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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老子 말하면서 버터냄새 풍기지 말라

  • 박현 한국학연구소 소장

김용옥! 老子 말하면서 버터냄새 풍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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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朴賢)씨는 인문학 베스트셀러인 ‘나를 다시 하는 동양학’의 저자로, 동양학 연구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씨는 87년 고려대 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후 현재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배달(사단법인) 학술위원, 전통수행연구회(천통회)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99년 10월에는 교육방송(EBS)에 출연, ‘선인의 숨결’이라는 프로그램으로 2개월에 걸쳐 강연해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오는 3월6일부터는 불교TV에서 ‘21세기 동양학(가칭)’이라는 주제로 6개월간 강연(30회)할 예정이다. 일반인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전통수행연구회 강의실(서울 종로구 와룡동 동원빌딩)에서 박현씨의 공개 강연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수행학에 입문, 30년 동안 이론과 수행을 겸비해 온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고대지성사 산책’ ‘우리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등이 있다. 》

[ 왜 동양학인가? ]

근래 들어 교육방송이 내보내고 있는 ‘동양학 강좌-노자와 21세기’는 그 강좌를 맡은 철학자 김용옥씨의 탁월한 대중적 강의와 폭넓은 지식 및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최근의 문화적 흐름과 맞물려 보기 드문 인기를 얻고 있다. 서양학 일변도의 학문적 독점성과 문화적 편향성을 경고하는 한편, 학문과 문화의 영역에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는 데서 이런 강의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물론 동양학을 다시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문화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꽤 오래된 시도 가운데 하나다. 또 그런 시도가 결코 획일적인 관점에서 진행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복고적인 문화 보수의 관점에서 동양학을 이해하려 했으며, 어떤 이는 서양문화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동양학을 살피려 했다.

동양학에 접근하는 탐구자의 견해에 따라서, 또 탐구해온 동양학의 주된 영역에 따라서, 탐구자들마다 동양학을 다르게 이해하기도 했던 것이다. 수행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동양학에다 어느 정도 신비한 무지개를 얹어 놓으려 했으며, 지식을 통해 동양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거기에다 논리적 역설과 문화적 개방성의 깃발을 꽂으려 했다. 이처럼 동양학에 접근하는 관점과 동양학의 정체성에 대한 견해들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 도올 김용옥(金容沃)이라는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가진 철학자가 대중매체를 통해 스타로 등장함으로써, 이제 동양학은 상당한 대중적 기반을 가진 문화적 영역으로 발돋움했고, 마침내 여론 선도층의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런 점에서 그의 동양학 강좌는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은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사건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은 결코 쉽게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의 역할을 칭찬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없다. 이것은 수많은 오락성 프로그램과 달리 우리의 미래 설계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용옥씨 스스로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이제 동양학으로부터 우리 사회와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대답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오히려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동양학과 관련된 중요한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 바, 그 대답이야말로 동양학의 현실적 위치를 설정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동양학, 동양학 하는데, 동양학이란 대체 무엇인가? 또 동양학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그 첫번째 질문이며 아울러 이 질문이야말로 동양학과 관련된 마지막 질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이 준비되지 못한다면, 동양학이라는 영역은 또 다른 문화적 음모에 이용되거나,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고 말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늘날 인류는 우리의 현대를 넘어 새로운 현대를 이끌어내어야 할 문화적 탐색·결정기에 살고 있는 바, 과거의 문화와 사상들은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근거로서 충분히 검토돼야 할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현실적인 실험을 거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전통을 가진 동양의 문화와 사상이 그런 실험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동양학으로 통칭되는 동양의 오래된 문화와 사상이 우리 시대에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하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조금이라도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면, 우리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동양학, 특히 대중적 기반을 다진 김용옥 씨의 동양학을 이야기할 때, ‘동양학이 과연 그런 것인가’ 하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대중적 기반을 갖추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오랫동안 한국문화와 동양문화의 인류사적 가능성을 찾아왔던 지식인들은 특히 그런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한다. 물론 그들의 의문은 아직 구체적이지도 못하고, 어떤 측면에선 성급한 감각에 머물고 있지만, 그들은 곧잘 이렇게 말한다.

“김용옥씨가 지은 책을 읽거나 그가 강의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그가 마치 새로운 형식의 정복자처럼 느껴진다. 자주 거론되는 그의 강의 습관이나 분방한 행위 때문은 결코 아니다.”

