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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떠나살기|작가 한승원의 장흥 앞바다에서 찍는 마침표

어둠 감지기능의 녹 벗기기

  • 한승원 소설가

어둠 감지기능의 녹 벗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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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승원에게는 시간이 있는가.’

이것은 나의 화두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완벽하게 갖춘 존재다. 과거 현재만 있고 미래가 없는 것들을 잔인하게 파괴해버리는 괴력을 가진 신(神)이고 순환의 우주다. 존재하는 것의 미래는, 그 존재가 현재를 열심히 분투하듯 살지 않으면 절대로 창조되지 않는 것이다. 미래가 창조된다는 것은 확실한 시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문득 ‘나, 한승원에게는 시간이 있는가’하고 자문하곤 한다. 파괴를 두려워하는, 그 이상의 참담한 화두는 있을 수 없다.

마음 비운 구름은 산꼭대기 바위틈을 돌아나오고(雲無心而出岫)

새는 날다가 지치면 돌아올 줄 안다(鳥倦飛而知還)

귀거래사의 이 대목을 나는 환장하게 좋아한다.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 토굴을 짓고 산 지 5년째다. 마을 어촌계에도 들고, 손바닥 만한 개인 바지락장도 마을로부터 얻고, 농협에도 가입했다. 미수(米壽)를 앞둔 어머니는 마을 노인회에 가입하고 아내는 부녀회에 들었다.

마당가에 상추 무 시금치 배추 오이를 심어 뜯어먹고, 율산 앞바다에서 나는 바지락 게 주꾸미 도미 숭어 파래 꼬시락 따위를 먹고 산다. 그러면서 앞바다와 모래밭과 갯벌과 거기 떠 고기잡이 하는 배들과 어부들과 섬과 하늘과 노을과 구름과 뒷산과 맑은 공기와 물떼새들과 황새들과 두루미들과 다람쥐들과 꿩과 산토끼들을 모두 사버렸다. 이곳 문화동호인들이 가끔 찾아와 돼지고기를 숯불에 구워먹으며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서울을 버리고 겨울새처럼 돌아오다

서울을 떠나온 것이 아니고, 서울을 버렸다. 자기 인구 1000만에다 위성도시 인구 1500만을 거느린 서울은 무서운 흡인력 소화력을 가진 괴물이 되었고, 달팽이처럼 물렁물렁한 식물성 체질인 내 속의 수분을 흡혈귀처럼 빨아먹고 그리고 소진시키려 들었다. 서울 떠나기 얼마 전에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추워 몸 웅크리고 떨던 겨울새 한 마리

푸르르 날아가다가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오랫동안

한 점 쉼표를 찍더니

검푸른 하늘 저쪽으로 한 점

마침표처럼 멀어져간다

그 한 점에서 나의 세상은 끝이 난다

아니 그 한 점에서 나의 세상은 다시 시작된다.

그 ‘겨울새’처럼 돌아왔다. 내 길의 마침표를 고향땅 안에서 찍기 위하여. 나는 은어 연어 따위 회유성 물고기들의 길(생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가령, 제주도 남방의 따뜻한 바다에서 겨울을 난 새우들은 봄을 따라 북상한다. 발해만까지. 그곳 갯벌에 알을 낳은 새우들은 일생을 마친다. 알에서 깬 새우 새끼는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따뜻한 바닷물을 찾아 남하한다. 인천 앞바다와 영광 앞바다 목포 앞바다를 거쳐 제주도 남방의 따뜻한 바다에 이르면 한반도는 겨울이 된다. 월동을 한 새우들은 이듬해 봄과 함께 북상하기 시작한다. 신통하게도 그 새우들은 지난 해에 죽은 어미가 간 물길을 그대로 타고 발해만까지 가서 알을 낳고는 일생을 마친다.

사람의 길도 그와 다르지 않다.

