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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떠나살기

‘두메 앉은뱅이’로 사는 자유로움 갯메라고 부르는 사연

인제대 김열규 교수의 갯메마을 귀향

‘두메 앉은뱅이’로 사는 자유로움 갯메라고 부르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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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메라고 부르는 사연

여기는 경상남도 고성(固城)군 하일(下一)면 송천(松川)리. 철옹성으로 굳은 고을 안의 천하 제일의 면, 하고도 송내 마을. 고성읍에서근 백리, 큰 재를 셋씩이나 넘은 끝장에 웅크린 바닷가 의 두메 마을이다.그야말로 ‘반해 반산(半海 半山)‘, 이를테면 반 은산의 품에 안기고 반은 바다에 다리 뻗고 있는 형국이라서 나는 즐겨, 우리 동네를 ‘갯메 마을‘이라고 부른다.말할것도 없이 개는 바닷가고 메는 산이다.

서와북으로는줄줄이 태산 준령이 옹벽을 치고 섰다.동과 남은 한반도의 남녘 막바지, 한려수도의 물을 내다보고는 마을이 터를 잡 고 있다.훤히 트일 법도 한 바다 안에 서로 비집듯 섬들이 들어차 있으니, 지세(地勢)에 어두운 남들은 여기 웬 호수냐고 너스레를 떨 기 십상이다.

그중에서도비교적 둥치가 큰 솔섬과 그 어깨를 짚고 조금 뒤로 물 러선자란이는 풍수설로는 안산(案山)이 스스로 철을 알아서 피면, 아! 이 정복(淨福)을 다 어쩌랴!

진산(鎭山)은가로되, 좌이산이다.한자로는 도울 ‘佐‘에 귀 ‘耳‘ 를 겹쳐서 ‘좌이‘라고 쓰는 것이 사뭇 절묘하다.귀를 도움은 듣기 를돕는 것, 해서 노상 쫑긋거리고 삼삼히 열린 귀가 여기 있으니, 이로써산과 마을과 그리고 사람들이 두루 다 이순(耳順)의 마음을 누린다.

어찌구태여 사람 소리 만이랴?바람소리, 물소리, 솔 소리, 새소 리그리고 그것들이 슬그머니 얼리고 얼려서 먼 물마루에서 설레다 가 마침내 밤 하늘에서 여리게 울림하는 소리의 속내를 다 알아들을 법한 귀를 진산으로 누리다니!

온마을 안이래야 열두집이 고작, 야밤중, 잠결에 누군가가 기침을 해도그게 누구네의 누구인지 이내 알아차려지는 것은 좌이산 덕분 이다.

두메 앉은뱅이

옛말에‘두메 앉은뱅이‘란 게 있다.굳이 앉은뱅이가 아니라도 두 메에 묻혀 살다보면 세상 물정 모르기가 세상 나들이 않는 앉은뱅이 와 다를 게 없는 법.해서 나는 두메앉은뱅이를 자처하니 시간이며 절기의 변화를 굳이 시계로 재고 일력(日曆)으로 헤아릴 것이 없다.

자란이 왼쪽, 물마루에 치우쳐서 해가 솟으면 봄이다.그러다가 어 느 겨를엔가 오른 쪽으로 훨씬 기울어 솟을라치면 이젠 영락없는 겨 울.사철이 그렇게 날고 들고 한다.

하긴 해돋이 방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철갈이 할 적마다 조금식 달 라지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여기로 옮겨와서의 일, 그런 식으 로 나는 차츰차츰 자연의 청맹과니 노릇을 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철은 그렇게 지각된 것인데, 그렇담 시간은?

