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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초점|‘거짓말’ 소동의 진원지 영상물등급위원회

사람은 그나물에 그밥 판정은 코걸이 귀고리

  • 조종국 씨네21 기자

사람은 그나물에 그밥 판정은 코걸이 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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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물등급분류 기준에는 ‘미풍양속’ ‘사회질서’ ‘국민의 일반정서’ ‘건전한 정서’ 등 마음대로 갖다 걸 수 있는 코걸이와 귀고리가 수두룩하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시대적 조류에 걸맞은 분류기준조차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본질은 이처럼 명문화된 규정이나 기준보다 이를 운용하는 등급분류를 담당하는 위원들, 즉 사람의 문제로 이어진다.》
해를 넘겨 극장에서 겨우 개봉은 했지만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영화 ‘거짓말’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음대협)가 ‘거짓말’을 고발했고, 검찰은 최근 ‘거짓말’ 제작사인 신씨네 신철 대표와 장선우 감독을 소환해 조사를 했다.

영화 한 편을 놓고 고발과 검찰조사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이고 유아적인 문화의식의 단면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나 영화 ‘거짓말’의 원작인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현세씨의 만화 ‘천국의 신화’ 등 창작물에 대한 음란성 시비가 있을 때마다 수용 방식에 대한 논의가 불같이 달아올랐다가 이내 사그라지던 ‘냄비 현상’이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이번 소동으로 어떤 쟁점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절차와 방법에 대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제기됐고, 어떤 식으로든 ‘수습’하는 일이 당장의 과제다.

2월10일 흥사단 강당에서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영화인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언론운동시민연합 등 1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거짓말’ 관련 합동토론회를 열어 서로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애를 쓴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영화 ‘거짓말’은 기본적으로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영화 내적인 평가에서부터 등급분류제도, 성 표현 수위, 관객과 만나는 방식 등 사회적으로 쉽게 합의를 이루고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복잡다단한 것은 물론 가치관과 정서의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과 조율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는 총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향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오리지널 버전 거짓말’의 일반극장 상영을 허용하라는 주장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이처럼 영화 ‘거짓말’을 둘러싼 파문을 정돈하는 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폭을 좁혀 ‘거짓말’ 소동에 불을 붙인 영상물등급위원회(등급위)와 현행 등급분류제도가 안고 있는 ‘가연성’에 대해 살펴본다.

공진협에서 등급위까지, 달라진 게 없다

등급위는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관람등급을 정하는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다. 지난해 1월 개정된 영화진흥법과 공연법에 따라 99년 6월부터 각종 영상물의 심의를 담당하던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등급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97년 10월 검열기구로 악명 높던 공연윤리위원회(공륜)가 공진협으로 개편된 지 1년 6개월 남짓 지나 다시 개편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공륜이 공진협으로 바뀐 것과 공진협이 등급위로 바뀐 데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공진협은 공륜의 심의가 사실상 검열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공륜의 설치근거가 원인무효되면서 ‘마지 못해’ 생긴 기구다.

하지만 등급위는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실현한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부와 여당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등급분류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향적인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지에 따라 법까지 바꿔 만든 기구다. 물론 등급외전용관을 허용해서 명실상부한 완전등급제를 구현하겠다던 계획은 무산했지만 규제적 성격을 최소화하고 등급제를 통해 영화진흥의 바탕을 닦는다는 것이 법 개정 취지였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심의제도는, 정부와 여당의 의지와는 달리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전면 보장’하는 완전한 의미의 등급분류제를 구현하기까지 할 일이 많다. 등급분류기준의 재정비도 절실하고, 분류기준을 합리적으로 적용해 사회적인 동의를 얻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공륜 검열로 고통받은 당사자인 김수용 감독이 등급위 위원장을 맡아 개혁의지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지만 꼬이고 꼬인 문제의 해법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먼저, 공진협과 비교해 등급위의 등급분류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공진협 시절에는 영화와 비디오의 등급분류 기준을 따로 두었으나 등급위에서는 하나로 통합해 ‘영화·비디오물 수입추천 및 등급분류 기준’을 만들었다는 점이 다르다. 같은 간혹 작품이지만 영화와 비디오라는 매체에 따라 다른 등급을 매기던 모순을 예방한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등급분류 기준이나 현행 등급제에서는 사실상 상영금지 조처에 해당하는 등급보류 기준이 달라진 게 없다. ‘국가 또는 국기를 경건하게 취급하지 아니하거나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것’ 등 몇 조항을 삭제한 것에 그쳤고, 여전히 ‘…지나치게 묘사한 것’ ‘…우려가 있는 것’ 따위 주관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할 여지가 많은 추상적인 문구 일색이다.

특히 ‘미풍양속’ ‘사회질서’ ‘국민의 일반정서’ ‘건전한 정서’등 마음대로 갖다 걸 수 있는 코걸이와 귀고리가 수두룩하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시대적 조류에 걸맞은 분류기준조차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질은 결국 명문화된 규정이나 기준보다 이를 운용하는 등급분류를 담당하는 위원들, 즉 사람의 문제로 이어진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사람

등급위는 위원회 운영과 관련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위원회 위원’과 실제 등급분류 심의를 담당하는 ‘소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 위원은 소위원회에서 등급보류 판정을 내렸을 경우 상급심의기구 구실도 한다.

문제는 일상적으로 영화에 대한 등급분류를 담당하는 소위원회가, 법 개정 취지를 살리고 창작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물론 관객들의 볼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이나 개혁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직업 심의꾼’까지 들어 있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특히 공륜 때 심의위원이던 사람이, 공륜심의가 사실상의 검열로 위헌 판결을 받아 개편된 공진협이나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와 관객들의 볼 권리를 신장하겠다고 개편한 등급위의 소위원회 위원을 여전히 맡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존립 근거가 달라졌다면 등급심의를 담당하는 사람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영화 등급을 분류하는 일이 개인의 정서나 주관에 적잖이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는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그런데 등급위 소위에는 공륜과 공진협을 거쳐 등급위에 이르기까지 자리를 지킨 ‘장수 위원’이 영화·비디오쪽만 무려 7명이나 있다. 조희문(공륜-영화본심의/공진협-영화등급), 영화수입추천위원 이경순(공륜-비디오본심의/공진협-영화등급), 비디오수입추천위원 신찬균(공륜·공진협-비디오수입), 영화예심위원 장영오(공륜·공진협-영화예심), 영화예심위원 조문진(공륜-영화본심의/공진협-영화수입), 비디오예심위원 강용선(공륜·공진협-비디오본심의), 비디오예심위원 김화(공륜-비디오본심의/공진협-비디오 청소년심의) 등이 그들이다. 업무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직업처럼 일해야 하는 상임예심위원에 이들이 몰려 있는 것은 딴 뜻이 있다는 의혹을 사고도 남는다.

이 밖에 공륜과 공진협에서 영화 비디오 게임 광고 등 매체를 옮겨다니며 자리를 지킨 위원이 있는 거나, 공륜과 공진협 때 심의위원을 지냈고 등급외전용관 허용반대 등 심의규정 적용 때마다 보수적 견해를 밝혀온 조희문씨가 지원과 진흥업무를 주관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자격으로 규제라는 성격이 강한 등급위 등급분류위원까지 겸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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