평생토록 소설을 써왔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표현하는 데에 좀더 알맞은 낱말,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하여 절망하고 또 절망하면서. 세상의 모든 길이 열려 있는 것은, 그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걸어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뜻을 가진 사람은 열려 있는 길을 다 걸어간 다음에는 혼자만의 길 없는 길 위로 들어서야 한다. 그 길은 그 길을 밟아가는 자들을 절망하게 한다. 절망이 없으면 자기만의 길도 없다.

이때껏 바다에 대한 소설만 써왔으면서 아직도 그 고향 바다에 신물이 나지 않아서 또 서울을 버리고 그 고향 바닷가로 내려와서 살고 있느냐고 빈정거린 친지가 있다. 어쨌거나, 나 스스로 고향 바다를 포획하려고 달려왔든지 고향 바다가 나를 끌어당겨서 끌려 내려왔든지 호수 같은 고향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흥의 율산 마을에 와서 살고 있다.

파도가 들려주는 ‘고독 참을성(忍辱) 고독 참을성(下心)’

내가 태어난 장흥군 회진면 신덕리(얼마 전에 마을 사람들은 신상리를 이렇게 개명했다)의 연안바다와 지금 살고 있는 안양면 율산의 연안바다는 맞닿아 있다. 고향바다에 대하여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 고향 바다에 대한 공부를 새로이 하고 있다. 그 바다가 어찌 가시적인 것뿐이랴. 비가시적인 바다가 또 있다. 화엄의 바다, 우주라는 바다, 내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바다, 어머니와 아내와 이웃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 있는 바다, 검은 댕기 두루미 속에 들어 있는 바다, 슬픈 가난과 박해 속에 살다가 저승에 가 있는 사람들의 바다.

밥을 먹고 나서 차를 마시면서,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나와서, 혹은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서 응접실 유리창가에 유령처럼 우두커니 서거나 반가부좌를 한 채 그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아침 저녁으로 바닷가 모래밭을 산책한다. 장화를 신고 갯벌밭을 밟고 다니기도 한다. 그 바다는 늘 한결같은 자세로 내 앞에 드러누운 채 나를 맞이한다. 그 바다는 늘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사유하고 나에게 많은 기막힌 것들을 귀띔해 준다. 물새들을 통해서 갯강구와 짱둥이와 송장게와 주꾸미와 부지런한 어부들을 통해서. 바다의 말, 그것은 ‘길(道)’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부터인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나가곤 한다. 먼바다에서 달려온 파도가 모래밭에서 재주를 넘으면서 소리친다. 철프럭 철프럭 쏴아 쏴아. 자세히 들어보면 ‘고독 참을성(忍辱) 고독 참을성(下心)’이라고 말하는 듯싶다. 자기 고독에 이긴 자는 진짜 금강석이 되고, 고독에 지고 그것에 질질 끌려다니는 자는 싸구려 인조 보석이 된다.

그 하늘 위 그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혼자 우뚝 서 있을 뿐이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내 운명의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아갈 사람 나말고 또 누구랴 (絶對孤獨).

그 파도가 소리쳐댄 ‘인간의 절대고독 이야기’가 하루 내내 내 귀청을 스쳐간 케니 지와 파바로티와 셀린느 디옹과 장사익과 이런 저런 고전음악들을 씻어준다. 터무니 없는 욕심과, 혼자 먹고 마시고 자는 주독과 고독을 씻어주고, 살비늘처럼 부스러져 떨어지고 있는 나태와 쌓여 있는 슬픔과 짜증과 삶의 지리멸렬한 싫증도 씻어준다. 서재에 앉아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동안 내내 의식의 갈피갈피에 끼어 있던 전자파 같은 전율까지도.

물새들이 저희끼리 ‘비요 비요오’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갈색 송장게들이 내 발 소리에 놀라 달아난다. 갯강구들이 더듬이를 휘저어 내 눈치를 살피며 몰려간다. 갯메꽃이 나를 향해 자줏빛 얼굴을 쳐들고 있다가 바람결을 따라 고갯짓을 하며 웃는다. 깔까르르르. 참으로 앙증스러우면서도 색정적인 웃음. 섬 저쪽에 뭉게 구름들이 피어오른다. 구름장들 사이에 노을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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