 차원, 정치적 차원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이 같은 전통이 지금도 중국 외교의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의 역사적 유물’이라고 발언합니다. 이 같은 발언이 전형적 심리전입니다. ‘환추시보’ 등의 한국 관련 논평도 심리전 성격이 강해요.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급행열차에 올라타려 하고,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분열증을 겪고 있다’는 논평은 한국과 일본 사람이 부담감을 느끼게 하죠. ‘중국에도 협조해야 하는 것 아냐?’ ‘중국과 더 가까워져야 하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수많은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협력하면서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탐색전에도 능한 중국 

    ▼한국만의 딜레마가 아니다?

    “그렇죠.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게 세계적 현상입니다. 중국 외교는 탐색전에도 능해요. 이렇게 저렇게 상대방을 테스트해보는 거죠. 떠본다고나 할까요.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반응이 약하면 기정사실화해버립니다. 반발하면 뒤로 빠지고요. 치고 빠지는 데 능란해요. 미국의 힘이 쇠퇴한다고 느껴지자 미국과 가까운 동맹이나 우방을 밀어붙이면서 의중을 떠본 예가 적지 않아요. 강하게 나오면 빠지고, 약하게 나오면 더욱 밀어붙이는 외교를 합니다.”

    ▼현재 한중 간 최대 이슈는 사드 배치 문제입니다. 최근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서 중국이 또 한 번 반발합니다. 사드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중국이 패키지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한중 간 이견을 좁힐 방안이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 ‘북한 핵은 우리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핵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만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밝힌 후 중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이어가면 두 나라 간 이견을 좁힐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사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심지어 러시아와도 맺고 있어요. 폴란드,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같은 나라와도 맺은 일반적, 초보적 협정입니다. 14개 국가와 약정을 맺었으며 11개 국가와 협정을 추진합니다. 비슷한 성격의 협약을 다 합치면 40개 국가가 넘어요. 북한의 안보 위협을 공유하는 이웃 일본과 협정을 맺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례적일 정도죠. 일반적, 기초적 정보 협력 협정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논란이 되는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정책 방향을 결정할 때는 각 부처의 수장이 모여 토론을 벌인 후 토론의 결과물을 대통령에게 올려 결심을 받는 형식이 돼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흔들리는 모습 안 보여야”

    대통령이 설명도 하지 않고 결정해버린 예가 적지 않아요. 사드 배치 문제,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 개성공단 중단 문제 등도 어느 날 느닷없이 결정돼버렸습니다. 일을 이런 식으로 하니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겁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정면 돌파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사안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한국 정치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인데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국정 공백이 우려됩니다. 외교부 수장으로 일한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상황에서 외교·안보 요직에 있는 분들이 유의할 점은 무엇일까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게 기정사실이 된 마당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의 정부가 조심해야 할 것 몇 가지를 꼽아보죠. 첫째,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비 태세가 튼튼해야 해요.

    둘째, 군사 및 안보와 관련해 한미 간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새로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와의 소통과 협력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외교 활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초당적 합의가 있으니까요.

    셋째,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그 외의 구체적 사안들에 대해선 기존의 정책 틀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존 정책이 ‘잘됐느냐, 잘못됐느냐’ 평가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은 다음 정부가 할 일이지 잔여 임기에 할 일이 아닙니다. 혼선을 야기하는 발언도 자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란기에 주변국의 압박이나 전술적 공세가 강해질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모습,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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