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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국 최고 풍수학자 대담

“모래땅에 국회가 섰으니 국운이 모일까”

“모래땅에 국회가 섰으니 국운이 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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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 2002년 2월 10일
  • ●곳: 신동아 회의실
  • ●대담자: 최창조(풍수학자·전 서울대 교수) 김두규(풍수학자·우석대 교수)
  • ●사회: 이성희(시인·고교 교사)
  • ●진행: 안영배기자
이성희 :제가 오늘 이 좌담을 위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졸다가 깼다가 하면서 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깨어 있는 시간이나 조는 시간이나 그 단절을 꿰뚫고 산이 끝없이 기차와 함께 달려왔다는 느낌을 받고서는 새삼스럽게 감동했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산의 기운 속에 사는 우리가 산에 대한 심오한 사유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산 중 상당 부분이 잘려져 나가고 파헤쳐진 현장도 기차 창밖으로 목격했습니다. 오늘날은 모든 땅과 산이 교환가치로 취급되는 시대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본래 산이나 땅은 교환가치만으로 따질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잡아온 게 사실입니다.

워싱턴의 대추장(미국 대통령)이 땅을 팔라고 전갈을 보낸 것에 대해 시애틀의 인디언 추장이 언급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글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글이기 때문에 잠깐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선한 것들이다.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紅人)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21세기를 맞아 새삼스럽게 시애틀 추장의 연설을 되새겨보면서 과연 우리의 땅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명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볼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풍수 좌담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두 분 선생님이 모두 풍수의 대가이신데, 먼저 최선생님이 풍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어주시지요.

풍수는 땅의 질서와 사람의 논리

최창조: 풍수의 대가란 말씀은 듣기 거북하고 김두규교수님이나 저는 풍수를 상당 기간 공부해오고 있지만, 풍수에 대한 정의 자체가 확립돼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도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교과서적으로 말씀드리면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나온 말로,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지요. 이건 결국 기(氣)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기가 바람을 타면 흩어져버리고 물을 만나면 멈춘다고 하지요. 결국 기를 흩어지지 않게 하고 갈무리하는 터를 잡는 방법이 풍수의 교과서적인 정의입니다.

그러나 저는 풍수를 더욱 간단하게 생각해서 풍(風)이란 결국 풍토(風土) 즉 기후조건과 유사한 것이고, 수(水)는 말 그대로 물로 해석합니다. 기후조건과 물은 농업사회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지요. 따라서 풍수란 결국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고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따져보는 조상들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중국 풍수가 아닌 우리 고유의 자생(自生) 풍수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 요체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논리가 있듯이 땅은 땅대로 어떤 질서가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양자는 상생의 관계, 보완의 관계, 공생의 관계가 돼야 하는데 이성희 선생이 서두에 말씀하셨듯이 파괴, 이용, 소유, 투쟁 쪽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경우 땅의 질서와 인간의 논리를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 전통의 지리 지혜가 필요한데, 바로 이것이 풍수라는 거지요.

김두규: 최선생님이 말씀하신 자생풍수는 역사적으로 고려 때의 비보(裨補)풍수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역시 땅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는 것입니다. 땅마다 사람이 살 곳, 절이나 사원이 들어설 곳, 농경지로 적합한 곳 등 그 기운과 용도가 다른데, 피치 못해 사람이 살 곳이 아닌데도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경우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상징적 표시를 함으로써 땅을 고쳐 쓰는 것이 바로 비보풍수입니다. 즉 전 국토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으로 만들어보자는 ‘국토의 극락화’ 개념이지요.

이성희: 땅의 질서와 사람의 논리에서 부딪히는 상극(相剋) 문제를 상생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리 풍수, 즉 우리 지리학이라면 서구 지리학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최창조: 서구 지리학은 지표 현상, 예를 들어 인구 촌락 산업 특산물 산천 지세 등 눈에 보이는 것만을 다루지만 우리 지리학은 눈에 보이는 것(地理)에 더해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 기운, 즉 지기(地氣)까지 감안합니다. 그래서 ‘지리’ 앞에 ‘풍수’를 덧붙여 풍수지리라고 하지요.

