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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분석

썰렁한 개그, 이상한 유머가 유행하는 이유

신세대 유머코드 지배자 3인이 말하는 요즘 개그

  • 하태원 scooop@donga.com

썰렁한 개그, 이상한 유머가 유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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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를 가지고 삼행시를 만들라고 한다면? 신세대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멧: 멧돼지야~ 돼: 돼지가 너보고 뚱뚱하데~ 지: 지느은~. 아기곰 푸우는 이행시로 어떻게 탄생할까? 푸: 푸우야 넌 커서 뭐가 될래? 우: 우루~사. 우동은? 우: 우―우~ 동: (선)동렬이도 없고, (이)종범이도 가고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룡 감독의 어투로 말해야 실감이 난다).

아마도 외계인을 가지고 신세대가 짓는 삼행시를 들으면 나이가 지긋한 중년 세대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외: 외계인이 내려온다 계: 계속 내려온다 인: 인제 올라간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삼행시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정답도 없어서 아무렇게나 지으면 다 정답이 된다. 왜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런 것 묻지 말라고 한다. 그냥 재미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방송가와 PC통신을 주름잡고 있는 이런 웃음은 N세대들에게는 더없이 유쾌하고 신바람나는 현상일지 몰라도 기성세대가 보면 이상하고 썰렁하다. 피카추는 피: 피카추가 침을 뱉는다 카: 카~ 추: 추~로 삼행시가 된다. 한때 ‘사오정 시리즈’로 한껏 사랑받던 ‘사오정’은 더욱 가관이다. 사: 어? 오: 어? 정: 어? (날아라 슈퍼보드란 프로그램에서 사오정은 가는귀가 먹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제 갓 서른을 넘겼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사실은 이런 신세대 유머에 친숙하지 않다. 남들이 웃을 때 웃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일는 지 몰라도 후배들이 재미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은근히 짜증스럽기도 하다. 과연 신세대의 ‘유머코드’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품고 최고의 시트콤인 ‘순풍산부인과’의 PD, 이홍렬쇼 김혜수플러스유 등의 토크쇼 담당 작가, 그리고 ‘개그콘서트’의 ‘폭소탄’ 백재현씨를 만났다. 신세대를 사로잡고 있는 웃음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다.

밤(夜)의 말(語)을 지배하는 사람

작가 김일중씨(32)는 심야 방송시간을 4년여간 지배해온 사람이다. 91년 SBS 작가 공채 1기로 입사해 ‘코미디 전망대’ ‘웃으며 삽시다’ 등에서 코미디 작가로 활동하다가 96년 2월부터 ‘이홍렬쇼’의 작가를 맡은 뒤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심야 토크쇼 대본을 쓰고 있다. 현재도 ‘이홍렬쇼’는 물론 SBS의 ‘김혜수 플러스유’ ‘남희석―이휘재의 멋진 만남’의 작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심야 연예인 토크쇼는 작가 김일중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방송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김일중씨는 자신이 토크쇼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토크쇼에 작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확신을 가진 뒤라고 말한다. 토크쇼는 호스트가 질문하고 게스트가 답하는 단순한 형태로 운영되는 듯하지만 그 속에 아주 중요한 작가의 영역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 김씨는 “최근 토크쇼는 호스트와 게스트의 순발력 있는 대화에서만 웃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와 게스트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미리 완벽한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경향이 강하다”며 “작가는 바로 토크쇼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출연자들에게 안전장치를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즉 프로그램 중간에 차트를 만들어 활용한다거나 녹화가 끝난 뒤 화면 사이사이 재미있는 자막 등을 삽입해 웃음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김일중씨는 섭외한 출연진을 사전에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한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면모는 물론 그 출연진의 눈짓 손짓 발짓 등 세세한 정보를 모두 입력한 뒤 출연자의 매력과 유머감각이 한껏 발휘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요즘 토크쇼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과거 토크쇼가 고달픈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어렵던 시절에 대한 회고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요즈음 토크쇼는 명랑한 분위기, 재치있는 대답 등 부담없고 유쾌한 이야기를 추구합니다. 이홍렬쇼가 대표적인 예인데 절대로 출연한 연예인의 과거사나 골치아픈 이야기를 묻지 않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런 원칙을 세우게 된 배경이 있나요?