겨울한 철 빼고는, 호랑지빠귀가 불어대는 귀신 휘파람 소리의 여 운이낮게 깔리면 동트기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그러다가 새매의 날선울음이 귀창을 찢고 들면 정작으로 새벽이다.휘파람새의 연 가(戀歌)가 요사를 떨면 늦은 아침일 테고 파랑새가 창공 드높이 비 단깁을 찢어대면 한낮이려니 하다가도 물총새가 키들대면 이내 해 가질 것이다.여름이면 때맞추어서 반디가 개울 안에 불을 켤 것 이다.

하지만 지척에 바다가 훤히 트인 마을이라 물때를 더 요긴하게 쳐야 한다.

가룡(佳龍)곶머리,개구리 바위섬과 그 너머 마당여로 해서 물의 드나듦이 편하게 눈에 잡힌다.개구리가 등만 남기고 겨우 물에 뜨 면,‘큰 솟음‘이란 뜻의 대기(大起), 곧 한사리다.그러다가 길따 란마당여마저 몸체를 죄 드러내면 조금이다.이렇게 물에 밀리고 쓰리고 하면서 나의 시간은 오고 간다.

그런데도이른 새벽 게으른 잠으로 이부자리 속에서 미적되고 있을 라 치면, 사리 물산이 낮은 으르릉댐으로 방안에까지 밀려든다.

‘우르륵 쏴! 우르륵 쏴!‘

이렇게 바다는 나만의 커다란 자명종 아닌 ‘자명조(自鳴潮)‘다.

아홉해 전, 비로소 고향이라고 찾아든 나에게일가 아주머니 한 분 이탄식을 했다.”자네가 그 아무갠가?꼭 문어새끼만 해서 떠났 는데 이제 머리가 허얘져서야 돌아왔구나!”

그 한 마디의 묘미에 나는 순간 넋을 잃었다.

”젖먹이를겨우면할 만한 꼬마면, 맞아 정말 문어새끼 같았을 거 다”

바닷가 사람들이고서야 비로소 사용할 만한 절묘한 비유법.

문어새끼에 견주어져 마땅했을 어린것이 서리를 머리에 이고 돌아왔 다.

그백발의문어가 물때 따라서 거동하고 말고를 정하는 것은 정한 이치, 이래서 자란만 물안이 온통 나의 물시계가 된다.

새끼 문어의 귀향

숭어떼는물때를 알아서 알 낳을 곳으로 찾아든다.만조 물살이 물골을일구면그걸 따라서 그들은 뭍으로 난 개울을 향해 밀려든 다. 바로 지척, 어둠에서 듣게 되는 그들의 동정은 정말이지 삽상 하다. 물살이 세게 밀리는 소리에 열려서 요동치는 고기떼의 기척 이라니, 한 순간 온 개펄이 발버둥칠 것 같은 기세다.

그렇듯,문어새끼이던 나도 물때 맞추어서 더 늦기 전에 고향 물깃 에돌아와있기를 나는 바란다.하루 네 번 들고 나고 하는 물살 따라 내 살속 깊은 곳, 핏줄에서 나의 핏살이 돌아치는 것이 만져지 기를 바라고 싶다.

하지만,온통바다로 그득한 창 앞에 놓인 책상머리, 일하다 말다 망연히내다보는 푸른 공간에다 대고 시간을 새겨서는 뭣하랴.다 만물때 맞추듯, 일어나서는 차 한 잔에 목 축일 수 있느면 그걸로 도 족하다.

해서여기바닷가에서는 계절도 시간도 언제나 유족하다.그들은 서두름이 없고 그래서 그것들은 결코 토막나는 법이 없다.

언젠가어느 맑은 해질녘, 물마루 가득, 시간이 그 사지를 펴고 누 운것은 본 적이 있다.그리고 또 어느 다사로운 봄의 한낮, 시간 이저깊은 곳 바다 및에서 지나간 경과들을 살금살금 길어올리는 것을 본 적도 있다.그리하여 시간이 길어올린 것들을 파도의 갈피 마다펴놓고는 들여다보는 그 짬에 내일은 갈피 사이사이에서 미리 얼굴을 내비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뿐만이아니다. 시간은 자신이 길이만이 아니란 것을, 길이만큼의 넓이며 품이기도 하다는 것을 수평선 가득 펼쳐 보이기도 했다. 한데도 시간은 바다에서는 늘 쇄신이다.그리고 변혁이다.연속을 저버리지않고도 바다에서 시간은 새로이 새로이 전신(轉身) 또 전 신한다.