이 지기가 도대체 무언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숙제로 남아 있긴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지기가 있다는 전제 하에 그것이 사람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생애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던 거지요.

서구지리학 식으로 눈에 보이는 지리만 다룰 경우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땅을 생명이 아닌 물질로 파악하기 때문에 당연히 소유와 이용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오늘날 땅과 인간의 부조화 문제는 바로 이런 실증주의적 지리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또 서구지리학은, 물론 실증주의 지리학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만, 약간 비꼬자면 ‘천상의 지리학’이라고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리학이라는 거죠.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으로 찍은 땅 모습을 보면 대세 판단을 하기 쉽고 그럴 듯하게 여겨집니다만, 생생한 현장은 철저히 무시돼 버리고 맙니다. 아주 구체적인 예로 우리나라 지리 계획가들 중 상당수가 자기가 계획을 짜고 있는 땅을 가보지도 않고 책상에서 그려버립니다. 우리 전통의 지리학이 현장에 들어가서 땅을 디뎌 그 기운을 느끼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실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이성희: 서구 지리학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땅을 추상화시키고 죽어 있는 껍데기로 보는 반면 우리 풍수지리는 지표 현상 외에 땅 속에도 끝없이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생명적인 기운이 있다고 보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겠군요.

최고 지도층이 명당 발복론 부추겨

그런데 땅속 기운 하면 역시 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일반 사람들은 풍수 하면 묘를 통한 발복(發福)의 개념에서 접근하기 쉽습니다. 이 묘지 풍수에 대해서 김두규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두규: 얼마전 모 언론사에서 주최한 6박7일의 풍수학교에 교사, 대학생, 문화운동 평론가 등 다양한 계층의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는데, 강의를 하면서 풍수는 묏자리 잡기라는 일방적인 편견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지 풍수 또한 풍수지리에 들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풍수란 사람이 사는 터를 정하는 것인데, 동양에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다 사람 문제에 포함시키거든요. 그래서 산 사람에게는 양택(陽宅)이 주어지고, 죽은 사람에게는 음택(陰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조 성종 이전까지는 사실 묘지 풍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돼요. 성종 때 최호원이라는 유학자 출신의 풍수학인이 있었는데, 황해도에서 일종의 풍토병이 발생하자 풍수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땅을 치료하는 비보풍수를 주창했어요. 그러나 이 주장은 유학 대신들에 의해 견제를 받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고려조 이래 내려온 비보풍수는 거의 사라졌다고 봅니다.

대신에 조선에서는 묘지풍수가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이는 조선 유림이 숭앙한 주자나 정자와 같은 성리학 대가들이 풍수지리를 개인적으로도 신봉했던 데다가, 유교의 효 개념을 죽은 자에까지 확대시킨 결과입니다. 즉 돌아가신 부모를 좋은 땅에 모시는 것도 효라는 거지요.

더욱이 조선조 왕가에서는 왕릉을 쓰기 위해 명당 발복을 받았다는 사대부의 능을 뺏기도 했어요. 이것은 사대부가 명당 발복을 받아 세력화하는 것을 막는다는 정권수호적 차원도 있었어요. 이런 행위는 옛 무덤에 묘를 다시 쓰지 않는다는 풍수지리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지만 조선 왕가에서는 감행했던 겁니다. 왕가가 그러니 그것을 지켜보는 사대부들도 덩달아 묘지 풍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지요. 즉 묘지 풍수는 조선의 왕가가 부추긴 겁니다.

이런 왕릉 풍수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전직 대통령들이 명당을 써서 발복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잖아요? 대통령이 그러니 그 밑의 정·관계 고위층도 재벌도 다 명당 발복을 추구하는 거구요.”