“이홍렬쇼나 김혜수 플러스유는 심야에 방영되는 연예인 토크쇼입니다. 하루종일 생활에 찌들고 진지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밤늦게 텔레비전 을 보면서 또다시 무거운 얘기를 듣고 싶겠어요? 들을 때 즐거우면 됐지 몇 번이고 곱씹으며 고민해야 하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김씨는 심야토크쇼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산성 ‘0점’인 프로그램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잠자기 한 시간 전에 푹 쉬면서 ‘리프레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머의 ‘버전 업’

―요즘 신세대의 유머코드는 어떤 것입니까?

“젊은 사람들은 기발한 순발력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 웃음거리를 준비해오는 사람보다는 선천적인 감각을 가진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개그맨 남희석이나 가수 주영훈, 탤런트 최화정 김원희 같은 사람들이 그런 기발한 순발력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4년간 토크쇼 작가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롱런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요즈음 웃음은 공감의 유머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의식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반전이나 풍자만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홍렬쇼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맞아맞아 베스트5’는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툭 꺼내주면 시청자들이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천재가 만든 웃음이 아니라 일반인도 만들어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이라는 것이지요. 관객이 자지러지지는 않아도 무릎을 탁 치며 ‘맞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유머지요.”

유부남들의 성(性)에 대한 거침없는 대화를 무기로 색다른 웃음을 주고 있는 ‘유부클럽’도 공감의 웃음을 추구한다. 김씨는 이런 현상은 웃음과 안도감 그리고 공조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내가 느끼는 것을 저 사람도 느끼고 있구나 하고 확인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라는 것. 특히 연예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공조의식을 느끼며 기뻐한다는 분석이다.

김씨는 10년 전 유머와 현재 유머가 갖는 차이점은 가공된 웃음이냐 가공되지 않은 웃음이냐라고 설명했다. 즉 ‘회장님 회장님’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유머가 철저하게 분석되고 다듬어진 가공된 유머였다면 요즘은 있는 그대로 툭 던져 보이는 형식이라는 것. 과거에는 내가 갖지 못한 남의 능력을 보면서 즐거워했지만 이제는 자기와 동질성을 확인하며 웃는다는 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 신세대의 웃음샘을 쥐락펴락하는 경지에 오른 김씨지만 그도 학창 시절에는 “참새시리즈 같은 것은 누가 만들지?” 하는 의문 을 가지며 코미디 작가를 동경했다. 김씨는 “코미디 작가는 남을 웃길 줄 아는 재주보다는 어떤 소재가 웃기는가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터넷이나 PC통신, 광고 등이 유머에 ‘모티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유머의 1차 생산자로서 다소 부담을 덜었다. 단적인 예로 토크쇼의 사회자나 개그맨들의 경우 과거 같으면 “제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며 시작했을 것을 요즈음은 “요즘 유행하는 △△ 이야기 아시지요?”라며 화두(話頭)를 던진다는 말이다. 어디서인지는 모르지만 생산된 원자재로 맛있게 밥을 지으면 되는 것이 요즈음 토크쇼의 호스트고 작가고 개그맨이라는 것.

―요즘 각광받는 개그를 유형화할 수 있을까요?

“보는 이에 따라서는 말장난이라고도 하고 뛰어난 순발력이라고도 하지만 남희석류(類)처럼 말의 어감이나 단어에 함축된 의미(connotation) 를 기발하게 활용하는 개그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3행시나 5행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요?

“3행시나 5행시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신세대 감각과는 동떨어진 것입니다.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으면 안 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 모릅니다. ‘참치’로 2행시를 지어보라고 하면 ‘참:차아아암, 치:치이이’라고 하는 것이 신세대입니다. 권위주의적인 것을 부정하고 기존 생각을 일격에 뒤집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지요.”

