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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매미

  • 강은교 現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이규보의 매미

《…어떤 매미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기에 내가 듣다 못하여 매미를 날아가도록 풀어주었다. 그때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나를 나무라면서, “거미나 매미는 다 같이 하찮은 미물들일세. 거미가 그대에게 무슨 해를 끼쳤으며 매미는 또 그대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기에 매미를 살려주어 거미를 굶겨 죽이려 드는가? 살아 간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먹이를 빼앗긴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니, 그렇다면 매미를 놓아보낸 일을 두고 누가 자네를 어질다고 여기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의 이러한 의심을 풀어주기 위하여, “거미란 놈의 성질은 본래부터 욕심이 많고 매미란 놈은 욕심이 적고 자질이 깨끗하네. 항상 배가 부르기만을 바라는 거미의 욕구는 만족하기 어렵지만 이슬만 마시고도 만족하는 저 매미를 두고 욕심이 있다 할 수 있을까? 저 탐욕스러운 거미가 이러한 매미를 위협하는 것을 나는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에 매미를 구해 주었을 뿐이네” 하였다….》 (이규보 ‘매미를 살려준 부’ 중에서)

이규보의 산문이다. 매미를 살려주고, 그러기 위해 거미를 죽인다는 내용이다. 글쎄, 글 속에 등장하는 누구인가의 질문처럼, 누가 욕심이 더 진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매미를 살리기 위해서 거미를 죽여야 하는가, 아니면 거미를 살리기 위해서 매미를 죽는 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어느 것이 욕심이 더 많은 행위인가.

이규보는 ‘자신있게’ 말한다. 매미가 깨끗하다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다른 과학적 진술은 그만두고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만 의거해 본다고 하여도 매미는 놀고먹는 자의 대명사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잡초도 나에게 늘 이런 의문을 던지는 것들 중에 하나다. 저렇게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보호받고 있는 꽃나무 밑에서 언제 뽑힐지 몰라 눈치를 보며 그러면서도 열심히 자라는, 이 순간이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열심히 자라버리는 잡초를 나는 죽여야 할 것인가. 어떤 이가 말했듯이, 잡초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나는 잡초를 두둔하는 글을 분노와 배신에 차서 쓴 적이 있음이 생각난다. 아마도 굉장히 정성을 쏟은 산다화가 죽어버린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잡초를 좋아한다. 잡초들이 가진 그 생명력에 경외심마저 표한다.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데도 살아나는 그 생명력, 그것은 아마도 곱게 키우는 것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식물에의 사랑은 잡초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받았던 질문 하나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다. 어떤 꽃을 키우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꽃이 아니라 풀을 키우겠다고 했다. 풀도 이름 있는 풀이 아닌 잡초들을.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화분에 뾰족이 일어서 있는 잡초를 비틀어 뽑고 있으니. 그러면 최근에 쓴 나의 시 한 편과 시작노트를 다시 한 번 읽어볼까.

화분에 물을 주다가 구석에 삐죽 솟아있는 잡초를 뽑습니다.

안 뽑히는 것을 억지로 비틀어 뽑습니다.

순간, 아야야― 하는 잡초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아 이걸 어째?

내 손에 피가 묻었습니다

아 이걸 어째?

(‘아 이걸 어째?’ 전문)

◆시작노트

매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는 것으로 나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꽃의 살아있음은 나의 살아있음에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자극을 고맙게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러한 나의 일상의 한 장면을 아무런 가감 없이 거의 그대로 표현하느라고 한 것입니다.

물을 주면서 나는 그 좁은 화분 구석에 입술을 대고 자라 있는 잡초를 뽑아줍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잡초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수사적인 시인의 표현도 아닙니다. 나는 분명 들었습니다. 비명과 신음이 그 작은 몸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어쩌지요? 시를 쓸 수밖에.

그렇다. 이 글 그대로다. 나는 잡초의 비명을 거의 매일 듣는다. 오늘 아침에도 풍란 화분을 덮은 이끼 속에서 너무 잘 자라고 있는 잡초 하나를 뽑아버렸다. 나는 어김없이 그것의 슬픈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화분 구석에 열심히 자라고 있는 그것의 목소리를.

사실 우리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것이 잡초이며 어떤 것이 잡초가 아닌지를. 그보다 잡초의 그 질긴 생명력을 어떤 꽃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은 아름다운 꽃만으로 커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잡초들도 커다란 몫을 하는 것일 것이다. 하긴 어디 잡초뿐이랴. 우리가 억누르고 있는 것들은”.

아무튼 나는 요즘 잡초만 잔뜩 일어서 있는 화분에 열심히 매일 물을 주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아는 교수가 외국으로 가면서 나에게 화분 한 개를 맡겼는데, 그만 주인공 꽃이 죽어버렸다. 그리고는 잡초만 눈앞을 가렸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 꽃을 뽑아버리고, 잡초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 못살겠다는 것은 죽어버려라, 살겠다는 것만 살아라!’하면서…. 그랬는데 어제 보니 파란 싹이 그 화분에선 일어서고 있었다. 아마도 잡초의 파란 싹이.

나는 흠칫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그대신 물을 주고 햇빛 앞으로 잘 갖다가 놓았다. 그리고 나는 잡초에게 중얼거렸다. ‘그래 여긴 너의 땅이니 마음놓고 일어서거라. 걱정 말고 일어서!’라고.

모두에 제시한 글의 끝 부분에서 이규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매미 몸에 뒤얽힌 거미줄을 풀어주면서 간곡한 말로 당부하였다.

“우선 울창한 숲을 찾아서 가거라. 그리고 깨끗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되 자주 나다니지 말아라. 탐욕스러운 거미들이 너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네. 그렇다고 같은 곳에서만 너무 오래 있지는 말아야 한다. 버마재비란 놈이 뒤에서 너를 노리고 있으니 말이네. 너는 너의 거취를 조심한 다음이라야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걸세.”》

나도 잡초에게 이어서 말한다.

“그런 다음, 여기가 울창한 너의 숲이 되게 하여라.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열심히 너의 몸을 살찌우거라. 욕심과 집착에 찬 손, 혹은 이 좁은 화분 속의 흙이 언제 너를 버릴지 모르니….”冬

신동아 2000년 6월 호

강은교 現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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