사실 필자는 김용옥 씨에 대해 어떤 선입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행여 선입견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나름대로 방대한 지적 기반을 가지고 있고, 권위와 인습에 젖은 많은 학자들과 달리 매우 솔직하며, 아울러 지식인다운 문제 의식에 상당히 투철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필자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답답하다고 여길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결론부터 밝히려고 한다.

“김용옥 씨의 ‘동양학’은 그가 알든 모르든 깊은 수렁과도 같은 음모의 하나이며, 거기에 동조하여 그에게 박수만 치게 될 경우, 우리 사회와 진정한 동양학은 그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 유럽문화의 아전 지식인들 ]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문적 경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유럽문화에 바탕을 둔 서양학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류 지식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양 문화와 서양사상의 충실한 아전에 지나지 않다. 이것은 결코 시비를 유발하려는 감정적 표현이 아니며, 우리의 문화적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려는 뼈아픈 자기 고백일 따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와 역사’를 지은 스위스의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J. Burckhardt)는 유럽의 문화가 기독교적 전통과 그리스·로마적 전통 및 게르만적 전통의 합일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요컨대 유럽문화는 기독교의 세계주의와 그리스·로마의 합리주의 및 게르만의 적극적 정복정신의 합일체라는 주장이다.

그럴 듯한 이 표현이 유럽문화를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한 것인지에 관심을 두지는 않겠다. 그러나 중세의 완성 또는 근세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르네상스를 통해 이와 같은 문화적 전통이 유럽문화의 바탕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데는 그다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름하여 ‘유럽시대’이며, 또한 서양의 근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서양 근세철학의 요람이 되었으며, 서양 근세철학은 산업혁명과 근대과학의 모태가 되었고, 나아가 그것은 자본주의의 젖줄이 되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근대과학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달리면서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를 무대로 하는 무정부적인 대량생산체계를 갖추게 되자, 유럽시대는 마침내 해체되고 세계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근세가 현대로, 곧 우리의 세계시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유럽시대의 종언’이니 하는 것들은 바로 그런 시대적 전환을 절실하게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경제적으로 세계시장이 구축되자, 정치·군사적으로도 세계시대가 열렸다. 그렇지만 유럽시대는 스스로의 낡은 목숨을 결코 쉽게 놓지 않았다. 유럽시대는 그 무대를 유럽에서 전세계로 넓혔을 뿐이며, 그 문화는 그대로 세계시대의 독점적 주류 문화로 남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의 다른 여러 문화를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진정한 세계시대를 연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로 대변되는 폭력적 팽창을 통해 유럽문화의 무대를 세계로 바꾸었을 따름이다. 물론 유럽문화의 변질 계승자인 미국이 세계시대의 새로운 중심 세력이 되었다지만, 문화적 본질이란 측면에서는 그다지 바뀐 것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대다. 요컨대 우리들의 현대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문화가 없는 유럽문화의 세계화시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들의 현대는 과거의 다른 모든 현대와 마찬가지로, 그 내부의 불완전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부정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런 자기 부정이 빠르게 진행되며 다음 현대를 지향한 설계도 그리기가 한창 진행되는 시기다. 그렇지만 그 어떤 설계도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정을 통해 나아갈 다음 현대의 방향은 세계시대에 어울리는 세계문화를 세우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들의 현대는 제국주의적 폭력과 유럽문화의 독단적 지배를 전제로 문을 열었다. 산업혁명과 근대과학 및 근대철학에 근거를 둔 그들의 폭력성은 정치·경제·군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자신들의 문화가 이루어낸 모든 영역을 우리 시대의 독점적 주류 문화로, 나아가 인류 보편의 문화로 만들어갔다. 먼저 자본주의의 위력을 앞세워 근대과학을 인류 보편의 과학으로 자리잡게 했으며, 근대과학의 위력을 내세워 그들의 철학과 모든 문화를 세계의 주류 문화로 발돋움하게 했는데, 그 과정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마찬가지로 거의 세뇌나 다름없었다. 문화적 세뇌현상과 사상적 자기 속박이 없다면 독특한 하나의 시대로 불릴 수도 없을 것이기에,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유럽문화에 세뇌된 비(非)유럽권 사회에서, 먼저 세뇌된 것은 대중들이 아니라 이른바 소수의 신(新)지식인들이었다. 직접 또는 간접으로 유럽문화를 받아들인 그들은 전통 문화를 이끌어오던 주류 지식인들을 낡은 부류로 몰아내면서, 유럽문화와 자본주의의 위력을 등에 업고 새로운 주류 지식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들은 유럽문화가 이끌어낸 현실적인 위력에 굴복하거나 거기에 매혹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 그들의 문화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문화라고 믿었다. 비유럽권 사회의 경우, 새로운 사상적 접붙이기와 문화적 피갈이는 바로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19세기말의 개화파 지식인들이 그 전형이라 할 것인 바, 이토록 놀라운 일이 일어난 지 단 몇십 년만에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적 후예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난공불락의 문화적 권위를 누리고 있다. 필자는 바로 그들을 일러 서양문화의 아전이라 부르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 의해 우리 사회를 비롯한 비유럽권 사회의 전통적 사상과 문화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정치·경제·교육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조차 자신들의 문화와 사상은 역사적 과거로만 간단하게 언급할 뿐, 모든 줄거리는 이미 생명의 빛을 잃은 채 유럽권의 그것들로 대체했던 것이다. 그나마 유럽문화의 다양성을 자랑하듯 이런저런 유행사조를 발빠르게 내놓으면서 말이다.