명당 쓰면 자손 잘된다는 동기감응론

이성희: 명당 발복은 그 근저에 동기감응(同氣感應), 즉 같은 핏줄인 조상과 자손 사이에는 기 감응을 일으킨다는 풍수 논리가 개입돼 있는 것 아닌가요? 동기감응에 대해서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창조: 풍수를 논하면서 가장 부딪치는 문제가 역시 기인데, 동기감응도 바로 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 메카니즘은 어떤 것인지 하는 면과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대담이 기 자체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풍수적 입장에서만 설명해보기로 하지요.

동기감응은 ‘친자(親子)감응’이라고도 합니다. 친은 부모를 가리키고 자는 자식을 가리키는데, 이 양자 사이에 기의 교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풍수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똑 떨어지게 설명하지 못하고, 두가지 비유를 들어 말합니다. 먼저 같은 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하나는 이쪽 창고에 넣어두고 하나는 저 너머 다른 창고에 넣어둬도 싹은 같이 튼다, 한 나무에서 난 나무들은 동기(同氣)니까 이렇게 서로 감응한다는 겁니다. 이 비유는 그러나 시원치 않은 설명인 것 같고, 가장 많이 쓰이는 비유는 당 현종의 구리종 얘기입니다.

당나라 현종이 지나가다 보니까 바람도 불지 않는데 구리종이 울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옆에 있던 동방삭에게 물었더니 “구리를 캐는 광산에 지진이 일어났을 겁니다” 하는 거예요. 현종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 여겼는데 며칠 후 그 지방에서 진짜로 지진이 났다는 보고가 올라왔어요. 현종이 놀라 동방삭에게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동방삭은 “쇠붙이까지도 같은 기를 가지면 감응함이 이와 같습니다. 하물며 사람과 귀신은 어떻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동기감응론에 대해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격렬하게 비난합니다. 만약에 죽은 부모와 산 자식 사이에 기의 주고받음이 있다면 살아 있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있어야 될 것 아니냐, 그런데 부모가 옥에 잡혀가서 온갖 악형을 다 당하고 있어도 옥 밖에 있는 자식한테 종기 하나 나는 꼴을 못 봤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거냐 하고 따지는 거죠. 사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비유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저는 동기감응론에 상당 정도 의지하면서 풍수를 시작한 것이 사실입니다만, 여하튼 과연 땅에 있는 기가 부모 유골에 영향을 주는가, 또 부모 유골이 땅의 기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기가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이 사실인가 하는 점은 동기감응의 핵심적인 문제일 겁니다. 이는 기를 연구하는 쪽이나 사람 인체를 연구하는 한의학 쪽에서의 학문적 연구 성과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김두규: 동기감응론을 친자감응 논리로 풀 때 경계할 부분이 있습니다. 소위 명당에 모시면 무차별적으로 후손들이 잘 된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빠질 수 있어요. 실제로 조선조에서는 묘를 쓰면서 남의 산소 빼앗기, 남의 땅에 몰래 쓰기, 묘 바꿔치기 등 무조건 명당을 쓰고 보자는 식의 폐단이 극심했습니다. 나라 전체의 소송중 70∼80%가 산송(山訟)이었다고 할 정도였죠. 문제는 그런 식으로 명당을 썼다고 해서 동기감응이 가능하겠느냐는 거죠. 풍수서적들을 보면 그런 기계론적 세계관을 상당히 부정하고 경계합니다.

이런 예를 하나 들어볼까 합니다. 얼마 전 구정을 맞아 차례를 지냈는데, 후손들은 조상 신위 앞에 향을 사르고 청주를 올려 혼백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젯상에 밥을 차려놓고 조상들이 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조상의 혼백이 와 밥을 먹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후손들은 그럴 것이라고 믿으면서 같은 생각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를 명당론으로 환원시켜보면 객관적으로 좋은 땅이 있다는 개념보다는 내(후손)가 보기에 편안한 땅, 이 정도면 조상도 편안하게 안식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땅이면 그것이 바로 명당이라는 겁니다. 반면에 싸움질하고 도둑질해서 얻은 땅에 과연 조상들이 묻힌다고 해서 편안해할 것인지, 즉 명당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동기감응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흐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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