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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세계 태양문명 기행

영원을 꿈꾼 시간의 지배자들

  • 권삼윤 문명비평가

영원을 꿈꾼 시간의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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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부터 인간은 태양을 숭배했다. 피라미드를 쌓아 '태양의 배'를 타고 영원을 향해 여행을 떠났던 그들의 후손은 이제 밀레니엄 해맞이를 기다리며 가슴 설렌다. 》
2000년을 밝히는 첫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를, 남태평양 날짜변경선 가까이 자리잡은 키리바시와 통가, 피지, 쿡 제도, 뉴질랜드 등지에는 밀레니엄 해맞이를 위해 세계 각지로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중에서도 피지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가 정한 180도 자오선상에 위치한 섬. 새천년의 동이 트는 순간 관광객들과 함께 10만개의 벽돌로 자오선 위에 성벽을 쌓고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두루마리를 타임캡슐에 담아 자오선이 지나는 땅 속에 묻는 행사를 벌인다. 그 광경을 위성으로 전세계에 보여줄 예정이라고 한다.

통가에선 2000명으로 구성된 성가대가 헨델의 ‘메시아’를 합창하며, 2000년의 첫 햇살이 비치는 뉴질랜드의 체덤 제도에서 는 2000명이 참가하는 자전거 경주와 철인 3종경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밀레니엄 해맞이 축제가 날짜변경선 근처에 위치한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밀레니엄 일출을 보기 위해 자기네 땅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이 대열에 우리라고 예외일 순 없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동해안에는 벌써부터 교통대란, 숙박대란이 예고되고 있지 않은가.

피라미드의 신비

그러나 지구 최고, 최대의 밀레니엄 해맞이 행사는 이집트의 저 유명한 피라미드 앞에서 펼 쳐진다. 그것도 1999년 마지막 일몰에서 2000년 첫 일출까지 장장 12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진행된다. 오페라 ‘아이다’를 비롯해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쇼와 발레 등으로 구성되는 사상 초유의 공연무대에 밤하늘을 수놓는 초호화 레이저 쇼가 겹쳐진다.

매일 밤 연기자 없이, 아니 역사 그 자신이 연기자가 되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때리는 조명과 레이저 빛, 그리고 대사와 음향효과만으로 관객들을 4500년 전의 세계로 이끄는 ‘빛과 소리의 향연’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밀레니엄 공연무대가 얼마나 환상적일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새천년을 맞이하는 순간, 사람들이 찬란한 미래를 그리는 대신 4500년 묵은 피라미드 앞에서 쇼를 하고 또 그것을 구경하려고 몰려드는 까닭은 도대체 뭘까. 게다가 새 밀레니엄을 맞아 사람들은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훼손된 피라미드를 복원하려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최고권력자, 아니 신이 되고자 했던 파라오(Pharaoh, ‘큰 집’이라는 뜻)가 천문학·지리학·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축조한 것이다. 피라미드는 밑변 하나의 길이가 230.7m, 높이가 146.7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건축물이다.

그러면서도 수치 하나하나가 놀라운 정밀도를 보여준다. 허공 속에 정확히 삼각형을 그리는 빗변의 경사각은 51도 52분으로 몹시 가파르다. 각 변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정확히 가리키며, 밑변들간의 길이 오차는 0.1% 미만이다. 돌과 돌 사이에는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탄탄하다.

현대 기업들이 최고의 정밀도로 품질 경쟁에서 승리하자며 내세우는 ‘ppm경영’을, 이집트인들은 그때 벌써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수리체계다. 밑변 한 변의 길이에 480을 곱하면 카이로 일대의 지리상 위도 1도의 길이와 맞아떨어지는 11만736m가 된다. 당시의 길이 단위는 큐빗(cubit). 이는 지구 반지름의 1000만분의 1로 25.3인치였다. 이를 25로 나누면 1피라미드인치가 되고, 5억배로 곱하면 지구의 지름이 된다.