이런 흐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유럽을 문화적 모국으로 여기는 지식인들의 몰주체적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들에 의한 문화적 식민통치는 현실적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탐구조차 바로 그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 동도서기(東道西器)인가, 서도동기인가 ]

오늘날 동양학에 초점을 맞춘 여러 가지 강좌가 개설되고 거기에 대중이 몰리는 현상은 이런 피갈이가 가져온 현실적 상황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물론 처음에는 유럽문화의 전통 속에서 현실 상황의 문제들을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며, 아직도 그런 노력은 지성사적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어쨌든 이제 서양 문화는 자신들이 짓누르고 폐기하려 했던 낡은 문화에서조차 그런 가능성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다다른 것이다. 아울러 이것은 현실적으로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문제가 시간을 다툴 만큼 촉박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음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유럽문화가 짓눌렀던 모든 비유럽 지역들과 그 민족들의 문화가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진정한 문화융합을 이루는 세계시대, 곧 진정한 세계시대를 구성하는 주체와 관련된 것이다.

유럽시대의 종언을 맞이한 유럽문화는 그 외연을 세계로 늘리는 과정에 비유럽권 사회의 전통 문화를 짓누르고 폐기하려는 데 그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유럽문화를 지키려는 세력들은 제국주의적 폭력을 통해 비유럽권 지역의 문화적 주체들을 억누르기도 했지만,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세계무대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교묘한 지적 장치도 장만했던 것이다.

제국주의적 폭력성이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오늘날, 그 장치는 매우 위력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유럽문화의 입장에서 이것이야말로 더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예를 들어 ‘국수주의’라는 냉소적 표현에도 그런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국수주의를 세계시대를 외면하는 낡은 세력의 케케묵은 주장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시대에서 그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려는 유럽문화의 생리적 음모일 수 있다. 사실 유럽문화는 그 외연을 세계로 넓히는 과정에 비유럽권 문화만 짓누른 것이 아니라, 비유럽적 문화를 키워온 민족과 국가들까지 짓눌러 그들로 하여금 세계화의 주역이 될 수 없도록 무장해제를 시켰다. 그들이야말로 서양 중심의 일방적 세계화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적 폭력을 통해 그들 민족과 국가를 짓눌렀던 제국주의가 위력을 잃은 다음에는, 유럽문화에 길든 신 주류들을 앞장세워 서양 문화에 바탕을 둔 허울뿐인 민족국가를 세움으로써, 비유럽권의 민족국가가 더 이상 서양 중심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우리 시대의 민족문제가 가진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이것은 세계무대의 주된 관심사에서 밀려났을 뿐,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이처럼 비유럽권 사회의 전통적 공동체들을 해체하여 세계시대의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전통문화로부터 해체된 개인을 그 주체로 등장시킬 때, 유럽문화는 여전히 주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지역 자치는 외형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근래에야 실시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전통문화가 무장 해제된 다음에 실시되었는데, 이 또한 그런 사정 때문이다. 또 그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가족중심 민주주의는 개체중심 민주주의에 의해 그 실현 가능성마저 타진되지 못하고 말았다.