김일중씨는 요즈음 유머는 누구나 참여해 변종을 만들어내면서 그 행위 자체에서 웃음을 느끼는 것이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컴퓨터 로 치면 기존 프로그램에 조금씩 변화를 가해 만드는 ‘버전업’ 또는 ‘업그레이드’의 개념. 웃는 사람도 이해하기가 쉽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해석하는데 쟤는 저렇게 해석하네” 하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 결국 작가나 개그맨 등은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지 못하는 다수를 위해 버전업하고 확대 재생산을 할 수 있는 호환 가능한 ‘웃음의 틀’을 공급하면 된다. 그 이후에는 사람들이 알아서 지지고 볶으면서 즐거워한다.

엄숙주의와 신세대 유머

김일중씨 같은 작가가 유머를 생산하는 제조자라면 개그맨 백재현씨(30)는 최일선에서 웃음폭탄을 쏘아대는 ‘대포’다. 김일중씨는 백재현씨에 대해 “동일한 상황을 유머스럽게 표현하는 경우 가장 응용력이 높은 개그맨”이라고 치켜세운 뒤 시청자가 어떤 개그를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부처님 오신 날인 5월11일 오후 5시 KBS 별관 IBC홀에서 백재현씨를 만났다. 대학로 콘서트의 분위기를 개그적 요소로 승화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떠오른 개그콘서트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아이디어 뱅크인 그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KBS2 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인기프로그램인 레슬링 체험 녹화를 막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백씨는 개그콘서트의 성공비결에 대해 “신세대 입맛에 맞는 새로운 패턴의 개그를 순발력 있게 보여준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포영화를 패러디한 ‘스크림’ 코너의 경우 ‘영어를 쓰면 죽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정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팬티, 엄마한테 같다 줘” (펜티엄과 동음)라고 말하면 죽는 것이다.

‘△△하면 죽는다’는 규칙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스포츠 스타의 이름을 말하면 죽는다는 규칙이 있으면 “어이 김서장, 훈제 족발 먹으러 갈까”(서장훈) 하면 죽는다. 연예인 이름을 말하지 말라는 규칙 앞에선 “이번에 내친 김에 수원까지 가보자”(김혜수와 비슷한 발음)로 죽는다.

어찌 보면 일종의 ‘언어유희’다. 요즘 기준으로 하면 가장 야한 농담은 ‘야하지롱’이고 가장 야한 노래는 ‘야한가요’다. 이런 방식으로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개그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개그콘서트 인터넷 홈페이지의 시청자 참여 코너인 ‘도전! 나도 개그작가’에는 5000여 건의 글이 올라와 자기 나름의 유머를 선뵈고 있다.

백재현씨는 “과거에 유행하던 콩트 중심 개그는 사라진 지 오래”라며 “이제는 유형 싸움”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런 면에서 개그콘서트는 ‘시튜에이션 개그’라는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내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 단적인 예를 들자면 껌을 씹는 장면으로 웃음을 창출할 경우 과거에는 껌을 우스꽝스럽게 씹어 폭소를 자아냈다면 요즘은 껌을 씹다가 발생하는 상황을 통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백재현씨는 요즘 ‘썰렁한 개그’ ‘이상한 유머’가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서 골치아픈 분석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지나친 ‘엄숙주의’ 라고 말했다. 3행시를 듣고, 지어내며 웃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자체를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그것이 가진 사회적인 의미를 분석하고 기호학적 문제점을 들춰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 굳이 말하자면 일상생활이 톱니바퀴 물리듯 빈틈없이 돌아가다 보니 일탈해보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가 말로 발현된다는 것이 백재현의 분석이다.

―개그 콘서트가 추구하는 웃음은 어떤 것입니까?

“개그콘서트는 건전한 웃음을 주고 교육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나와 한풀이를 하는 코너에서 지렁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왜 암수가 한몸으로 태어나 화장실에 갈 때 불편한 거야라고. 우리 프로그램을 보는 학생들은 은연중에 환형동물은 자웅동체 라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역사는 꼬인다’ 같은 코너도 기초적인 역사 지식이 없으면 웃을 수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가령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그 내용을 이해 못 하면 형이나 언니에게 물어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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