또 밑변 한 변의 길이를 피라미드인치로 환산하면 365.242인치가 되는데, 이는 1년의 날수와 같다. 피라미드의 높이를 10억배로 연장하면 지구와 태양 간 거리인 1억4694만4000km가 되고, 피라미드 밑변 둘레를 높이의 2배로 나누면 3.144, 즉 π(원주율)의 값이 된다.

단순하게만 보이는 피라미드 내부에는 ‘왕의 방’과 ‘왕비의 방’ 등 두 개의 현실(玄室)이 있고, 그곳으로 연결되는 통로도 있다. 특히 피라미드의 중심(重心)에 있는 왕의 방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쾌적한 온도인 화씨 68도(섭씨 15도)가 항상 유지되며, 고기를 아무리 오래 둬도 부패하지 않는다. 소위 ‘피라미드 파워’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듯 피라미드는 소우주와 부동(不動)을 표현하고 있다. 소우주와 부동, 그것은 영원과 동의어다. 평평하면서도 황량한 지평선 위에 끝모를 하늘을 향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반듯이 쌓아올린 돌탑은 결국은 영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죽음을 거부하려는 몸짓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죽음까지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고 생각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원 추구는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인간의 이성만을 믿고 ‘오늘’에 매달릴 뿐 죽음을 넘어서려는 의욕도, 에너지도 없으니까.

시간을 지배하기 위하여

현대문명이 진정 가치 있게 살아 남고자 한다면 죽음의 세계를 다시 인식의 대상으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 죽음 직전까지만 존속하는 삶은 뿌리 없는 나무일 뿐이다.

파라오가 그토록 추구했던 영원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의 지배, 바로 그것이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영생을 말하며 꿈꾸던 것은 삶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시간을 지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태양과의 연관성 속에서다. 일출과 일몰, 나아가 낮과 밤이라는 시간의 변화는 모두 태양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年)’를 ‘해(太陽)’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인식하는 것도 태양의 비춤 여하에 따라 생기는 빛과 어둠이다. 그런 태양이었기에 인간은 고대로부터 빛은 선이고, 이성적이며, 내 편이고 생명이라 생각했다. 이에 반해 어둠은 악이고, 비이성적이며 또 적과 죽음을 상징했다.

고대 이집트인들 역시 그랬다. 해가 뜨는 빛의 고향인 동쪽은 그들에게 산 자(生者)의 터전이 됐고, 해가 지는 서쪽은 자연스레 죽은 자(死者)의 안식처가 됐다.

그들은 ‘태양은 저녁이 되면 서쪽 하늘로 사라진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동쪽 하늘로 다시 떠오른다’‘나일강은 여름이면 범람하여 비옥한 충적토를 하류로 실어다 준다’는 자연의 질서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자연의 질서는 그들에게 풍요를 안겨줬기에 그들은 더없이 낙천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승에서의 삶이 마감된다고 해서 삶이 모두 끝난다고 보지 않았다. 비록 육신은 숨을 거두어도 영혼은 계속 살아 있으며, 또 숨을 거둔 육신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저 태양이 매일 다시 떠오르듯, 또 나일강이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듯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라를 만들어 시신을 보존한 것은 우선 시신을 썩지 않게 하는 그들의 풍토에 연유하는 것이겠지만, 그와 같은 자연현상을 보면서 그들은 육신의 부활을 떠올렸다. 그것이 바로 불멸(immortality) 사상이었고 영원(eternity)에의 의지였던 것이다.

권력자만이 영원을 꿈꾼다

그러나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축조하는 것으로 영원의 꿈을 접지 않았다. 두 개의 성선(聖船)을 만들어 자신의 무덤인 피라미드 곁에 묻고 하늘을 가로질러 낮과 밤을 여행하고자 했다.

우나스왕의 ‘피라미드 텍스트’에는 ‘태양신 라(Ra)와 함께 하늘을 가로질러 영원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파라오의 간절한 소망이 쓰여 있고, 1954년 5월과 1988년 9월에는 피라미드 동면(東面)에서 목재선박, 일명 ‘태양의 배(Sun Boat)’가 발견됐다. 파라오는 그중 하나를 낮에, 다른 하나는 밤에 이용하며 ‘영원한 여행’을 즐겼던 것이다.