자동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인간이 앞으로 걷거나 뒤로 걷는 것을 비슷한 비율로 하는 동물이라면, 인간이 생산하는 자동차도 아마 전진 기어와 후진 기어의 비율을 그대로 채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전진 이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그 생산물인 자동차도 결국 전진 기어 중심의 운동체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용하는 인터넷체계도 오늘날의 우리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듯, 개인 중심의 세계화를 그대로 닮았다. 인터넷에는 누구든 개인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이미 비유럽적 공동체와 비유럽적 도구는 해체되어 있다.

오늘날 개인이 자신의 잘난 측면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공동체나 국가의 잘난 측면을 자랑하는 것은 편협하고 낡은 국수주의로 간주하는 현상, 여기에는 이처럼 알게 모르게 유럽문화의 권력집착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시대를 맞는 우리들의 서글픈 이중성이다.

[ 김용옥씨는 과연 동양학자인가 ]

동양학으로부터 대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경우, 이중성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바로 ‘동도서기’의 동양학이 아니라 ‘서도동기’의 동양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양학, 곧 유럽사상의 눈으로 동양의 문화를 살펴보는 경향성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동양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 경향성은 동양을 탐구하는 서양학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외형적으로도 그런 측면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도동기의 입장에서 동양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동양문화의 공동체적 전통을 주로 담고 있는 문화적·사상적 분야보다는 개인적 전통을 주로 담고 있는 문화적·사상적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그들은 유가사상이나 우리 기마종족의 전통사상보다는 도가사상이나 불교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도가사상이나 불교가 개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설령 유가사상이나 기마종족의 전통을 다루는 경우에도, ‘오래된 미래’라는 글에서처럼 공동체의 전통보다는 자연친화적인 인간문화에나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들은 무엇이 동양문화를 이끌어온 주류 사상이며, 전통적인 동양사회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들 문화의 문제점을 풀어줄 이런저런 동양사상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김용옥 씨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한두 가지 근거에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그가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무관심의 소산인지 무지의 소산인지, 그는 동양사회를 이끌어왔으며 동양문화의 중요한 축이기도 했던 기마종족의 전통사상과 문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유가사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가 도가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여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가 쓴 책이나 강의에서 동양학의 공동체적 문화에 대해 언급한 경우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로 그가 노자 연구자를 자처한다면, 이런 문제까지 제기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생각이 동양학 전체를 꿰뚫고 있는 정수인 양 말하는 한, 이런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끊임없이 개인을 문화의 주체로 놓고 동양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설파한다. 뿐만 아니라 동양학은 그에게서 ‘우리의 것’이 아니라 다만 배워야만 하고 배울 만한 그 무엇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잠시 뒷면으로 넘겨두자.

그는 ‘노자철학 이것이다’에서 동양학의 특징을 세 가지라고 하면서, 첫째로 하늘과 사람의 화해, 둘째로 존재와 가치의 화해, 셋째로 현상과 본체의 화해를 들었다. 그러나 동양학이라는 영역을 탐구하는 데서 빠뜨릴 수 없는 핵심적인 교재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만 보더라도 개체와 집합체의 하나됨이라는 동양학의 또 다른 특징을 말해야 한다.