신 새벽 갓밝이의 한 때, 수평선 끝에서 동이 튼다는 것, 여명이 밝 는다는것, 시간이 바다와 해를 더불어서 이룩해내는 그 장엄과 승 화는언제나, 매번 새로움의 시작이 된다. 거기 반복이란 티끌만큼 도없다.늘 새로운 것이 비롯하는 전기(轉機)로 바다의 갓밝이는 개벽(開闢)한다.

그런데도승화와 장엄이 그렇듯이 바다의 시간은 부드러이 유연(柔軟)하고 또 아슬하게 유장하다.물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고 있노 라면정말이지시간의 말랑대는 속살이 만져진다.그건 관능적일 만큼 나긋나긋 속살댄다.

토마스 만이 그의 ‘마의 산‘의 한 구석에서 ‘수평선을 마주 보고 걷 노라면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고 한 것은 그럴싸한 일이다.

초록과 파랑사이

돌이켜 서울살이 근 40년.시계를 지켜보는 눈엔 언제나 핏발이 서 곤 했다.

초침의 새김질이 나를 박살내면서 내달렸다.그건 꽃, 돌진하는 기 관차의 바퀴소리처럼 나를 깔아뭉갯다.

시간을크게는 시간 단위, 작게는 분 단위로 토마글 치면 그것들은 혹은비트적대고 혹은 발악을 쳤다.그럴 때마다 나는 그 잘린 시 간의 토막들 사이 마다에서 마치 톱니바퀴 사이에 낀 듯해서는 몸을 뒤틀었다.그리곤 무섭게 할딱댔다.시간은 내게서 그저 할딱거림 이었다. 시간보다 내가 더 숨이 찼다.‘시간알러지‘로 나는 의식 (意識)의 천식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시간은 한 바다 가득이고 나는 그 광장 한 구 석에서슬밋슬밋움직이고 있는 것뿐이다.그야말로 무시(無詩), 무간(無間)의 천식을 앓아야 했다.

시간이 보장하는자유, 그래서 나는 늘 시간에서 자유롭다.아니 시 간속에서 시간과 더불어서 나는 자유롭다.

시간이며 시간 살이는 그렇다 치고 공간이며 공간 사리는 어떨까?

초록과파랑 한 복판, 마을 뒤 쪽 그리고 양옆은 산이 에워싸고 앞 은 자란만(紫蘭灣) 바다가 둘러 있다.열두 집이 옹기종기 모여 앉 은작은 동네 안, 어디서나 파란 바다가 내다보이고 어디서나 산을 우러르게 된다.

산자락에오금 박고 바다를 향해 기지개 켜는 마을, 그러고도 모자 라 양 곁에 물너울과 언덕을 끼고 있는 마을, 그래서 초록과 파랑의 한 가운데 둥지를 튼 동네면 자연이며 환경으로 더 무엇을 바라랴!

바야흐로다급하게논란되곤 하는 ‘생태론의 시대‘, ‘생태 환경의 시대‘에 걸맞고도 남는 축복, 나는 초록 한가운데서 늘 합장하는 듯 이 산다.

고성읍혹은사천 고항 또는 삼천포, 어디 할 것 없이 외지에서는 큰재를 넘어야 우리 마을에 다다른다.그중 가장 큰 고개가 중치 다.차가 숨가쁘게 여기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초행길이 아니라도 누구나 탄성을 지르기 마련이다.나는 이 중치 넘는 재미에 아직은 세상을 영영 등지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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