이는 영생이란 것도 시간의 질서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는 물증이다. 태음력과 태양력을 최초로 사용한 것도 그토록 영생을 추구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영생을 꿈꿀 수 있고 시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최고의 권력자만이 가능했다. 고대 이집트에선 파라오, 고대 중국에선 황제만이 그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책력(冊曆)을 발표하는 것은 그들만의 특권이자 의무였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농업을 장악했고, 나아가 영역 내의 모든 인민을 손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시간 지배는 현실세계에선 권력 행사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피라미드가 보여주는 극도의 단순함은 영원을 향한 의지를, 거대함은 권력을 향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피라미드가 이집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빼닮은 피라미드가 여럿 있다. 그것이 처음 등장한 곳은 올멕(Olmec) 문명이 태어난 멕시코 동부 해안지대. 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 축조술이 대서양을 통해 전파된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소위 ‘전파론’ 쪽에 서 있는 노르웨이 인류학자 토르 헤이에르달은 그 전파 루트를 따라 직접 갈대배 ‘라(Ra,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호’를 타고 항해했다. 두 차례의 시도 끝에 그가 바람과 조류의 힘만으로 멕시코의 바베이도스섬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이집트 피라미드 축조술이 아메리카 대륙에 전해졌다는 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게 됐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테오티와칸인은 올멕 문화를 바탕으로 기원전 2세기경 멕시코 고원에 등장, 수준 높은 문명을 일으켰고 피라미드까지 축조했다. 이곳에는 해와 달, 두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해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것을 포함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수직벽과 경사벽을 번갈아 축조하는 탈루드 타블레로(Talud Tablero) 기법에 의한 4단 구조의 이 피라미드는 각 단의 경사각에 차이가 있긴 하나 대체로 43.5도를 나타낸다.

이는 이집트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높이 147m)인 쿠푸왕의 것보다 완만한 편인데다, 정면에 252개의 계단이 정상까지 나 있어 걸어서 오르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사람이라면 대개 힘들어하면서도 64m 높이의 정상까지 오른다. 거기에서 유적지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기도 하고, 돌 위에 앉아 잠시 기(氣)를 느껴보기도 한다.

테오티와칸인들은 춘분·추분날 한낮이면 완벽한 직선 그림자가 피라미드 서면(西面) 아랫단에 나타나게 했다. 후일 이를 발견한 아즈텍인들은 그래서 이것에 ‘해의 피라미드(Sun Pyramid)’란 이름을 붙여줬다.

대개의 고대문명이 그러하듯 테오티와칸인 역시 문자 기록을 남겨 놓지 않아 피라미드를 축조한 정확한 의도를 분명하게 밝힐 수는 없으나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 아니었던가 한다. 피라미드는,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고 믿은 태양에게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쳤던 신전 겸 천체관측소가 아니었을까.

아즈텍인들 또한 태양숭배에 열성적이었고, 인신공희(人身供犧)에 적극적이었다. ‘태양을 구출하라’는 구호는 10∼16세기 멕시코 고원을 지배했던 아즈텍인들이 자나깨나 염려했던 최대 과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 창세 이래 다섯 번째로 마지막 태양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친 태양에게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치지 않으면 세상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태양의 역석(曆石)’ 중앙에 새겨넣은 태양은 늘 지쳐 있고 ‘인간의 뜨거운 피를 달라’는 시늉으로 혀를 입 밖으로 내밀고 있다. 이렇듯 아즈텍인들은 일상의 잡사를 제쳐두고 하늘을 오가는 태양의 안녕을 염려했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 눈에는 참으로 부질없는 일로 보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사소한 개인적 이해관계에 목숨을 걸기보다 우주를 화두로 삼고 그것의 안녕을 걱정하며 살아간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산 것이 아닐까 싶어 부러운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들도 시간을 지배하는 것, 그리고 영생을 꿈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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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문명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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