‘몸가짐을 다시 함(修身)’ ‘집안을 가지런히 함(齊家)’ ‘나라를 바르게 함(治國)’ ‘누리를 고르게 함(平天下)’이라는 대목과 그 대목의 동시성은 바로 사람의 몸(身)으로부터 가정과 국가 및 천하에까지 이르는 집합체가 하나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그는 이런 하나됨에 주목하지 않고 그 대목의 내용성만 이야기한다. 이처럼 개체와 집합체의 하나됨이라는 놓을 수 없는 이 중요한 특징은, 그의 철학에서 내면과 외면의 화해 또는 현상과 본체의 화해라는 틀 속에서 모호하게 설명되고 있을 따름이다. 사실 이 하나됨의 입장이야말로 동양의 공동체사회를 이끌어온 역사적 특징인데도, 그는 이 역사적 현상을 철학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동양의 우화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와도 좋다면, 그렇게 해보자. 동양의학의 사회적 상식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도 된다면, 또 그렇게 해보자. 태산의 쇠가 다치니 그 쇠로 만든 종이 울음소리를 낸다는데, 그것을 일러 ‘같은 기운으로 맺어졌기 때문(同氣連繫)’이라 했다. 바로 개체와 집합체의 하나됨을 말한다. 멀리 있는 아들이 아프니 그 아비가 몸져눕기도 하는데, 이 또한 ‘동기연계’로 설명되는 개체와 집합체의 하나됨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세 가지로만 동양학을 특징지은 다음, 거기에 덧붙이는 글에서, 이것은 자신의 확신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세속적 현실을 철학화해야 한다’는 그의 평소 주장은 마침내 서양 중심 세계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과 그 시대의 연장에 필요한 현실적 요구만 철학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그의 관점이 이렇게 단순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마 전 교육방송의 동양학 강좌에서 그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날 그는 우리 민족의 저력에 대해서도 한바탕 웅변을 토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 웅변에서도 서양 중심의 세계 시대라는 현실을 철학화해버린 그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용옥 씨는 우리 민족이 위대한 문화적 저력을 가지고 있는 바, 유럽이 250년이나 걸린 시민민주주의를 단 50년만에 이루어낸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또 근래 금융위기 돌파 능력에서도 그런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 박수가 터졌는데, 박수에 얹힌 그의 말없는 주장은 무엇이었을까?

“서양 중심의 세계 무대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적극 참여하자, 문화적 저력이 있는 우리가 곧 그 무대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양학의 위력적인 요소를 서양 중심의 세계 무대를 개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그는 그런 동양학적 요소가 세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동양학적 요소는 동양학적 무대를 통해서만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현실을 간과하지는 않았을까? 객체와 주체는 늘 상대적인 것이며, 현실에서 그 하나됨의 과정과 성격은 결국 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서양 중심의 세계무대는 이미 거대한 힘을 가진 객체로 존재하는데, 그 무대를 전제로 동양학적 요소를 갖춘 개인이라는 주체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객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필요한 세속만 철학화하고 불필요한 세속은 무시해버리는 철학적 음모거나, 현실성을 갖추지 못한 지적 유희일 뿐이다.

어쨌든 그는 분명 서양 중심의 세계 무대, 또는 개체 중심의 세계 무대라는 현실을 전제로 동양 문화의 저력을 받아들여 그 무대의 구성 요소들을 개혁하려는 철학적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그는 주체적인 동양학자가 아니라 동양을 탐구하는 서양학자지만, 동양적 요소로부터 가능성을 찾는다는 면에서 서양학의 속류 아전과는 격을 달리하는 셈이다.

동양학을 탐구하는 그의 이론적 바탕과 방법론도 철저하게 서양학의 산물이다. 아니 동양학에 대한 생각과 그의 애정이 또한 그것을 말해준다. 그는 서양학의 눈으로 동양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의 서문에서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국이 아니라 또 다른 외국으로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동양학은 스스로를 포함한 우리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배워야 하고 또 그럴 까닭이 있는 사상적 탐구의 대상일 따름이며, 그 탐구의 바탕이 되는 관점은 서양 문화가 이루어낸 서양학이다.

그렇지만 그는 동양학을 연구하는 매우 훌륭한 동양 출신 서양학자임에 틀림없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지적 이중성임과 아울러, 동양인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동양학에 담긴 본질을 덮어주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노자철학 이것이다’의 이끄는 글에서 그는 이런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자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묘사한 어떤 제자와의 사제관계에는 유가사상에도 없는 ‘전통유가적’ 명분, 노장사상에도 없는 ‘노장적’ 무책임과 독선, 불교사상에도 없는 ‘불교적’ 반성이 있는가 하면, 서양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공존과 타협이 뒤섞여 있다.

또 복직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뒤집혀 이용되기도 한다. 요컨대 그가 스승일 때 생각하는 것과 제자일 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리고 복직 자체는 사제관계에서 보여준 노장적 견해와 달리 명분론에 따르고 있다. 마치 부모에게 받을 땐 동양식이고 되갚을 땐 서양식인 이중성의 현실이 나름대로 투철하다는 동양철학자의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한복이 한편으론 슬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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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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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老子 말하면서 버터냄새 풍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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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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